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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홈 루덴스와 랜선 공연의 커튼콜
[양근애의 문화톡톡] 홈 루덴스와 랜선 공연의 커튼콜
  • 양근애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6.15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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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발발 이후 벌써 두 계절이 지났다.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되는 여름이 왔고 기온이 높아지면 바이러스의 활동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금세 무색해졌다. KF94 마스크를 벗고 숨쉬기 편한 덴탈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답답함이 가시지 않는다. 여름 공기처럼 낮고 묵직하게 휘감는, 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비대면의 시대, 다시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자명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변화가 많지만, 그 중에서 일상에서 재발견 되는 풍경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팬데믹으로 인한 공포가 사람들을 거리에서 집으로 밀어 넣었고 칼퇴근후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집은 더 이상 쉬는 공간이 아니다. 집에서 쉬는 시간은 짧고 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집은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이고 영화관 대신 선택하는 극장이며 남이 만든 음식을 사다 먹는 식당이 되었다. 집 밖에서 하던 거의 모든 일을 집 안에서 할 수 있게 되면서 집의 의미가 달라졌다. 놀이하는 인간,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는 집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홈 루덴스로 변형되고 1인 가구의 문화생활을 공략하는 각종 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홈 루덴스, ‘혼밥이나 혼술1인 가구로 인해 나타난 경제 현상을 일컫는 일코노미도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강타하기 전에도 랜선 문화가 활성화 되고 있었고 배달 앱과 새벽배송, 간편식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집에서 혼자 먹고 노는 일이 히키코모리같은 사회성 결여로 인식 받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사회적 인간이랍시고 밖에 나가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과의 마찰로 갈등을 겪는 것보다, 외로워도 집에서 혼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먹고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더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사회성도 외로움도 내포와 외연이 달라졌으니 정의를 다시 내려야할 판이다. 코로나19는 점점 익숙해지는 이러한 문화경제적 상황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위기감이 조성되면서 경제 활동에 큰 지장이 생기고 불평등이 가시화 되는 등 사회문제가 불거졌지만,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안전하게 생활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 즉 문화생활의 의미를 재음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경제적 타격을 받은 분야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관객이 직접 극장에 찾아와서 봐야하는 공연의 경우 갑작스럽게 공연이 연기되거나 하던 공연이 중단되고 남은 공연이 취소되는 등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되었다. 보통 두 달 정도의 준비 기간을 거치고 연출과 배우를 비롯한 많은 스태프들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공연예술의 특성 상, 드러나지 않은 피해는 더 크다. 언제 중단될 지도 모르는 공연을 연습하고, 최악의 경우 연습 기간 동안의 노력이 무용지물이 되는 결과를 염두에 두며, 그 와중에 달라진 공연의 새로운 의미를 모색하고, 막상 공연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착용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선보이는 복잡한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배우의 현존이라는, 현장성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으로 매개되는 공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온라인 스트리밍을 대안으로 내세우는 경우도 많다. 제대로 된 장비나 기술이 없는 상태로 공연 실황을 중계하는 일은 공연을 만드는 사람에게나 공연을 보는 사람에게나 결국 상처가 된다. 공연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공연을 보는 사람 역시 소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연 기록 영상을 확보하고 있는 국공립제작단체의 경우에는 온라인 중계 혹은 송출의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민간공연단체에서는 시도조차 쉽지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공연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정부가 중단 및 방역 조치를 내린 다중이용시설에 극장이 속해 있지 않았지만, 학교도 안가고 종교 시설도 문을 닫게 만드는데 왜 극장은 문을 여는지 납득할 수 없는 시민들의 민원이 있었고 곧 극장에도 조치가 내려졌다. 서울시에서 공문으로 만들어 보낸 관객 간 거리 2m 유지지침 논란은 공연계를 들쑤셔 놓았다. 그 지침에 따르면 소극장에서 연극을 볼 수 있는 관객은 많아야 5명 쯤 되겠다. 코로나19로 인해 피해를 입은 예술인에게 주는 지원금에 선정되기 위해 새로운 연극 창작에 관한 지원서를 쓰게 만드는 지원 정책의 관행도 문제가 되었다. 예술 활동을 증명하지 않으면 예술 활동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모순된 구조가 드러난 것이다. 긴급재난지원금처럼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지원금을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연극으로 벌 수 있는 돈은 생계를 유지하기에 역부족이지만 대부분의 연극인에게 연극은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다. 모든 직업인이 그러하듯, 연극인에게는 연극이 곧 생계이고 삶이다.

온라인 스트리밍이 일시적 미봉책이 아니라 공연예술의 예견된 미래라면, 우선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고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우연히 영상으로 송출되는 연극을 보고 난 후, 연극이라는 장르에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도 있다. 관객개발이라는 연극계의 오래된 꿈이 코로나19로 인해 가능해진다고 낙관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유입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어쩌다 연극 영상을 보게 됐는데 연극도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잠재적 관객으로 추산할 수 있을까? 온라인 공연영상을 돈을 주고 봐야한다면 과연 관객, 아니 시청자가 얼마나 될까? 그들이 기꺼이 티켓 값을 지불하고 공연장에 온다고 믿어도 될까?

무엇보다 온라인에서 영상으로 보는 공연을 연극이라고 불러도 될지 고민이 된다. 더 많은 사람이 연극 영상을 쉽게 접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또는 매체 간 혼종교배를 통한 새로운 장르의 예술 장르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과연 연극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연극을 연극으로 만들어 주는 연극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몇 개의 연극을 찾아보았다.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점점 집중력이 떨어졌다. 극장에 있을 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객석이 불이 꺼지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방의 불을 끄고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몸이 더 어색해졌다. 채팅창을 열어보았다. 연극과 상관없는 반응들이 난무했다. 재미있는 드립이 등장하면 눈길이 갔지만 머릿속이 엉키는 느낌이 들었다. 채팅창도 끄고 공연 영상도 껐다. 다음에 볼 수 있겠지 하는 기약 없는 생각도 했다. 비대면 강의처럼 익숙해지지 말아야지 하면서 결국 이 방식에 익숙해지게 될지 고민이 늘어났다.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대립되는 공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제 세계를 대체할 수 있는 가상의 세계도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온라인이 홈 루덴스는 물론, 호모 루덴스의 실존적 기반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이토록 랜선에 의존하고 살았었나 하는 자각이 들어 아연실색했다. 언제부턴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문화 활동을 랜선 ○○으로 부르는 현상이 늘어났다. 같은 말이지만, ‘랜선을 강조하면서 우리는 어쩌면 더 강하게 물질적으로 연결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랜선 공연에 없는 것 중에 제일 아쉬운 것은 관객들의 박수소리이다. 랜선 공연에서 박수는 잡음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잡음이 제일 그립다. 티켓을 받아들고 어두운 극장으로 들어가 자리를 찾아 앉고 난 뒤에 찾아오는 정적. 부스럭거리며 가방을 정리하고 핸드폰을 끄는 소리. 옆 사람에게만 들리도록 말소리를 낮추고 배우가 등장하지 않는 무대를 둘러보는 몸짓. 이윽고 막이 오른다. 배우들이 등장하는 발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이 모든 잡음들이 없는 공연은 어쩐지 진짜가 아닌 것만 같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는 같은 시공간을 공유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하는 응원이다. 랜선 공연의 커튼콜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한쪽에서 치는 박수의 세계는 완성될 수 있을까. 

 

: 양근애(문화평론가)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 평론과 드라마터지, 극작을 병행하고 있다. 2016년 방송평론상 수상. 역사, 기억,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읽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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