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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삼으려거든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거든
  • 홍세화
  • 승인 2011.06.07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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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할 땅은 좁다. 하지만 아름답다.” 넓은 평원과 구릉의 농업국이기도 한 프랑스의 지인들에게 이렇게 응수했던 나는 앞으로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이 땅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게 아니다. 자손에게서 빌린 것이다.” 생텍쥐페리의 말이 옳다면, 흉물스럽게 파헤쳐지는 4대강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의 공주들과 ‘어린 왕자’들의 몫까지 빼앗는 살풍경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도래할 위기라면 제때 찾아오는 것이 낫고 그것을 기회로 삼을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오늘 군림하는 탐욕 세력은 위기의 도래도 그 위기가 기회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내일 사업이 준공된다 해도 오늘 중단하는 것이 이익”(24∼25면)이라는 말에 귀기울일 수 없는 이유다. 이번호 한국 특집은 마치 주사약으로 수명을 연장하듯 위기를 지연시키려는 극처방이 우리 자연에 가한 폭력을 살펴보고자 내성천을 찾았다.

‘현실’이라는 말은 상충된 두 개의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바꾸어야 할 것’으로서의 현실이며, 다른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서의 현실이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운동의 전선이 ‘지금 여기’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면, 그것은 현실을 바꾸어야 한다는 힘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힘에 맞서는 양상을 보인다. 역사적 존재로서 구성원이 현실을 대하는 태도와 시각이 사회에 따라 편차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가령 명예혁명을 거친 영국 신민(Subject)의 현실이 대혁명을 거친 프랑스 시민의 현실보다 ‘받아들여야 하는’ 쪽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편차가 유럽에서 ‘자국의 이익’ 앞에 사회 통합을 어렵게 하면서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위기가 필요하다”(4∼5면)고 말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배경일 것이다. 대처 총리 이후 30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는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가장 강력한 긴축조치”를 불러왔고 마침내 영국에서도 저항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6∼7면).

내년 실시될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로 당선 가능성이 높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강간미수, 성추행 혐의로 체포되는 사태에 “DSK 일병구하기”로 나선 프랑스 언론을 비판한 마리 베닐드의 글(1, 3면)은 한국의 언론 현실에 비춰볼 때 흥미롭다. 특히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면서 그 결과를 애석해한다”는 점은 두 나라의 언론이 발가락만 닮은 정도가 아닌 게 분명하다. 인구과밀화에 대한 공포와 감소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하는 인구 문제를 조명한 특집은 한국의 저출산과 노령화 추세와 관련해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11∼17).

이 밖에도 연예인과 정치의 관계, 한국 대학 교육의 나아갈 길 등 한국 관련 글들을 비롯해 읽을거리가 풍요롭다. 위기를 받아들여 기회로 삼으려는, 받아들여야 할 현실보다 바꿔야 할 현실 쪽에 서려는 독자 여러분의 열독을 바란다.

(지난 5월20일 저녁 부산 광안리 앞 바닷가에서 안영춘 편집장과 저를 환대해주신 부산 경남 지역 독자모임 회원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글•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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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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