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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의 문화톡톡] 엔도 켄지(遠藤賢司)의 카레라이스와 고양이
[이혜진의 문화톡톡] 엔도 켄지(遠藤賢司)의 카레라이스와 고양이
  • 이혜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01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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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소년(출처:난민인권센터)​
​20세기 소년(출처:난민인권센터)​

한국에서도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는 우라사와 나오키(浦沢直樹)의 명작 <20세기 소년>1960년대 전후 일본 사회를 표상하는 문화코드를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패전이 가져온 무겁고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고도 경제 성장이 가져온 윤택한 소비문화의 명암이 공존했던 1960년대의 일본에는 이른바 신인류세대로 불린 전후의 젊은이들이 시대의 총아로 등장했다. 전쟁의 폐허가 가져다 준 절망과 허무를 극복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동력이 일본 사회의 제반 구조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던 가운데, 이 신인류세대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개최된 도쿄올림픽(1964)을 직접 관람하고 인류 최초의 달 착륙(1969) 달성과 아시아 최초의 오사카만국박람회(1970) 등을 경험하면서 미래의 문명 지향적 가치관을 내면화하기 시작한 최초의 세대라는 특징을 갖는다.

이 신인류세대에게 만국박람회는 찬란한 미래세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푸른 눈의 백인 거인들을 일거에 때려눕히는 프로 레슬링을 관람하면서 통쾌함을 공유하기도 했으며, 전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포크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미국의 꼭두각시가 된 전후 일본 정부의 억압정책에 저항하기 위해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등 이른바 자신들만의 수단을 소유하는 데 몰두했다. 그런 점에서 현재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신인류세대는 어떤 거대한 공동의 경험을 소유했던 마지막 세대였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과 관심사가 공통적이었기 때문에 특정한 문화코드를 공유하는 행위를 통해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선언한 첫 세대이기도 했다. 그런 공동의 거대 경험을 소유하고 있었던 친구들이 그들을 둘러싼 어린 시절의 기억과 암울하고 절망적인 현재의 시간이 대치하는 상황을 미스테리한 기법으로 그려낸 <20세기 소년>의 주인공 엔도 겐지(遠藤健児)’의 실제 모델이 바로 자칭 일본 최고의 순수음악가이자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장수 가수로 꼽히는 엔도 겐지(遠藤賢司, 애칭 엔켄’)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Bob Lennon(출처: YouTube)
Bob Lennon(출처: YouTube)

우라사와 나오키에 따르면 (rock) 다운 이름을 구상하던 중 문득 엔도 겐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는데,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작중 등장인물인 겐지는 대중가수 엔도 겐지이외에는 없는 것 같아서 실존인물에게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은 채 작중 주인공에게 엔도 겐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가수 엔도 겐지는 라이브 공연 무대에서 자주 지구를 지키자라는 구호를 외치곤 했는데, 아마도 그의 이런 이미지가 지구의 평화를 지키려는 작중 인물의 이름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실제로 록 밴드 가수로 등장하는 <20세기 소년>엔도 겐지가 기타와 하모니카를 활용하여 부른 중독성 강한 노래 <Bob Lennon>(흥미롭게도 우라사와 나오키는 이 곡을 직접 노래하여 앨범 半世紀の男에 수록했다)도 가수 엔도 겐지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카레라이스(カレーライス)>를 모델로 하여 만든 것이다. <20세기 소년>에서 <Bob Lennon>은 소박한 일상이 지속되었던 행복한 과거의 노스텔지어와 삭막한 소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성이 말살되어 가는 현재의 시공간을 대치시킴으로써 허무주의가 팽배했던 전후 일본 사회의 수많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날이 저물면 어디선가 / 카레 냄새가 풍겨온다 / 얼마나 더 걸어가야 집에 다다를 수 있을까 / 내가 좋아하던 그 고기집의 크로켓은 / 변함없는 맛으로 나를 기다려줄까 / 지구 위에 밤이 오는구나 / 나는 이제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하련다

내년의 일을 미리 말하면 귀신이 비웃는다지 / 비웃으려면 얼마든지 비웃으라지 / 나는 계속 말할 테니까 / 5년 후 10년 후의 일들을 / 50년 후에도 이렇게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고 / 지구 위에 밤이 오는구나 / 나는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을 재촉하련다 / 비가 내리고 폭풍우가 내리쳐도 /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모두 집으로 돌아갈 거야 / 방해하지 말아라 / 그 누구도 멈추게 할 권리는 없으니까                          

                                                                                      - <Bob Lennon>

 

미시마 유키오(출처: jipangnet.blog.fc2.com)
미시마 유키오(출처: jipangnet.blog.fc2.com)

1947년 이바라기 현(茨城縣) 출신의 록 가수 엔도 겐지는 고양이와 카레라이스를 매우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만든 곡에서 자주 고양이와 카레를 단골 소재로 애용했다. 그 뿐만 아니라 1974년에는 시부야 도겐자카(道玄坂)왈츠라는 이름의 카레라이스 가게를 오픈한 일도 있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일본인들에게 고양이와 카레라이스는 서민의 따뜻하고 소박한 일상생활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대표적인 소재로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어린 시절의 추억과 따뜻한 가족애가 오버랩 되는 노스텔지어의 풍경으로 자주 등장한다.

엔도 겐지의 <카레라이스> 역시 이러한 일상의 풍경을 그린 곡인데, 그 배경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내용인 즉슨 예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집에서 저녁식사 메뉴인 카레라이스가 어서 빨리 완성되기만을 기다리며 방에서 빈둥거리던 어느 날,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1925-1970)의 할복사건이 뉴스에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당시 전후 일본 사회의 정치적 혼란상과 사회적 퇴폐성을 고발하면서 일본정신의 개혁을 주창했던 미시마 유키오의 자결사건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그럼에도 이 곡은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사건이 그저 그렇고 그런 저녁 뉴스의 기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듯 무심하게 자신의 저녁 일상을 읊어대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미묘한 감수성이 포착되는 것이다. 마치 미시마 유키오의 학복사건 따위보다는 주방에서 풍겨오는 짙고 향긋한 카레 냄새를 맡으며 한가롭게 기타를 연주하거나 어서 빨리 완성된 카레라이스를 먹고 싶다는 바람이 더 절실하고 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듯이. 단지 먹을 것을 달라고 재촉하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고 귀찮을 뿐이라는 듯 말이다.

 

당신도 고양이도 모두 좋아하지, 카레라이스를 / 당신은 감자와 당근을 싹둑싹둑 썰고 / 눈물을 흘리며 양파를 썰고 있네 / 바보같이 바보같이 그러다가 결국 자기 손을 자르고 /나는 앉아서 기타를 켜고 있네 / - 카레라이스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면서 나를 따라다니네 / 자기에게도 빨리 달라고 야옹야옹 / - 아주 좋은 냄새가 나는군 / 나는 빈둥거리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네 / 누군가가 자신의 배를 그었다네 / - 많이 아프겠네 / - 카레라이스

                                                                        - <카레라이스>

 

엔도 켄지(출처: TAPtheNEWS)
엔도 켄지(출처: TAPtheNEWS)

1960년대 전 세계의 많은 가수들의 고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엔도 겐지 역시 메이지학원대학 시절 FEN(Far East Network: 한국과 일본의 미군 군사기지 방송국)에서 흘러나온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을 듣고 나서 처음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후 엔도는 19688월 교토에서 열린 3회 포크캠프에 참가했던 것을 계기로 삼아 다카이시 도모야(高石友也)와 포크 크루세더스 등 이른바 간사이 포크 뮤지션들과 적극 교류하면서 다카이시 음악사무소(高石音樂事務所)’에 소속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고양이가 자고 있다(猫が眠ってる)>라는 곡으로 정식 데뷔한 이래, 엔도는 현재까지도 왕성한 라이브 활동 무대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 최고의 장수 가수로도 통하고 있다.

3회 포크캠프는 제1·2회 때와 달리 포크송에만 국한하지 않고 동시대에 유행하고 있던 서구의 록과 재즈곡도 무대에 올리는 등 다채로운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반체제 포크가 일본 포크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당시, 엔도 겐지는 소소한 일상과 내면에 침잠하는 분위기의 곡이나 뛰어난 기타 연주 실력을 바탕으로 격렬한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대중의 인기를 사로잡고 있었다. 일본 사소설을 연상시키는 내성적인 가사 내용에 조용히 속삭이는 듯한 가창법에 더해진 그의 강렬한 절규는 일반 포크 씬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완전히 차별화된 독자적인 개성으로 충만해 있다.

1969년 데뷔앨범 [정말이야/고양이가 자고 있다(ほんとだよ/猫が眠ってる)](도시바) 발매를 시작으로, 이후 [niyago](1970, URC, 해피앤드 피처링)와 [만족할 수 있을까(満足できるかな)](1971, 폴리돌)를 발매했는데, 1972년 이 앨범에 수록된 곡 중 <카레라이스>가 싱글 컷되어 1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되면서 이때부터 엔도 겐지 최대의 히트곡으로 기록되었다.(이후 일본 밴드 Spitz는 자신의 곡 <Je t'aime>의 가사에 엔도 겐지에 대한 오마주로서 카레를 삽입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엔도 겐지는 곧 포크 씬에서 방향을 전환하는데, 1979년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와 테크노 팝 그룹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음악 스타일에 고무되면서 록 밴드 요닌바야시(四人囃子)’와 함께 녹음한 동경 어여차(東京ワッショイ)(벨우드)를 발표하면서부터 프로그레시브록과 하드록, 사이키델릭록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980년에는 테크노, 펑크, 하드록 , 포크, 심지어 엔카 등 다양한 음악 장르의 기법을 도입한 [우주방위군(宇宙防衛軍)]을 발표, 이 앨범은 컬트적 음반으로서 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무렵부터 엔도 겐지는 자신을 스스로 ‘Hard Folk KENJI’라고 부르면서 공격적인 가창법과 과격한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현재까지 자칭 전인미답의 순수음악가의 자세를 고수해 오고 있다. ‘엔켄이라는 애칭도 이 무렵에 정착되었다.

이후 1988엔도 겐지 밴드(엔켄 밴드)’를 새롭게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이래, 데뷔 30주년이 되는 1999년에는 셀프 커버앨범 엔켄의 4첩반 다다미 록(エンケンの四畳半ロック)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4첩반 다다미 포크라는 전통 일본식 포크에 대항한다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렇듯 포크음악에서 출발하여 하드록으로 이어진 엔도 겐지의 다채로운 음악 행보는 초기 일본어 록이 과연 가능한가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키고 독창적인 일본 록을 구현하는 데 매진했다는 점에서 엔도 겐지 음악의 진정한 의미를 확보해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문화웹진 다>(201624)에 게재했던 글을 수정한 것이다.

 

이혜진: 세명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도쿄외국어대학과 도쿄대학에서 연구원으로 공부했다. 2013년 제6회 인천문화재단 플랫폼 음악비평상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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