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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오문희’와 ‘어머니’ 사이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오문희’와 ‘어머니’ 사이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0.10.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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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이성적 능력의 대척점에 놓고 그 관계를 역전시키려한 감독들은 대개 기억과 망각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창동 감독의 <시>에서 미자(윤정희)가 그러했고, <결백>에서 화자(배종옥)가 그러했다. 그들은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이거나 유일하게 양심 있는 증인이 된다. 그 상황은 곧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말’을 해야 하는 운명으로 뒤바뀐다. 이건 그들에게 부여된 강요된 침묵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치매는 ‘말할 수 없게 하는 것을 말하려 한다’는 저항적 상황의 훌륭한 조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앵자'는 꽤 상징적이다.)

 

영화 <오!문희>에도 그러한 맥락이 놓여 있다. 하지만 오문희(나문희)가 처한 상황은 사뭇 다르다. 기억과 망각의 문제가 아니라 치매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미 다르기 때문이다. 오문희의 치매는 분명 ‘빙의’와 같은 상태로 재해석되고 있다.

게다가 여기서의 ‘빙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황과 완전히 반대다. 이를 테면 빙의는 낯선 영혼이 정상상태인 자신에게 들어온다는 것이데, <오!문희>에서는 정상 상태의 이성이 소위, ‘낯선 상태로서의 치매 환자인 나'에게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은 기존의 치매 환자가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었을 때 항상 느낄 수 있는 어떤 강요와 강압, 억울함 등을 전혀 다른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다시 말해서 ‘치매’는 하나의 특별한 능력이 되어 외려 해결하지 못할 뻔 한 사건을 도와주는 능력으로 돌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희의 아들 두원(이희준)은 영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 문희의 언어를 해석하는 통역가의 역할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치매에 대한 이런 해석은 연기자들의 빼어난 연기와 절묘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러나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그런 재미만을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어려움은 모성애의 충돌 때문도 아니고 자식 된 도리의 문제 때문도 아니며, 어른스러운 아이의 눈물 때문도 아니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책임 때문은 더 더욱 아니다. 여기서의 치매는 그런 관습적인 맥락의 메시지에서 벗어난 어떤 기이한 메시지와 마주서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 메시지는 이렇게 묻고 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문희’와 ‘어머니’의 음성적 유사성 사이에 놓인 것은 무엇인가?

이를 명확히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은 치매를 의학적으로 규정짓긴 했지만 우리는 치매 걸린 인간에 대한 합의된 정의를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지 모른다. 말하자면 영화 <오!문희>는 모성이냐(어머니) 이성이냐(오문희)를 묻는 것처럼 보이다가 갑작스럽게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를 뒤섞으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정성스레 돌보던 사람들은 두원과 송원장(박지영)이었고, 치매 걸린 ‘오문희’를 이해하고 함께 해준 것은 보미(이진주)였지만 보미 뺑소니 사건의 결정적 해결사는 두원이 아니라 ‘보살님’이었다. 보살님은 오문희가 아닌 치매 걸린 노인이자 해결사로서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넘나드는 존재다. 마찬가지 의미로 오문희는 육 손가락을 가진 두원의 손가락을 직접 잘라버리는 결단을 단행함으로써 ‘병신’이 될 운명에서 건져낸 구원자이자 가해자이다. 이 문제들은 정상과 비정상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우리를 던져놓는다. ‘오문희’와 ‘어머니’의 사이에는 그렇게 정상과 비정상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런 이유로 이 영화는 우리에게 정상과 비정상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결론 내릴 수 있겠다. 정상과 비정상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정상을 위한 비정상’과 ‘정상에 의한 비정상’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이 영화<오! 문희>는 치매 를 ‘기묘한 귀여움’으로 재 무장시켜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재치 있게 넘나드는 '마법'으로 삼는다. "치링치링 치리링 시크릿 쥬쥬~ 변신완료!" '오문희'와 '어머니' 사이에 놓인 것은 바로 이 마법의 주문이었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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