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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가 이끌 ‘오래된 미래’의 만남
사회적 거리가 이끌 ‘오래된 미래’의 만남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0.03.31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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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고 철학적 화두를 던졌지만, 사회심리학자 엘리어트 애런슨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인간은 그 본성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다. 본성에 있어서 사회적이 아닌 개체는 인간보다 낮거나, 높은 수준의 존재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개체보다 우위에 있는 어떤 것이다.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없거나, 혹은 공동생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한, 그래서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짐승이거나 신이다.”(1)

어쩌면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싶어 다른 인간을 만난다고 할 수 있다. 만남은 타인과의 사회적 거리를 좁히거나 지우는 데 유용하다. 우리는 인간관계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개인 대 개인, 개인 대 조직 간의 빈번한 만남을 가진다. 특히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개발된 휴대폰 등 통신기기조차 단순한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자주 만나는 사람과의 만남을 강화하기 위해 많이 활용된다. 

인터넷 카페는 물론, 카톡, 라인, 텔레그램, 밴드 등에는 동창회, 취미동호회, 회사 동료, 향우회 등 다양한 집단의 대화방이 있고, 그 구성원들은 공지사항과 댓글,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만남을 가지고, 다음번의 더 멋진 만남을 약속한다. 미성년자 성착취물 거래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는 텔레그램 ‘N번방’처럼 극히 은밀하게 암약하는 범죄소굴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오프라인 모임을 활성화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는 대화방이다.

정보통신기술(IT)의 발달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훨씬 혁신되고 다양해졌으나, 만날 수 없는 친구들과 교감을 가지지 못하는 심리적인 공허함은 어찌할 수가 없어 보인다. IT 시대에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더욱 빈번한 만남을 가지는 것은 결코 ‘나 홀로’ 신이 될 수 없는 존재이나, 그렇다고 ‘나 홀로’ 짐승이 되기를 원치 않는 인간들의 사회적 욕망을 담고 있다. 

 

팬데믹의 위기 속에 등장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라는 낯선 표현이 모처럼 우리에게 사회적 만남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일깨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가족, 이웃, 나아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건강을 위해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 단톡방에서 바이러스 관련 상식과 볼만한 프로그램, 문화 정보를 공유하며 만남을 자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주 동안, 난생처음으로 대통령과 시장의 ‘말씀’에 따르며 ‘만남’을 일절 자제했다. <르디플로>의 발행인으로서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지만, 거의 모두가 통 크게 이해해주면서 다음의 ‘호쾌한’ 술자리 만남을 기약했다. 애런슨의 말처럼, 필자는 어떤 때는 혼자서 잡념의 영적 세계를 떠돌다가 갑자기 ‘신’이 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다른 때는 주말에 반려견과 종일 놀다가 함께 잠들며 ‘짐승’이 돼보기도 한다. 

몇 주간 신의 심정으로 살다 보니, 그간의 잘못된 만남이 떠오른다. 결혼식장, 장례식장, 동문회, 그리고 각종 크고 작은 모임들에서 영혼 없이 몸만 출석해서 자리만 채운 만남에 대해 새삼 반성문을 써본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면, 진정성이 담긴, 그리하여 미래에 멋진 추억으로 남을, 우리가 잊고 있던 ‘오래된 미래’의 진솔한 만남을 갖고 싶다.

이제, 사람들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르디플로> 독자님 한 분 한 분이 그립다. 코로나 사태에서 소중한 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랄 뿐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1) 엘리어트 애런슨, 『인간, 사회적 동물』(박재호 옮김, 탐구당,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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