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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재개봉 영화 <메멘토>를 보며 찾아본 기록과 떠올린 기억들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재개봉 영화 <메멘토>를 보며 찾아본 기록과 떠올린 기억들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16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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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2000) 포스터

재개봉 영화들이 꽤 많이 상영 중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크게 줄고, 개봉 예정 영화들의 개봉이 연기되면서, 영화관들은 ‘누군가의 인생 영화 기획전’, ‘힐링 무비 상영전’, ‘명작 리플레이 기획전’ 등의 타이틀을 걸고 이미 개봉이 됐던 영화들을 다시 상영하고 있다.

그 중에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2000)도 있다. 국내에서는 2014년 11월에 재개봉된 적이 있다. 리마스터링 버전이 60여 개 스크린에서 재개봉됐는데,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2014)라가 한창 인기를 얻던 때였다. 어느새 거장이 된 감독의 초기 영화를 큰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메멘토 리마스터링>(2014) 포스터

2020년 3월 15일 현재는 110여 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니 재개봉 규모는 더 커졌다. 게다가 현재 놀란 감독의 <인셉션>(2010)도 상영 중이다. 지난 1월 29일에 개봉 10주년 기념으로 재개봉됐다. 미리 계획됐던 건 아니지만, 두 편 모두 큰 화면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재개봉의 역사

최근 몇 년 동안 리마스터링 버전, 감독판, 흑백판 등의 재개봉이 줄을 이었다. 극장 상영이 끝나면 곧바로 (때로는 극장 상영과 동시에) 스트리밍이나 다운로드를 통해 영화 감상이 가능한 시대이다 보니, 단순한 재상영이 아니라는 점을 내세우는 추세였다. 이번 재개봉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1960~70년대 재개봉은 좀 더 달랐다. TV가 대중화되기 이전에 영화를 감상하는 유일한 방법은 영화관에서 감상하는 것이었다. 영화 한 편이 도시 별로 개봉관 한 곳에서 개봉되는 게 대세였던 당시, 도심 개봉관 상영이 끝나면 변두리 재개봉관에서 다시 상영되는 과정을 거쳤다. 필름은 재사용이 되었는데, 이렇게 2번관, 3번관, 4번관 등으로 불리던 재개봉관에서 몇 차에 걸친 (점점 입장료가 저렴해지는) 재개봉이 끝나면, 그 영화를 다시 볼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인기 영화의 경우 또다시 개봉관에서 제대로 재개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1960~70년대에 외국영화 수입 편수가 제한되면서 영화관들은 외국영화 부족 상황에 시달렸다. 1970년대 서울 도심 개봉관은 10여개였고, 1년에 수입되는 외국영화는 20~30여 편까지 감소하게 되니까, 개봉관 당 1년에 2~3편 정도의 외국영화를 상영할 수 있던 셈이었다.

일본 등지에서 이미 흥행 성공을 거둔 영화 중 고르고 골라 수입된 영화들이다 보니 한국영화보다는 흥행 가능성이 높아, 개봉관들은 외국영화 상영을 선호했다. 그러나 외국영화 2~3편만으로 1년 365일을 버틴다는 건 불가능했다. 스크린쿼터제도를 지켜야 하니 한국영화도 개봉을 하긴 하는데, 1990년대 말까지 한국영화는 연간 흥행 순위 상위 10위에 한두 편이 들어갈까 말까 했으니, 영화관마다 1년에 한두 편 흥행 한국영화를 만나 길게 상영하기도 쉽진 않았다.

그때 영화관들이 선택한 나름의 해결책은 공연장으로 임대하거나 이미 개봉했던 유명 영화들을 재개봉하는 거였다. 서울 개봉관의 경우 1천 석이 넘는 규모였으니 유명 가수들 콘서트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는 TV, 비디오, 스트리밍, 다운로드 등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유명 영화를 재개봉하면 광고를 덜 해도 흥행이 잘 됐다고 한다. 관객 입장에서 재개봉은 말로만 듣던 10년 전 그 영화, 미성년이라 보지 못했던 5년 전 그 영화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 글에서 다뤘던 <작은 아씨들>의 1949년 버전은 우리나라에서 <푸른 화원>(마빈 르로이) 이라는 제목으로 1954년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는데, 1964년엔 중앙극장에서 재개봉됐다. <벤허>(윌리엄 와일러, 1962)와 <사운드 오브 뮤직>(로버트 와이즈, 1965)는 1960~70년대는 물론 최근까지도 여러 차례 재개봉된 대표적인 영화기도 하다. 재개봉 영화 기록 찾기는 어렵지 않다.

 

        
1964년 1월 25일
《경향신문》 7면 광고
     
1954년 10월 22일
《동아일보》 2면 광고

20년 만에 다시 본 <메멘토>

<메멘토>는 그동안 강의에서도 수없이 거론하고, 일부 장면을 다시 본 적도 많아서, 나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년 만에 다시 본 <메멘토>는 역시 좀 달랐다. 영화는 그대로일 테니 내가 달라졌다는 의미일 거다. 주인공 레니처럼 내 기억이 왜곡된 탓도 있을 테고, 그땐 신인 감독의 영화로서 봤지만, 이번엔 <배트맨 비긴즈>(2005), <다크 나이트>(2008),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2017) 등을 연출한 베테랑 감독의 영화로 봤으니 다르게 느껴질 수 밖에. 이러나저러나 내가 바뀌었으니 영화가 달라 보였다.

2001년 개봉 당시에는 엄청난 신인 감독이 나타났다는 평가, 새로운 영화라는 평가 등을 먼저 접하고 봤던 터라, 요즘도 흔치 않은 독특한 시간 구성, 그로 인한 마지막 반전 등에 더더욱 압도됐었다.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시점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구성은 파격이었다.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집중해 봤던 기억이 있다.

다시 보니, 알고 보는 파격은 덜 파격적이었으나 여전히 집중력은 필요했다. 그리고 순간순간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1인칭 시점의 회상, 서로 다른 장소나 시간대를 오가는 편집, 꿈인지 상상인지 명확치 않은 장면의 등장, 극단적인 클로즈업, 슬로우 모션 등 놀란 감독의 시그니처는 <메멘토>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셉션>이 떠오르고, <인터스텔라>가 떠오르는 식이었다.

 

<인셉션> 10주년 기념 재개봉 포스터

과연 기억과 기록은 믿을 만한가?

무엇보다 주인공 레니가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기억’과 ‘기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20년 전에도 이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은 없지만,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다. 기억과 기록 중 무엇이 더 강력한가? 무엇이 되었든 과연 믿을 만한가?

레니는 자신의 병 때문에 더이상 새로운 기억은 할 수 없지만, 습관과 훈련 덕에 기록에는 자신이 있다. 메모, 폴라로이드 사진, 문신 등을 이용해 아내를 죽인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물론 영화 마지막에 좌절하게 되지만, 기록을 이용해 자신의 계획을 다시 세운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억은 왜곡된다. 완전히 잊히기도 한다. 그렇다고 기록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건 아니다. 열심히 인증 사진도 찍고, SNS에 올려 기록하고 공유하지만, 그 모습이 실체와 일치하는 건 아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생방송으로 역사적 현장을 목격하고, 이후에도 그 영상 기록 등을 무한 반복해 보지만, 의도에 따라 뉘앙스가 너무나 다른 기록이 공존 중이다. 기록 역시 왜곡이 가능하다.

기록이나 팩트라는 이름으로 공유되는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믿을만한 정보를 바탕으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려 노력하지만, 믿을만한 건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게 된다. ‘나 낚인 걸까?’ 이런 두려움에 익숙하다.

딱 레니의 모습이다. 레니는 자신의 기록이 자신의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하는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이미 여러 차례 이용당했다는 것도 안다. 물론 여러 차례 잊었지만. 그리고 애도 쓴다. 영화의 처음 시작으로 되돌아가 보면, 레니는 자신의 계획을 성공 시켰다. 물론 또 잊었겠지만 말이다.

영화 마지막에 레니는 언제나처럼 이 질문을 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레니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쳇바퀴 도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늘 던지는 질문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질문들 말이다. 묘하게 감정이입 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20년 전에도 이랬는지는 역시 기억에 없다. 메모나 일기 같은 기록도 없다. 이번에는 이렇게 글도 썼으니 기록은 남았다.  

잠시 요즘 같은 스마트 폰 시대에 이 영화가 나왔다면 어떻게 달랐을까? 라는 상상을 해봤다. 문신까지는 안 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놀란 감독의 상상력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글: 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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