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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낡아감을 인정할 때 보이는 것 - 영화 <국도극장>(2020)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낡아감을 인정할 때 보이는 것 - 영화 <국도극장>(2020)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0.06.15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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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아보는 이가 많은 곳이 불편할 때가 있다. 고향이든, 학교이든, 아니면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일이 있는지 굳이 묻고야 마는 가족이 있는 곳이든. 이유는 뻔하다. 다른 이가 몰랐으면 싶은 것들이 내 안에 너무도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내가 타지에서 힘겹게 살아간다는 것이, 나 스스로도 그것을 한심해 하지만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이, 너무 화나지만 지금 나를 알고 있는 이곳과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안정감을 준다는 역설적인 감정들이 밖으로 나올까 두려울 뿐이다. 차마 입에 올리기도, 티 내기도 쪽팔리는 것들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 본능적으로 취하는 태도는 날을 세우는 것이다. 분명 케케묵은 감정을 들춰내며 누군가와 충돌할 것이, 다시금 나라는 인간의 바닥을 확신시켜줄 것이 자명하지만 당장 떠오르는 방어수단은 화를 내는 것뿐이다. 솔직하지 못한 감정의 분화, 아마도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디 알아차리라는 애원이 아닐까.

 

영화 <국도극장>의 기태(이동휘)는 이 모든 것 속에서 허우적댄다. 고향인 전라도의 작은 소도시로 내려온 그에게 어설픈 학력과 서울에서 산다는 것은 짐짝처럼 자리한다. 다른 친구들과 다르게 대학을 나왔으면(게다가 법대라면!) 좋은 직장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어야 할 것이며 이런 촌구석에 내려온 것은 휴가거나 출장이어야 한다. 서울에서 사는 것도 다르지 않다. 모든 인프라가 구축된 곳,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기태는 적어도 어떤 식으로든 기회가 열린 곳에서 그것을 잡고 살 것이라는 환상을 준다. 그곳에서 어떤 외로움을 겪고 있는지, 오랜 기간 어떤 좌절을 맛보았는지, 얼마나 많이 거절을 당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지쳐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줄 사람도, 굳이 알게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태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특볇히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 없음에도, 그리고 딱히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은 이곳을 곧 떠날 것이기에 국도극장의 일은 잠시 도와주는 것일 뿐이라고 얼버무렸다. 작은 소도시에 자리 잡은 오래된 극장. 한때는 개봉관으로 새로운 영화에 대한 기대에 찬 관객들이 채웠을 그곳은 이제 지나간 영화들을 추억하는 이들이 신기하게 둘러보는 곳으로 변해 있었다. 기태가 과거 나운규부터 1970년대에 전성시대를 보낸 영자와 1960년대부터 스크린을 주름잡던 신성일,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던 안성기와 박중훈의 입간판이 자리잡고 있는 국도극장을 자신의 일자리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아마 이와 같은 맥락에 있을 것이다. 새롭지 않은, 그리고 새로워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그 공간. 기태에게 국도극장은 떨떠름하게 들어섰다.

 

이 정지한 듯한 국도극장을 기태는 반기지 않았지만, 사실 변하지 않는 국도극장의 모습은 기태의 마음과 그리 그리 다르지 않다. 형만 좋아한다는 엄마에 대한 원망도, 엄마의 돈을 많이 가져갔으니 형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고집도 기태가 크게 의심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형이 집안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가족들과 이민을 준비하면서도 어머니를 모실 요양원까지 모두 준비해 놓았던 형의 고충은 꽤 긴 시간을 돌아 알게 된 사실이었다. 한 번이라도 물어보았다면 알았을지도 모를 그 사실은 마치 조용히 낡아가는 그 공간처럼, 찾는 이 없이 세월을 쌓아놓은 그 공간처럼 오랫동안 묻혀 있던 것이었다. 원치 않게 들어갔더라도 조금씩 그 공간에 익숙해 질 때, 그리고 그 공간에서의 사람들과 익숙해 질 때 그제야 기태는 조금씩 자신이 겁을 내고 있었다는 것을, 외롭고 힘들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국도극장은 매점과 매표를 담당하는 기태에게 부장직을 주었고, 시간을 맞춰 청소하고 관리해야 하는 일을 주었으며,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을 친구를 주었다. 사실 이는 국도극장이 주었다기보다 그곳에 기태가 자리하면서 가능한 일인 것이라는 말이 맞다. 국도극장이 열렸을 때,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기태가 자신의 문을 열고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그곳은 기태에게 무엇인가를 천천히 내주었다. 그 방식은 그리 호들갑스럽지도 유난스럽지도 않다. 단지 쪼그려 앉아 혹은 주저앉아 담배를 함께 피우는 것으로, 서울이 문제인지 네가 문제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기태는 이제 조급함 없이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국도극장>은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첨밀밀>로, 그리고 <박하사탕>에서 <영웅본색>으로 이어지는 극장의 포스터를 통해 기태의 상실과 설렘과 잠깐의 기대와 이제부터 그려나갈 촌스럽지만 폼 날 그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면 우리의 이야기가 될지 모른다.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는 나를 인정하기 위해 오랫동안 휘청댄 기태가 우리와 그다지 다를 것이 없을 테니까. <국도극장>의 찬찬함은 이렇게 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어떻게든 해보라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당신에게도 열릴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그것으로 조금은 덜 힘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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