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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학교는 언제나 학생들의 것이다 - <졸업>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학교는 언제나 학생들의 것이다 - <졸업>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0.08.19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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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대한 기대가 멀어진 지 오래다. 대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누구도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대학 내 자리를 얻는 것은 누군가의 뒷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학위는 장사하는 대학에서 판매하는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이와는 상관없을 누군가의 노력은 이 불신 앞에서 예외로 무시될 뿐이다. 예외가 더 많은 수를 차지할 수 없는 지당한 법칙은 대학생의 가치 역시 추락시킨다. 그래서 대학에 다니는 많은 이들은 쉽게 조롱거리가 된다. 특히 누군가의 뒷배가 될 수 있을 만한 인맥이 되고, 판매되더라도 가치가 있을 만한 졸업장을 줄 대학을 다니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들의 삶은 쉽게 돈 지랄이 되어 버린다. 학교의 서열에 따라 누군가는 학교 다니느라 힘들었다고 말할 수 없고, 또 그 학교가 어떤 일을 벌이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잘못됐는지를 말할 수 없다. 그런 학교에 왜 다니고 있느냐는 조롱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질타한다. 대학이 무너져가고 있다면서도, 그래서 힘들다면서도 왜 대학생들은 그렇게 얌전하고 순응적이냐며 혀를 찬다. 그러나 이들은 대학에 대한 거대한 불신이 그리고 그것에 대한 폄하가 학생들의 입을 막았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항의를 한다 해도 그것이 누구의 입에서 나왔을 때 사람들이 귀 기울일 것인지가 정해진 상황에서, 힘든 것은 힘들다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너희 탓이라는 말은 앓는 소리 하지 말라는 협박에 가깝다. 학교의 주인이 될 자격을 멋대로 정해 놓은 지금 과연 ‘우리’ 대학을 위해 목소리 높일 수 있는 이들을 얼마나 될까.

 

영화 <졸업>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상지대학교 학생들의 약 15년에 걸친 긴 투쟁기는 대학의 서열이 아닌 ‘대학’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대학은 쉽게 순위 매길 수 없는 누군가의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새기고 있는 것이다. <졸업>은 이제 후배들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이 다시 벌어진 상황 속에서 선배가 든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다. 카메라는 차분히 혹은 위험하게 긴 시간 기록을 이어간다. 학생들의 요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했다. 학교를 개인의 사유물로 생각했던, 학교의 구성원을 자신 마음대로 끼워 맞출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사장은 나가라는 것, 그리고 돌아오지 말라는 것. 이는 이의가 낄 틈도, 긴 투쟁으로 이어질 이유도 없을 문제였다. 그럼에도 싸움은 길어졌고, 심지어 그가 돌아오기까지 했으며, 누군가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죽음까지 생각했다.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이 상황들을 <졸업>은 굳이 피하지 않는다. 아니 피할 수 없다. 학교가 학생들을 학교의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정책마저 이를 승인해 버린 상황에서, 비리로 모았을지라도 자기 재산을 찾아 누군가 돌아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돌아오자마자 오랫동안 군림해오던 역사가 담긴 ‘1974’가 찍힌 로고로 기존의 로고를 바꾸어버렸고, 바로 이 행동은 그들이 어떠한 태도로 학생들을 생각하고 대할 것인지를 드러냈다. 그들은 학생들의 요구에 당연히 응하지 않았고, 학생들의 말꼬리를 당연히 붙잡고 늘어졌으며, 학생들에게 당연히 예의를 논했고, 버릇을 들먹이며, 절차를 따졌다.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이 치졸함과 대비되는 학생들의 모습을 <졸업>은 신선하게 한편으로는 너무 담담해 분노할 만큼 먹먹하게 담아낸다.

 

<졸업>은 오랫동안 시위를 이어온, 단식을 하다 기절하고, 학교 직원에게 따귀를 맞아 목을 다치고, 옥상에 까지 올랐던 이들이 실은 시위 장면을 봤을 때 도대체 왜 저러는 거냐고 생각했던, 싸움을 싫어했던, 집회가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거리를 두었던 이들이 이어온 행동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그들은 시작이 달랐다. 엄청난 대의명분을 짊어지고 오로지 거대담론으로 파고들었던 과거와는 등을 졌고, 그래서 그들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들은 과거 누군가가 했던 삭발이나 단식, 수업 거부를 행했다. 그러나 그들은 솔직히 하기 싫었다는 것을, 방법을 몰라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비슷한 장면이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를 유난이라 생각할 이들에게 도무지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도저한 사명감과 결의가 아닌 누군가의 최선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이들에 대한 멸시가 서린다. 왜 저러느냐고 말하기 전에, 그들이 무엇 때문에 저렇게까지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경고가 자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목소리는 상지대의 문제를 쉽게 대학과 대학생을 까내리는 이들을 넘어 국가의 정책이 얼마나 학교를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는지, 그래서 그에 따른 피해자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확대된다. <졸업>은 사학법 개정에 반대한다면서도 사학 비리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하는 대통령 후보자의 무지는 횡설수설로, 비슷한 피해를 입은 학교들의 연대는 서로에 대한 동질감과 위로로 각각 카메라에 담았다. 정세의 변화와 함께 움직이는 상지대에 대한 결정과 그 변화들의 교차는 상지대의 문제가 비단 하나의 학교가 아닌 많은 사립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렇기에 주목해야만 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넓게 훑어낸다.

​​​​​​​물론 이를 이뤄내는 과정은 쉽지 않고, 매우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히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공부해야 하며, 취업해야 하고, 그래서 학점을 따기 위해 수업을 들어야 한다. 4주간 이어간 수업거부가 불안해하는 학생들의 요구로 잠정 중단이 되었을 때 복잡미묘한 학생회장의 얼굴은 쉽게 밝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원망스러우면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이야기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학생회장의 태도가 단 한번도 학생들에게 사과하지 않은, 사과받아 마땅한 이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은 이들과 명확히 대비되면서 이들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며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부총장은 심지어 학생 대표가 옥상에 올라갔으니 제발 나가달라며 무릎 꿇은 학생조차 외면하지만, 그 앞에서 무릎 꿇은 학생은 이야기한다.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깟 자존심이 대수냐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먼저라고. 그들의 내세운 당연한 명분이 새삼스러운 것은 너무도 오랫동안 대학생들에게 요구해왔던 가치가 허황됐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졸업>은 학생들과 이사회 퇴진을 외치며 부당 징계로 학교를 떠날 뻔했던 교수가 자신의 이름 뒤에 ‘총장’이라는 직함이 박힌 졸업장을 학생들에게 수여하는 장면을 보여주고야 만다. 그들의 방식은 무모해 보였지만 통했고, 학교는 국가를 비롯한 다수의 힘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대학생들은 그것을 촉발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과거와는 달라진 새로운 가치로 나아가고 있었다. <졸업>은 자신들을 괴롭혔던 극한으로 몰아넣었던 이들을 미워하기보다 눈감고 귀 닫은 그들을 불쌍하게 바라본다. 차라리 연민을 보내는 그들의 여유 혹은 명확한 선긋기는 그들의 삶에서 부딪히는 가치들을 새롭게 조정할 방법을 마련할 기준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긴 시간을 지나 따로 찍은 그들의 졸업사진의 푸근함은 처절함이 아닌 행복을 보여주었다. 멋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졸업>(2019)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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