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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칼럼] 대중은 우매해야만 하는가
[서포터즈 칼럼] 대중은 우매해야만 하는가
  • 송소민(르디플러)
  • 승인 2020.09.15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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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2차 대유행 조짐이 슬금슬금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 또한 끊이질 않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기 위해서, 뿌리깊은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나 여기 살아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30명이 넘는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연대하기 위해서, 내 자유를 침해하는 방역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서, 무능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서, 또는 의사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들은 전염병도 그들을 막을 수 없다며, 길거리로 뛰쳐나와 구호를 외쳤다.

우매한 대중과 포퓰리즘

소수의 엘리트 전문가들이 내려다보는 대중은 그런 이미지다. 무질서하고 과격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화가 잔뜩 나 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사회 엘리트의 특권에 불만이 가득하고,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매몰되어 폭력적으로 밀어붙인다. 우매하고 어리석다. 그들에게 정치를 맡겨서는 절대 안 된다.

포퓰리즘은 그런 대중을 겨냥하여, 오로지 표심을 얻기 위한 공약을 내세우고 대중을 선동하는 세태를 비난하기 위한 어휘로 종종 쓰인다. 특히 한국에서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특정 정치세력들 간의 정쟁, 특히 김대중 및 노무현 정부의 개혁적 정치를 대중인기영합주의(popularism)로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중화된 바 있다.[1]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토의따위에 근거하지 않은, 어중이떠중이 대중들의 입김에 휩쓸려 이루어지는 정치를 꼬집는 것이다.

그러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에 실린 한 기사에서는 이러한 포퓰리즘인류를 구원할 치료제라고 말한다. 그것이 기득권층에 의해 이미 객관화된 시스템을 깨뜨리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 대부분이 이성과 과학으로 무장한 전문가집단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항하는 포퓰리즘은 으레 과학의 적인 것처럼 묘사된다. 우리는 찬란한 진보신화에 빠져, 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유산인 포퓰리즘을 야만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다는 것이 기자의 주장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의 어원과 역사를 살펴본다. 그가 말하는 포퓰리즘에서는, 대중이 우매하지 않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주체성을 부각한다.

"요컨대, 최초의 포퓰리스트들의 세계관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여겼고, 민주주의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시민들을 섬기고 시민들에게 정보를 알리는 것으로 제한돼야 한다고 믿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전문가 집단

대중과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 집단이다.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들은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중은 그들의 의견을 큰 저항 없이 수용하고, 그들이 가진 특권은 전문가가 되기까지의 노력에 대한 보상으로 인식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보상은 금전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 집단은 연봉도 높으며, 따라서 기득권층으로 변모한다. 그러나 노오력주의의 확산은 한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통해 얻은 성과에 대해 그 어떤 것도 묻지 않는다. 매해 시골에서 열심히 독학해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대서특필되며, 이들은 계급 상승이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그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응당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결과며, 이는 노력도 없이 부를 누리는 금수저들을 열심히 때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중은 인정할 건 인정한다. 그래서 어떤 기득권층은 사회적 환원과 관련된 도덕적 비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다.

기자가 그의 기사에서 상세히 다루는 것은 미국의 의료이기주의이다. 의료비용을 높게 책정함으로써 의료안전망으로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을 배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 시스템은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공정하고 무결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이 취해왔던 것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 돈이 없어도 누구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보편적인 보건시스템을 구상해 실현시키려 했던 의사 샤디드는 그의 의사 면허를 박탈당했다. 전문가로서의 모든 자격을 갖추었는데, 전문가로서의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이유로 지부에서 쫓겨나다니 아이러니하다.

기자는 이렇게, 소수의 엘리트 전문가 집단이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정당하게 합리화까지 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러한 특권이 남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중들이 정치에 있어 보다 주체적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허울 뿐인 민주주의는 기성 정치의 틀을 더욱 견고히 하며, ‘똑똑한 전문가우매한 대중의 양분화는 대중들에 의한 정치를 그저 포퓰리즘으로 전락시켰다.

대중은 절박하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대로 포퓰리즘대중의 주체화와 동일시하면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표되는 포퓰리즘에서 대중은 오히려 타자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백인 저소득 노동자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대놓고 인종차별과 각종 소수자 혐오를 자행한 대통령을, 주변인들에게 숨겨가면서까지 지지하는 심리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에게 한 표를 던짐으로써, 나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일 것이다, 비록 나 대신 다른 이가 벼랑 아래로 떨어지더라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 1세계에서 극우정당들이 떠오르게 된 것은, ‘3세계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성장한 선진국에서도, 그 무자비한 식민행위의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고르게 돌아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나라가 부유해져도 국민의 일부는 여전히 굶주렸고, 빈부격차는 오히려 심화되었으며, 청년실업률도 높아졌다. 국민들은 기성정치인들에게 신물이 났다. "우리의 사회보장, 공공서비스 제도는 큰 압력을 받고 있고 과부하에 걸려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공평한 것"이라는 주장은 사회적 하층민과 저소득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2] 자신이 선진국의 국민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그들을 안심시켜주지 않았다.

이런 목소리들을 수용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공동체 밖으로 추방하고 있는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대중의 주체화의 발현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러한 대중의 주체화는 대중 자신의 해방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지배를 낳는 불완전한 주체화라 할 수 있다.[3] 오히려 대중은 타자화된다. 국민들의 절박함을 이용할 뿐, 포퓰리스트 정치인들 역시 그런 국민들을 우매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대중의 목소리는 어디로 가는가

대중들은 분명 점점 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하루 평균 851여 건의 청원이 올라오고, 24.5만 명이 방문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4] 다양한 SNS를 통해 여러 의견들이 공유되며, 소수자 운동 또한 그에 탄력을 받아 확산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의 정치적 목소리로 받아들여지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사견으로는, 주류 정치에 임하는 엘리트대중의 괴리가 좁혀지지 때문인 듯 하다. 21대 국회의원들이 후보 등록 때 신고한 재산은 평균 218000만원으로 국민 평균 재산의 5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5]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엘리트들은 오히려 그들 자신과 비엘리트들을 철저히 분리할 사회문화적 자본들을 덧그린다.

"권위에 대해 무례한 도전을 받을 때마다 전문가들은 격분했다. 그러나 논쟁의 핵심주제는 사실 권위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특권이다. 전문가들은 우리가 몸을 굽혀 그들의 발 앞에 절하거나 그들이 내건 명분 아래 모여 함께 행진해주기를 원한다."

소수의 엘리트 전문가 집단은, 우매한 대중들과는 대비되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들의 모임이다. 그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 대중들은 동의한다. 투표를 통해 나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은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들은 대중들과는 괴리되어 있다. 전문가가 되는 과정과 그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폐쇄적이라는 점, 전문가가 될수록 기득권이 되는 점, ‘우매한대중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 대중들은 점점 소외될 수 밖에 없다. 그들의 목소리를 광장을 배회하지만, 전문가들 중 누구도 듣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표심을 얻고자 하는 전문가들은 듣는다. 선거가 끝나면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한국에서는 87일을 기점으로 전국적인 의료인 파업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한 막대한 의료 공백과, 비슷한 시점 대형 교회들을 중심으로 다시 시작된 코로나 2차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파업을 강행한 탓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한 의사 단체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국민들은 전문가 집단이 그들의 소명을 저버리고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고 한다며 분노했다. 정부의 의료정책과 파업의 맹점들을 잘 몰라도, 파업에 대해서는 대부분 냉소적이다. 똑똑한 사람들이 왜 저럴까, 괘씸하다는 반응이다. 그동안 감히의심받지 않았던 그 똑똑한 사람들의 특권을 의심하는 것, 배제된 자들이 자신의 몫과 평등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즉 배제를 극복하며 이 과두제에 근본적으로 저항하는 방식으로 주체화되는 과정”[6]이야말로 기자가 주장하는 진짜포퓰리즘의 면모일 것이다.

대중은 우매하지 않아도 된다. 대중은 우매하지 않다. 그들의 목소리는 널리 확산될 수 있으며, 확산되어야만 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그의 저서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에서 문제는 더 이상 정치적문제와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를 재발명하는 것”[7]이라고 말했다.

 

기사 보러가기

의료 이기주의에 맞선 미국의 포퓰리스트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069

 

참고문헌

1) 김현준, 서정민 (2017). 포퓰리즘 정치 개념 고찰. 한국정치학회보, 51(4), 51.

2) 한상원 (2016). 억압된 것의 회귀 : 브렉시트, 트럼프 그리고 증오의 포퓰리즘. 진보평론(70), 249.

3) 한상원 (2016). 억압된 것의 회귀 : 브렉시트, 트럼프 그리고 증오의 포퓰리즘. 진보평론(70), 253.

4) 최지희 (2019, 116). 청와대 국민청원 하루 방문자 24.5만명건설 청원은 1만건. 건설경제. Retrieved 92, 2020, from http://www.cnews.co.kr/m_home/view.jsp?idxno=201911061614392260288

5) 이동욱 (2020, 64). 21대 국회 신고재산 21.8국민 5배 수준. 스마트경제. Retrieved 92, 2020, from http://www.dailysm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684.

6) 한상원 (2016). 억압된 것의 회귀 : 브렉시트, 트럼프 그리고 증오의 포퓰리즘. 진보평론(70), 253.

7) 자크 랑시에르,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양창렬 옮김, 도서출판 길, 2016,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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