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7월호 구매하기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물기 없는 입술로 노른자를 씹다 - <흔들리는 구름>
[최재훈의 시네마 크리티크] 물기 없는 입술로 노른자를 씹다 - <흔들리는 구름>
  • 최재훈(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01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흔들리는 구름' 스틸 컷

도통 수다를 떨 줄 모르는 차이 밍량의 과묵함은 여전하지만, 인내심 없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수많은 상징들이 적나라해진 만큼 쉬워졌다. 고독과 소통에 대한 갈증은 가뭄과 들끓는 무더위 마냥 영화의 배경으로 깔려있고, 남녀 간의 애정을 확인하는 은밀하고 친밀하고 따뜻해야할 섹스는 오직 생존의 수단이 되어 적나라하고, 우스꽝스럽고, 차갑고, 기계적인 노동이 되었다.

 

욕망과 관음 사이

다리를 벌리고 있는 여자 배우의 다리 사이에는 새빨갛게 속살을 드러낸 수박이 있다. 포르노 배우인 샤오캉은 마치 손가락으로 성기를 애무 하듯 수박의 새빨간 속살을 후벼 판다. 여자의 허벅지를 타고 침대 위로 흩어지는 새빨간 수박 과즙. 여배우는 수박을 받아먹으면서 새빨간 과즙을 줄줄 흘린다. 자극적이어야 할 장면이 가뭄으로 말라붙은 도시 풍경만큼이나 뜨겁고 건조하다. 감정 없이 행위만 있는 포르노는 물기 없는 마음처럼 건조해 까끌거리고 사각거린다.

 

스틸 컷

차이밍량은 현실적 가뭄과 정서적 갈증이란 두 가지 상징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며 메마른 영혼을 가진 두 주인공을 섞는다. 극심한 가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여자 주인공은 물을 훔치고, 남자 주인공은 물탱크로 숨어들어 목욕을 한다.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음식들이 진열되고, 감시 카메라의 시점에서 주인공들의 좁은 공간을 잡아내는 카메라는 차이 밍량 감독의 관음적 취향을 고스란히 담는다. 오랜 시간 차이 밍량의 페르소나였던 이강생은 그의 이전 작품에서처럼 퀭한 눈을 끔뻑거리고, 뿌루퉁하게 우울한 입술을 닫고 있다.

주인공 싱차이와 샤오캉은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를 갈망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거칠고 건조하다. 로맨스라고 부르기엔 너무 퍽퍽하고, 욕망이라고 부르기엔 물기가 없다. 싱차이는 갈증처럼 샤오캉의 육체를 원하지만, 그는 오직 포르노를 찍을 때만 상대 파트너와 섹스를 한다. 남들에겐 단순한 섹스가 생존의 수단인 샤오캉에게 섹스는 하나의 노동이며, 삶의 과정일 뿐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의 삶도, 영화를 바라봐야 하는 관객도 감정 없이 이어지는 물기 없는 포르노를 보는 것처럼 지루함을 느낀다.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차이 밍량은 아예 과도한 섹스 묘사를 통해 오히려 섹스 없는 연인 사이의 단절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차이밍량은 두 사람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믿어보고 싶어 한다.

 

스틸 컷

차이 밍량, 물 없이 노른자를 씹게 하다.

스토리와 전혀 연관성 없이 불쑥 불쑥 끼어든 뮤지컬 장면은 영화 <구멍>에도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좀 더 뮤지컬에 가깝게 묘사된다. 화려한 색조와 과도하게 경쾌한 음악, 과장된 군무로 이어지는 뮤지컬 씬은 할리우드가 아니라 발리우드 뮤지컬을 연상시킬 만큼 과장되어 있다. 이 장면은 주인공의 일상에서 계속 제공되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처럼, 삭막한 인생 속에서 한번 쯤 꿈꿔봄직한 화려한 상상이지만, 경쾌한 들썩거림이 사라진 현재의 삭막하고 비참한 몰골과 대비되어 현실 속 주인공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왕래가 없는 도시인의 단절감을 표현하기 위해 극소수의 주인공만 출연하는 차이 밍량의 영화답게 카메라는 시종, 좁은 건물에 갇힌 주인공의 일상을 근접하여 바라본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서로의 왕래가 없는 자신만의 좁은 공간에서 오히려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작고 희망적인 장면도 있다. 샤오캉이 싱차이의 잃어버린 열쇠를 찾아주는 에피소드는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사랑의 시작이란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마치 사랑이 시작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샤오캉이 준 열쇠가 자신의 마음을 열게 하는 열쇠가 아니듯, 두 사람을 계속 서로를 맴돌면서 이어지지 못한다.

 

스틸 컷

차이밍량의 영화는 건조한 피부 위 생채기처럼 따갑다. 희망적인 제목인 주는 역설을 담은 <애정만세>에서 꺽꺽대며 울어대는 양귀매의 얼굴을 감정도 미동도 없이 담아냈던 롱 테이크의 충격은 차이 밍량 감독을 여전히 기억하게 만드는 지독한 잔영으로 기억된다. <하류>에서 부자간의 동성애를 암시하는 충격적인 엔딩의 개운치 않은 텁텁한 뒷맛도 여전하다. <흔들리는 구름>의 엔딩 역시 일반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갑작스러운 재채기처럼 불쑥 이어진다. 그래서 어쩌면 생채기를 내는, 이미 한번 흉터로 남은 생살 위에 다시 한 번 날카로운 칼날을 쓰윽 긁어보는 것 같은 통증이 있다.

 

사진출처_네이버영화_흔들리는 구름

 

: 최재훈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37회 영평상 신인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등단하였다. 2019년 제3회 르몽드 영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8년 이봄영화제 프로그래머, 3회 서울무용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객석, 문화플러스 서울 등 각종 매체에 영화와 공연예술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시 종이신문 과월호를 발송 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