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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리숙한 '딸 바보'는 어떻게 영웅이 됐나 - <괴물>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어리숙한 '딸 바보'는 어떻게 영웅이 됐나 - <괴물>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0.09.2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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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괴물영화는 오랫동안 희귀종에 가까웠다. 1960년대 중반에 <대괴수 용가리>가 나온 이후 제작이 거의 중단된 상태였다. 그러한 점에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도전적인 작품이었다. 더구나 <괴물>은 일반적인 괴물영화의 문법을 따르지 않았다. 괴물의 탄생 배경과 실체를 영화 초반에 드러냈다. <에이리언> 시리즈나 <고질라> 등에서 괴물의 정체가 후반에 밝혀지는 것과 달랐다. <살인의 추억>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봉준호는 <괴물>에서도 장르 문법을 파괴했고 이를 통해서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을 완성했다. <괴물>은 장르 면에서는 슈퍼마켓을 연상시킨다. 모험, 액션,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SF, 판타지 등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영화이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보면, <괴물>은 신화의 보물창고와 같다. 신화의 괴물 퇴치 모티브와 서사, 주제 등이 압축돼 있다. 구체적으로는 모험, 영웅, 납치/구출, 재생/부활 등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동시에 <괴물>은 우리나라 사회 현실도 구체적으로 다룬다.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심화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담아낸다. ‘한강의 기적’의 현장에 돌연변이 괴물이 출현한다는 설정 자체가 이미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포함한다. 여기에 공무원이나 언론을 비롯한 권력 기관, 주한미군으로 상징되는 지정학적인 문제도 아우르고 있다. <괴물>에 대한 언급도 그만큼 다양하다. 이 글은 <괴물>의 여러 측면 가운데 인물의 내면 성장과 재탄생, 이와 관련된 통과제의 구조를 살펴본다.

통과제의(rites of passage‧통과의례)는 우리가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서 치르는 의식을 일컫는다. 탄생, 성장, 결혼, 죽음 등과 관련이 있다. 가장 보편적인 통과제의는 성년식이다. 성년식에서는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이나 사회적 지위의 변화가 중요하다. 따라서 미성숙한 인간이 성숙한 인간이 되어 집단의 구성원으로 재편입하는 과정은 모두 성년식에 포함된다. 통과제의를 거친 인물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아이는 어른으로 재탄생한다. 통과제의 모티브는 일종의 성장서사로 확장되는 것이다.

 

통과제의의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프랑스 인류학자 반 겐넵이다. 그는 통과제의의 구조를 ‘분리(seperation)-전이(transition)-통합(incorporation)’ 세 단계로 정리한다. ‘분리’는 일상세계에서 비일상적인 세계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분리는 흔히 공간 이동의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앨리스가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 하얀 토끼를 쫓아가고, 그 토끼를 따라 구멍 속으로 따라 들어가고, 신비한 세계에 도착하는 식이다. ‘전이’는 인물이 새로운 세계에서 겪는 시련과 모험의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사건들이 개연성과 핍진성을 가지고 있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다. ‘통합’은 인물들이 사회에 다시 합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일상세계로 복귀한 인물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다.

개연성은 이야기가 그럴 듯한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괴물>에서 한강에 돌연변이 괴물이 출현하는 설정은 개연성이 있나? 상식적으로는 한강과 괴물을 연결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괴물>은 프롤로그에서 괴물의 탄생 배경을 설명한다. 용산 주한미군기지에서 미군 장교가 독극물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버리도록 지시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2000년 발생한 맥팔렌드 사건을 끌어온다. 이어서 2002년 6월 낚시꾼이 한강에서 돌연변이 괴물의 치어에게 물리는 장면을 보여준다. 용산 미군기지에서 버린 독극물이 흐르고 흘러 한강으로 유입되고, 그로 인해 2년 후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영안실의 독극물 방류와 낚시 장면을 디졸브로 연결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인공 강두는 조금 모자라는 인물이다. 대낮에 매점 계산대에 엎드려 쿨쿨 잠만 자고, 손님용 오징어의 다리를 뜯어 먹어 항의를 받고, 오징어도 제대로 굽지 못한다. 결정적인 순간은 괴물에게 쫓기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딸 현서 대신 다른 여학생의 손을 잡고 달리고, 달리다가 엎어진다. 이는 현서가 납치당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헐렁한 추리닝 차림에 노랗게 염색한 머리는 또 어떤가?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 등장하는 강두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 그는 꼿꼿한 자세로 눈 내리는 한강 둔치를 응시한다. 또 현서와 함께 납치당했다가 살아남은 고아 세준을 살뜰하게 보살핀다. 딸 현서를 납치한 괴물과 사투를 벌이면서 이전과 다른 인물이 된 결과다. 강두는 정신적, 사회적으로 성숙한 인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강두의 변화는 괴물 퇴치와 통과제의 구조로 설명 가능하다.

 

통과제의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바빌로니아 인들이 새해를 전후해 12일간 연 아키투 축제를 꼽을 수 있다. 이 축제에서 바빌로니아 인들은 우주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를 낭송했다. 이 서사시의 핵심 내용은 괴물 퇴치와 우주 창조로 요약된다. 축제 참가자들은 두 무리로 나뉘어 주인공 마르두크와 괴물 티아마트의 싸움, 마르두크의 승리로 혼돈이 끝나고 우주가 창조되는 과정을 재연했다. 새해맞이 집단 통과제의가 괴물과의 싸움으로 상징화된 것이다. 괴물 티아마트는 원초적 혼돈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존재이다. 이 괴물은 영웅 마르두크에 의해 퇴치된다. 괴물과의 싸움과 승리, 재탄생으로 구성된 「에누마 엘리쉬」의 서사와 주제는 <괴물>에서도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 거의 모든 신화와 영화에서 괴물은 비정상적, 이질적, 부정적인 존재로 묘사된다. 이 괴물은 악한 존재로서 반드시 제거돼야 할 대상이다. 그리고 괴물을 물리친 인물은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괴물>은 신화의 괴물 퇴치 모티브와 통과제의 구조가 결합되어 있는 영화이다.

통과제의 신참자는 분리-전이-통합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격리, 유괴, 혼절, 단식, 육신 해체, 지하세계 여행 등의 시련을 겪는다. 통과제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는 신참자가 일상세계에서 분리돼야 한다. ‘분리’는 통과제의의 첫 단계이자 전이 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괴물>에서 분리는 괴물이 현서를 납치하면서 발생한다. 강두 가족의 평화로운 일상은 괴물이 등장하면서 파괴된다. 강두는 술안주 심부름을 갔다가 둔치에 난입한 괴물과 싸우고, 현서와 함께 도망치다가 손을 놓치는 바람에 현서가 괴물에게 납치당한다. 현서는 괴물의 은거지인 하수구에 갇히고, 강두는 현서를 잃고 혼비백산한다.

<괴물>에서 현서가 갇힌 하수구는 괴물의 배이자 대지의 내장이며, 모태의 상징이다. 강두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강두는 바이러스 감염 의심자로 판정받아 병원에 감금된다. 한강 둔치에서 괴물과 싸울 때 괴물의 피가 얼굴에 튀었기 때문이다. 강두는 병실에서 가림막이 처진 밀폐 공간에 갇힌다. 괴물의 뱃속에 삼켜진 것이다. <괴물>에서 하수구와 병원, 괴물의 뱃속과 병실의 밀폐 공간은 통과제의 의식이 행해지는 덤불, 구덩이, 무덤에 해당한다. <괴물>은 편집을 통해서 공간의 이러한 공통점을 강조한다. 강두가 사지가 묶인 상태에서 마취주사를 맞는 장면과 현서가 하수구에 감금돼 있는 장면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병원과 하수구, 의사와 괴물, 강두와 현서의 유사성을 강조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많은 신화에서 영웅은 괴물의 뱃속에 삼켜졌다가 탈출한다. 구약성서에서 요나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도망가기 위해 배를 탔다가 큰 물고기의 뱃속에 갇힌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갇혔다가 나온다. <괴물>에서 강두는 밀폐 공간에 갇히지만, 싸움의 주체가 되어 행동함으로써 프로타고니스트가 된다. 그는 병원 탈출, 총기 구입, 추적과 사투를 통해 괴물 퇴치라는 목표를 달성한다.

강두가 가족들과 함께 한강다리 아래를 헤집고 다니는 장면은 상징적이다. 강두가 통과하는 하수구들은 지하 동굴처럼 어둡고 구불구불하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다. 이 하수구들은 그리스신화의 영웅 테세우스가 아테네 소년소녀를 먹어치우는 괴물 황소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 위해 내려갔던 미궁을 닮았다. 테세우스의 영웅 신화와 <괴물>은 인물의 행적과 공간이 유사한 점이 많다. 크레타는 한강 둔치, 미궁은 하수구, 미노타우로스는 괴물, 현서는 소년소녀, 테세우스는 강두와 대응한다. 강두가 통과한 한강의 어둡고 음습한 하수구와 미노타우로스의 거처인 미궁은 그 외형과 내포하는 의미가 매우 비슷하다.

그런데 <괴물>과 영웅 신화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강두는 마르두크나 테세우스와 같은 신적인 존재 혹은 반인반신의 영웅이 아니다. 고귀한 혈통과 비범한 능력을 지니기는커녕 보통 사람보다 열등한 인물이다. 강두의 형제도 오십보백보이다. 남동생 남일은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현재는 실업자이다. 여동생 남주는 수준급 양궁선수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화살을 쏘지 못하는 습관이 있어서 대회마다 눈물을 삼킨다. 강두의 아버지도 젊은 시절 가족을 팽개치고 밖으로 떠돌아다닌 인물이다. <괴물>의 감동은 많은 부분 이 지점에서 나온다. 보통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강두와 그 가족들의 눈물겨운 가족애와 모험, 사회의 부조리에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행적이 관객들에게 감동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괴물과의 싸움, 즉 통과제의 의식을 치르기 이전의 강두는 정신적‧사회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였다. 강두는 아버지 혹은 사회인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강두는 통과제의를 거치면서 성숙한 아버지가 된다. 물론 강두는 그 전에도 아버지였다. 하지만 가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아버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두는 경제적으로 무능한 인물이었다. 강두는 아버지를 도와서 잔심부름이나 할 뿐이며, 현서에게 새 휴대폰을 사주겠다면서 동전을 모아둔 컵라면 통을 내밀 정도로 경제관념도 없다. 하지만 결말에서는 매점을 직접 운영하고, 세주를 부양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수행한다. 통과제의 ‘이전 상태’의 강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러한 행동은 강두가 현서의 납치와 죽음, 괴물과의 사투라는 시련을 겪으면서 어른-아버지 되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결과이다.

강두는 또한 비판의식을 지닌 사회인으로 거듭난다. 강두의 변화는 식사 직전에 텔레비전을 끄는 장면에서 나타난다. 텔레비전 뉴스는 괴물로 인해 발생한 바이러스 사태에 대한 미국 상원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를 중계하고 있었다. 미국 측 관계자는 “바이러스는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한다. 강두는 발을 뻗어서 텔레비전을 꺼버린다. 강두는 원래 사회의식을 지닌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현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뿐이다. 강두는 그 과정에서 무책임한 정부,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경찰, 진실 보도와 거리가 먼 언론, 환자의 인권보호에는 무관심한 병원과 차례로 싸웠다. 강두에게는 한국의 부조리한 사회 현실이 또 다른 괴물이었다. 따라서 강두가 벌인 괴물과의 사투는 2000년대 우리나라 사회현실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서 <괴물>의 통과제의는 시대성을 확보하게 된다.

<괴물>의 서사에는 괴물 퇴치 모티브와 통과제의 구조가 내재되어 있다. 통과제의 의식을 무사히 통과한 신참자가 이전과 다른 새로운 인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통과제의 의식의 서사와 주제는 영웅 신화로 확장된다. <괴물>은 통과제의와 영웅 신화의 익숙한 서사구조를 차용한 것이다. 또한 <괴물>은 우리나라 사회의 특수성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근대화‧산업화의 상징 공간인 한강을 배경으로 삼고, 주한미군과 권력기관의 문제점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봉준호 감독은 통과제의, 영웅 신화의 전형적이고 익숙한 서사구조에 21세기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가미해 한 편의 괴물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여기에 장르 파괴적인 재미까지 더해졌으니, <괴물>이 대중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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