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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지의 문화톡톡] 영웅 없는 세계의 영웅 서사
[이은지의 문화톡톡] 영웅 없는 세계의 영웅 서사
  • 이은지(문화평론가)
  • 승인 2020.07.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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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물의 존재조건

오늘날 우리는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타고난 숙명을 감수하고 이 과정에서 때로는 자신을 기꺼이 희생함으로써 귀감이 되고 오래도록 회자되는 영웅들은 과거의 유물이거나 가상의 창조물에 불과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개인의 행동 여하에 내맡겨버리는 근대적 세계관 속에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 되었고, 그 실패 또한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옛말이 무색해진 까닭은 영웅을 배태할 수 있는 세계 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는 곧 개인이거나, 기껏해야 무수한 개인들의 총체일 뿐이다.


영웅이 존재할 수 없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히어로물은 넘쳐나고 있다. 기술과 자본이 집약된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 레퍼토리로서 히어로물은 건재할 뿐 아니라 대중서사의 중요한 축을 차지한다. 이는 영화가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이미지의 스펙터클을 소비하는 경험이 되어감으로써, 더 많은 자본을 투자할수록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할 수 있게 된 사정과도 맞닿아 있다. 한편의 영화에 집약된 자본의 위력이 막강할수록 영화 속 주인공 또한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부여받는다. 히어로물은 영화의 이러한 수익 창출구조에 가장 부응하는 장르인 셈이다.


더 대단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한 명의 영웅이 수호해야 하는 영역은 보다 광범위해진다. 일국을 지키는 것은 예사이고 지구 전체, 나아가 최근에는 우주 정도는 지켜줘야 히어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적 스케일로 세계를 지키는 영웅들의 능력 또한 막대한 자본력으로부터 창출된다. 초인적인 능력을 타고난 슈퍼맨도 고담시의 대부호인 배트맨이나, 군수산업체를 운영하는 아이언맨의 화려한 장비들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당신이 제아무리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라도, 혹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더라도, 자본이 없다면 영웅이 될 자격이 없다.

 

오늘날 영웅은 막대한 부를 움켜쥔 극소수의 최상류층에게만 허락된다. 자본의 유무가 영웅의 자격을 판가름하는 유일한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웅의 자격이 자본력이라고 해서 그것의 사회경제적 측면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그가 엄청난 돈을 퍼붓는 까닭은 인류와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함인 것이다. 그가 지향하는 대의와 이를 지키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개인적인 고난은 다시금 그의 자산이 된다. 그는 만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이러한 일련의 전개 속에서 영웅의 유일무이한 자격인 최상류층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부의 불평등은 완전히 망각된다. 즉 영웅은 그가 존재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망각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 구조로부터 탈구되는 안티히어로

반면에 히어로물과 정반대되는 반영웅 서사의 경우 구조적 조건이 보다 부각된다. 그 사례 중 하나로 몇 해 전 개봉했지만 크게 흥행하지는 못한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전작 <블레이드 러너>의 30년 이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간과 리플리컨트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게 된 특이점 이후, 인간과 리플리컨트 간의 사랑 또한 가능함을 여지로 남겨둔 전작의 메시지 또한 이어받고 있다. 리플리컨트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된 주인공 K는 블레이드 러너의 임무에 충실하여 그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바로 그 아이일 수도 있다는 여러 정황들과 마주하게 된다.

 

 K는 단지 그 아이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그 아이를 복제한 리플리컨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K의 행위는 인간에게는 결코 던져질 수 없는, 즉 ‘복제 인간’만이 마주할 수 있는 실존적 물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 진위 여부를 추적함으로써만 자신의 존재 의미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복제 인간의 숙명이다. 분명 그는 가짜이지만, 임무를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여부를 스스로 규명하려 한 K의 행위 자체는 그가 가짜라는 사실을 훨씬 초월한다. 단지 체제를 이탈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에 불과했던 그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거스르면서까지 자신의 기원을 쫓는 이로 거듭나는 이 실패의 서사는 반영웅적 성격을 띠고 있다.


관객은 무대 위의 영웅이 처한 운명의 비극성에 감정적으로 접속함으로써 동정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반면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는 자각 후에 건물 밖 계단에 쓰러져 죽어 가는 K는 철저히 무대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영화 속에서는 가짜로 밝혀진 그의 운명을 알아주는 사람도, 동정해주는 사람도 전무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에게 감정적으로 동일시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가 단 한 명의 영웅이 아닌 모두를 대표한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얼마든지 복제 가능한 견본이지만 자신의 기원을 추적한 유일무이한 견본인 그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아가 실패한 인정투쟁은 반영웅 서사라고 할 만하다.

 

<조커> : 구조를 탈구축하는 안티히어로

​또 다른 반영웅 서사로는 영화 <조커>를 들 수 있다. 조커는 처음부터 코미디언이 되기를 간절히 희구하였고 이를 위해 자기 나름으로 경주하지만 번번이 좌절된다. 그는 관객으로부터 웃음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무대에서 외면당한다. 노력에 대한 보상은커녕 조롱과 비웃음만 받은 그는 자신의 우상이자 대부와 같았던 머레이 프랭클린의 쇼에서 무대를 완전히 전복시켜버린다. 중산층의 소비재로서 적당히 상스럽고 위트 넘치고 세련된 코미디의 무대는 오직 조커 자신의, 나아가 자신과 같이 불행한 이들의 삶의 궤적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지독한 블랙 코미디의 무대로 탈바꿈한다.

 

이 파괴적인 전복을 통해 그는 바로 자신의 손으로 세운 무대 위의 코미디언으로 거듭난다. 나아가 이에 동조한 대중의 손에 이끌려 더 큰 무대, 즉 그의 코미디가 더는 코미디에 그치지 않는 현실-광장이라는 무대에 세워진다. 조커는 중산층 중심 사회의 코미디-영웅을 직접 끌어내렸을 뿐만 아니라 영웅이 끌어내려진 자리를 스스로 대체함으로써, 즉 영웅이 세워지는 무대 자체를 교체함으로써 혁명적인 반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스 비극에서 영웅은 그의 운명에 의해 몰락하는 낙차가 크면 클수록 보다 비극적으로 훌륭한 것으로 공식화되어 있다. (한 국가의 왕자였던 외디푸스의 끔찍한 말로를 보라.) 이에 견주었을 때 두 영화의 주인공들의 반영웅적 면모는 보다 명료하게 드러난다. K는 자신의 운명을 영웅의 그것으로 확신하고 서사를 이끌어나가지만 그 확신이 오류로 밝혀짐으로써, 다시 말해 영웅의 운명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비극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운명이 그의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의해 감당할 수 없는 낙차를 겪는다. 이 때 그가 겪는 낙차는 위에서 아래로의 하강이 아니라 중심에서 외부로의 이탈, 즉 튕겨져나감에 가까운 것이다.

 

조커의 경우, 그가 조커가 되어가는 과정부터가 운명적이라고 할 만한 것과 정반대된다. 그는 철저히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소외와 멸시의 폭력 속에서 조커로 ‘만들어진다’. 그를 조커로 만든 것은 계시나 운명이 아니라 사회 자체인 것이다. 이 만들어진 운명과의 상동 속에서 폭도들의 영웅으로 추앙받음으로써 그의 운명은 영웅의 운명과 정반대 방향의 낙차, 즉 위에서 아래로의 추락이 아닌 밑바닥에서 위로의 상승을 통해 극적인 낙차를 연출한다.

 

불가능한 히어로와 가능한 안티히어로

히어로물이 ​철저히 한 개인의 능력과 자산으로 서사를 수렴한다면, 안티히어로물은 한 개인이 종속된 구조 자체를 서사화한다. 이는 범인(凡人)이 영웅의 자리를 무모하게 추구하면서 구조 바깥으로 탈구하거나 구조를 뒤집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주인공 K는 자신이 영웅이라는 착각 속에서 서사의 바깥으로 밀려나고, <조커>의 주인공은 소수만이 영웅의 자리를 독과점하는 구조를 향한 다수의 공분을 이끌어내어 구조를 전복시킨다. 


히어로물은 극소수의 개인이 자본을 동원하여 자신을 향한 절대 다수의 명예와 숭배를 사적 이윤으로 취하는 것을 대중오락의 형식으로 학습하게 한다. 이를 통해 자본을 독과점하는 소수에 대한 저항감을 효율적으로 완화시킬 수 있다. 한편 이렇게 학습된 감각은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화하여 개인의 책임과 희생을 당연시하는 체제 순응적 태도를 길러내는 데 일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히어로물은 세계를 구원하는 요란한 서사가 무색하리만큼 실제 현실의 문제를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고착화한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글 : 이은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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