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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개의 발에 흐르는 피
[안치용의 프롬나드] 개의 발에 흐르는 피
  • 안치용/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20.02.19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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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나이 들어가면서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어젯밤의 일이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개들과 함께하는 밤나들이에서 돌아오면 언제나 개의 발을 닦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한다. 밖에서 살아야 하는 놈들을 실내에 모시고 살다 보니 빚어지는 일. 시중드는 일은 발을 닦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밑도 닦아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실내생활을 하기에 감당하는 수고이다. 때에 따라 무척 귀찮은 일이다. 인간에게는 물론이지만 아마 개에게도 그렇지 않을까.

가끔 의욕이 넘칠 때가 있다. 스콜의 발을 닦으면서 보니 발톱이 너무 길었다. 갑자기 발톱을 잘라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발톱정리는 내 담당이 아니었다. 늦은 시각에 갑자기 마음을 낸 나는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지 않으며 개의 불편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에 개 발톱깎이를 꺼냈다.

그중에 제일 길어보이는 발톱을 날 사이에 끼우고 아귀에 힘을 줬다. 들어본 적이 없는 단절음의 작지만 깊은 신음 소리가 스콜에게서 났다. 사고. 너무 깊이 자른 것이다. 피가 흘렀다. 발톱이라 지혈을 어찌 해야 하나.

스콜은 스스로 해결했다. 계속 피가 흐르는 발톱 부위를 핥아가며 상처를 수습했다. 핥는 부위라서 약 같은 걸 발라도 소용 없어 보여서 스콜에게 맡기기로 했다. 사고는 인간이, 수습은 개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안하다"는 말밖에 없었다. 스콜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의 고통을 짐작할 수가 없어 더욱 미안했다. 이게 만약 TV의 애견프로그램 같은 데에 나왔으면 몰지각한 반려인이라고 엄청난 비난 댓글이 달렸을 터이다.

오늘 귀가해서 보니 스콜이 멀쩡하다. 상처를 더 이상 핥지도 불편해 하지도 않는다. 걸음걸이가 정상이다. 여전히 나를 보고 반갑다고 멍멍멍! 내 미안한 마음을 아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서 조금은 안타까웠다. 사족 같은 생각은 말이 통하는 인간 끼리는 확인하고 살면 좋겠다는 지극히 인간 본위의 생각.

사진은 스콜의 앞발. 발톱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잘 핥아서 피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산책을 길게 시키면 발톱을 자를 일 자체가 없어질 텐데, 겨울이라 하루에 3번 잠깐씩 용변 보러 나가는 것으로 반려인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봄이 오면 달라져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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