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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영의 문화톡톡] 한국 TV 의학 드라마에 대한 탐구 2 : 메디컬 드라마의 다양한 변주
[문선영의 문화톡톡] 한국 TV 의학 드라마에 대한 탐구 2 : 메디컬 드라마의 다양한 변주
  • 문선영(문화평론가)
  • 승인 2020.04.27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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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 드라마는 삶과 죽음을 다루면서, 일상의 세세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의학 드라마는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가질 때, 상상력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소재에 대한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학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유형의 드라마가 반복되었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애쓰는 정의로운 의사의 고난과 성장 스토리이거나, 병원 내 권력다툼에 대한 정치적 스토리였다. 여기에 더 보탠다면, 병원이라는 무대로 로맨스에 초점을 두는 메디컬 로맨스도 하나의 유형일 것이다. 의학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속되었고,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의학 드라마에 대한 변주로 이어졌다. <한국 의학 드라마에 대한 탐구1>에 이어, 이번에는 공포, 스릴러, 코미디와의 결합 속에서 의학 드라마의 외연을 확장 시킨 사례에 집중해본다.

 

일상에 대한 불안감을 담은, 메디컬 스릴러 드라마 <M>[1]

 메디컬 스릴러 드라마는 의학 관련 사건에서 발생한 문제를 스릴러로 풀어가는 유형으로, 주로 판타지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메디컬 스릴러 드라마를 표방하며 이름을 알린 것은 <M>(MBC,1994)이다. 미니시리즈 <M>은 낙태당한 아이의 혼 ‘M’이 마리(심은하)라는 여자 주인공의 육체에 빙의되어 복수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 <M>에서 가장 공포감을 극대화시키며 대중적 기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초록색 눈동자로 변한, 매혹적이고 섬뜩한 ‘마리’의 표정이었지만,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전염성 바이러스를 통한 ‘M’의 복수이다. 드라마 <M>은 ‘M’이라는 괴이한 존재의 출현에 있어서 의학과 관련하여 중심 서사를 만들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M>에서의 공포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괴기스러운 악령으로부터 발생한다. 악령의 복수 중 1990년대 당시 대중들에게 공포감을 주었던 요소 중 한 가지는 질병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바이러스 전염이다. ‘M’이자 마리인 주인공은 병원체에 대한 면역성이 있으며 그 병원체의 숙주로서 특정 대상에 세균을 전염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드라마에서 ‘M’이 발현된 상태에서 마리와 신체적 접촉을 한 사람들은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에 전염된다.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람은 온몸에서 상처가 나고 피부가 짓무르고 출혈이 심해져서 결국 죽게 된다. <M>에서는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나 존재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현실적으로 예견할 수 있는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도 제시하고 있다. 드라마<M>의 악령 ‘M’에게 내재되어 있는 바이러스는 당시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의 출현, 새롭게 출현한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상상력이 재현된 것이다.

       

사진출처; imbc 홈페이지
사진출처; imbc 홈페이지

 드라마 <M>이 방영되는 시기에는 죽음의 전염병이라 불리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한국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는 에볼라 출혈열이라 불리며 치사율이 높은 신종 바이러스로 1995년 전후로 대중적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드라마 <M>의 기획이 당시 유행했던 의학 추리 소설 <돌연변이>, <바이러스>등에 착안 되었던 점을 볼 때, ‘바이러스’ 소재는 드라마 방영 시기 대중적으로 관심이 높았던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은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전문정보나 객관적 사실보다 알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 과학발전에 따른 기대와 더불어 발생하는 두려움과 불신의 감정들은 드라마 <M>의 바이러스 전염의 공포로 재현된 것이다.

 

불안한 일상에 대한 환상과 치유, 코메디컬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

 코미디와 메디컬을 결합한 ‘코메디컬 드라마’라는 부제를 덧붙인 <시를 잊은 그대에게>(tvN, 2018)는 병원의 방사선학과, 물리치료학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 드라마이다. 정신의학, 응급학 등 세부 영역이 의학 드라마의 소재로 확장되긴 했어도 의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점을 생각해볼 때, 물리치료사가 주인공인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새롭다. 의학 드라마라고 상상하기 힘든 드라마 표제처럼,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의사가 빠진 자리를 문학적 감성과 낭만으로 채운다. 우보영(이유비)은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국문학과 대신 보건학과를 졸업하고 병원의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물리치료사이다. 비록 삶은 녹록지 않지만, 환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그녀에게 치료는 단순히 아픈 신체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아픈 몸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큰 환자들에게 시 한 편을 적어주며 마음을 보듬으며, 따듯하게 위로한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시’는 주인공 우보영의 내면이자, 드라마의 메시지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서 코미디와 로맨스는 문학적 감성을 진지하게 접근할 때 자칫 과장되거나 촌스러워질 수 있는 부담을 덜어내는 장치로 활용된다. 병원의 물리치료실, 방사선실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유쾌한 에피소드로 풀어내고, ‘시’를 활용한 낭만성은 로맨스와 결합한다. 늘 가슴에 ‘시’ 한편의 감수성을 담고 사는 우보영 외에도 물리치료실, 방사선실은 모두 따듯한 인간미가 넘치는 인물들로 가득하다. 자신의 일을 후배에게 떠넘기는 얄미운 정규직 선배는 아픈 어머니까지 책임지는 가장으로 짠한 사연이 있어서 이해가 되고, 심한 결정 장애로 일하기 불편한 동료는 알고 보면 정의롭고 배려가 깊다. 부족하더라도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선,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복잡하고 다양한 병원 이야기가 단조롭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환자를 단순한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는, 이 드라마에서 잊었던 ‘시’는 인간에 대한 감수성이다.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는 16회 동안 수많은 시가 낭송되는데, ‘시’는 물리치료실을 찾는 환자를 넘어, 팍팍한 삶을 불안하게 버티고 견디는 누군가를 향한 치유이기도 하다.

 

사진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사진출처: tvN 공식홈페이지

 의학 드라마에서 서브플롯의 인물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병원의 또 다른 구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할 문제들이 ‘시’ 낭송의 그늘로 사라지고, 달달한 결말을 향해 있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따듯한 웃음이, 문학적 감수성이 채워버린 그들의 병원 일상은 현실이 아닌 판타지에 머무른다. 의학 드라마의 의사를 과감하게 제외시킨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채운 사람들의 일상에 대한 재현은 아쉽다.

 

의학 드라마는 현재 진행형

 최근 14%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주목받고 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tvN)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의사들의 일상을 그려내며,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대 99학번 동기 5인방은 간담췌외과, 소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 교수로 병원의 주요 전문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유능한 의사들이다. 뛰어난 실력보다 시청자들을 매료시킨 그들의 특성은 공감과 여유를 전제한 소소한 일상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환자를 단순히 치료의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잃지 않는 의사 5인방은 어딘가에는 존재했던 전설 같은 인물이다. 지금까지 의학 드라마에서 집중했던 환자의 병명과 치료의 과정, 완치 성공 여부에 관련된 세밀한 이야기 전개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불안한 환자를 안정시키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장면들은 넘쳐난다. 몸이 아플 때 사람은 가장 약해지며, 일상은 쉽게 무너질 것처럼 불안하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불안정한 시기,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 5인방은 시청자가 기대하는 누군가의 모습이자 일상이 아닐까. 아무리 그것이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기 쉽지 않은, 마치 전설 같은 이야기, 인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앞으로 펼쳐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완결된 이야기들이 한국 의학 드라마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자료출처>

[1] 필자의 아래 글 중 일부 내용을 정리한 것임.

문선영, <TV드라마의 과학적 상상력>, <<극예술, 과학을 꿈꾸다>>, 지식과 교양, 2019.

 

<사진출처>

 <M> iMBC홈페이지

<시를 잊은 그대에게>tvN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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