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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의 문화톡톡] 지나가고, 지나치는 순환의 서사-<애프터 웨딩 인 뉴욕>
[김희경의 문화톡톡] 지나가고, 지나치는 순환의 서사-<애프터 웨딩 인 뉴욕>
  • 김희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0.07.27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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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은 흐름과 반복의 결합이다. 시간에 따라 흐르지만, 종국엔 돌고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흐른다는 점에선 자율성과 개방성을 띠지만,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점에선 불가항력적이다. 인생은 긴 흐름에서 흐름과 반복의 교차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죽음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까지 그렇다. 이 안에서도 결별과 재회처럼 서로 상반된 것들이 교차하며 수많은 순환이 일어난다. 바트 프룬디치 감독의 영화 <애프터 웨딩 인 뉴욕>은 그 순환의 줄기를 이자벨(미셸 윌리엄스)과 테레사(줄리안 무어) 두 여성의 서사에 담아 그려낸다.

 

능동성과 수동성의 교차

인도 아동 재단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돕고 있는 이자벨을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대표인 테레사가 뉴욕으로 부르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테레사가 거액의 후원을 제시하면서도 시간을 끌며 이자벨은 뉴욕에 계속 머물게 한다. 그리고 이자벨을 딸인 그레이스(애비 퀸)의 결혼식에 초대한다.

여기서 이자벨은 자신의 20년전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이자벨은 전 남자친구인 오스카(빌리 크루덥)과 합의 하에 친딸 그레이스를 입양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오스카는 그레이스를 그대로 키우고 있었으며, 테레사는 이들과 만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이자벨과 테레사 사이의 긴장감, 이자벨과 테레사 가족과의 비밀, 두 사람의 대비되는 공간과 상황 등이 펼쳐지지만 영화는 다소 단조롭게 진행된다. 커다란 갈등이나 충돌이 없으며, 각 인물의 내적 갈등이 심도깊게 다뤄지진 않는다.

 

그러나 서로 맞물려 나타나는 흐름과 반복은 미시적인 관점에 갇히지 않는다. 보다 근원적인 순환의 원리에 도달한다. “우리가 세상을 지나가는 걸까. 세상이 우리를 지나치는 걸까”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말이다.

세상을 지나가는 능동성, 세상이 우리를 지나치는 수동성은 인간과 삶의 순환에서 교차되어 나타난다. 이자벨과 테레사는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을 지나가는 능동적인 캐릭터다. 삶을 진취적으로 개척하고 일궈간다. 이자벨은 제이라는 한 남자 아이에게 강한 모성을 느끼며 엄마처럼 돌보고 있다. 테레사 역시 능력있는 CEO이자 자상한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그러나 오스카가 한 “우리가 세상을 지나가는 걸까. 세상이 우리를 지나치는 걸까”라는 말에 대한 테레사의 답변은 결코 이 능동성만으로는 삶을 완성할 수도, 완성되지도 않음을 암시한다. 테레사는“북부로는 가지 말자. 이 시간에 엄청 막혀”라고 답했다. 그리고 테레사는 이 얘기를 파티에서 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하고, 영화는 테레사의 답변을 잠깐 스쳐가는 농담처럼 처리한다. 그러나 그 답변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 테레사로부터 나올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다. 피할 수 있는 험난한 길은 피해 가려 노력할 수 있으나, 거대한 운명이 우리를 스쳐갈 땐 어쩔 수 없이 수동성을 띠며 운명과 마주하게 됨을 말이다.

 

어디든 흐를 수 있는 새처럼

영화는 둥지와 새를 중요한 장치로 활용한다. 영화 오프닝에서 이자벨은 인도에서 자신의 돌봄의 대상인 아이들과 함께 있다. 다른 아이들은 명상을 하고 있지만, 제이는 손으로 새 모양을 만들고 있다.

어디든 흐를 수 있고, 또 돌아올 수 있는 새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장치로 작동한다. 이자벨은 뉴욕에 있는 동안도 제이를 줄곧 떠올릴 정도로 도움을 주고 싶어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 제이는 그것과 별개로 새처럼 자유롭고 능동성을 가지고 있음이 나타난다. 이자벨이 자신과 함께 뉴욕에 가길 원할 때도 제이는 의존적인 모습 대신 새처럼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 그리고 제이가 이자벨에게 건물 위에 새로운 둥지가 생겼음을 알리는 씬은 하나의 둥지가 사라지더라도, 새로운 둥지가 생길 수 있고 또 스스로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클로징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노는 제이,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이자벨의 모습을 비추는 것은 그러한 삶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뉴욕에서 테레사가 그토록 안타까워했던 망가진 둥지도 마찬가지다. 테레사는 자신이 떠나고 난 후의 아이들을 걱정하며 망가진 둥지를 집안으로 가져온다. 그러나 테레사의 든든한 둥지 위에 자란 아이들이, 테레사가 떠나더라도 또다른 날갯짓을 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가 뉴욕에서 망가진 둥지, 인도에서 새로운 둥지를 배치한 것은 이자벨과 제이만의 관계를 암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순환되어 이자벨이 아이들의 새로운 둥지가 되고, 그 둥지 위에 아이들은 힘차게 날 것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영화는 자연스럽게 흐름과 반복을 결합시킨다. 영화가 굳이 이자벨이 자신이 과거 그레이스를 입양 보내려 했다는 사실로 인해 깊은 죄책감에 빠지지 않도록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레이스가 예상보다 쉽게 이자벨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설정한 것, 테레사가 떠난 이후 아이들이 크게 아파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별과 재회가 반복되는 순환의 과정 속에서 인간은 때론 열심히 세상을 지나가고, 또 세상이 지나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날갯짓을 하는 것이기에.

 

*사진:네이버영화

*글:김희경(문화평론가)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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