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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책이 지녀야 할 물음들
[이병국의 문화톡톡] 책이 지녀야 할 물음들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0.10.1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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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잇템’은 전자사전이었다. 아이리버, 카시오, 샤프 등의 회사에서 나온 전자사전은 정말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두껍고 무거운 사전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쉽고 빠르게 단어를 검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나는 전자사전을 써본 적이 없다. 아무리 유용하고 값이 싸다 하더라도 이미 갖고 있는 사전을 폐기하고 전자사전을 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종이책을 넘겨 가며 하나하나 찾아 그 의미를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이야 스마트폰 사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전자사전은 유용한 굿즈일 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도구였다. 돌이켜 생각하면 종이책과 전자책의 차이를 전자사전의 양상으로 실생활에서 처음 경험한 것이었던 셈인데,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새로운 기기를 수용하는 데 늦는 편이라 전자사전과 그 이후 매체 및 플랫폼의 변화에 둔감했다.

그 시절부터 전자책은 종이책을 대신할 새로운 매체로 주목받았다. 전자책은 종이책과는 달리 전용 뷰어나 단말기를 통해 파일로 된 출판물을 읽는 형태를 취한다. 즉 전자책은 콘텐츠가 종이가 아닌 디지털 형태로 유통되는 새로운 형태의 매체인 것이다. 미국의 아마존닷컴이 2007년에 내놓은 단말기 ‘킨들(Kindle)’은 종이책과 유사한 크기로 200종이 넘는 책을 저장할 수 있으며 자사 사이트를 통해 새로운 책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의 주목을 이끌어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가 되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전용 단말기를 출시하여 전자책 시장을 키워나갔다.

전자책은 “비용절감, 휴대의 편의성, 비거리성, 영구성, 변형성, 자원절약 및 환경보존, 멀티미디어 출판, 기능성, 저렴한 가격, 신속한 업그레이드 등의 장점이 있는 반면, 소비자의 고정비용 증대, 기술성, 소프트웨어의 다양성, 보안성, 가독성의 문제 등의 단점도 지니고 있다.”(1) 하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단점은 보완되고 장점은 극대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전자책의 보급 확대로 종이책이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우세했던 때도 있었지만,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될 예측은 섣부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전자책이 독서소비의 가속화를 가져오는 한편으로 종이책의 수요를 하락시킨 것이 아니라는 측면도 있겠지만, 디지털화된 텍스트를 넘어서는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구글이 하버드대 도서관의 수백만 권의 책을 디지털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수행한 지도 십 년이 넘었다.(2) 책이 없는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야심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사업의 일환이자 여러 도서관의 개별 사업의 형태로 디지털 아카이빙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는 2017년 말과 2018년 초에 걸쳐 문예지 아카이빙 사업에 참여한 바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문예진흥원 시절부터 지원했던 문예지들의 표지와 목차를 아카이빙 하여 대중에 공개하는 일이었는데 이때, 느낀 것은 아직 우리나라의 디지털 도서관의 길이 멀고 먼 일이라는 것이었다. 표지와 목차의 디지털 아카이빙은 저작권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진행되었다. 구글이 수행한 사업에서도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책의 디지털 데이터화를 이루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3)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작금의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책을 데이터베이스화하여 전자책의 형태로 대중독자에게 전하는 서비스는 어느 순간 이루어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내용을 이루는 콘텐츠의 문제인 지도 모르겠다. (주)마크로밀엠브레인에서 2016년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구입한 전자책 장르가 소설(65.7%), 자기계발(34.0%), 인문(26.4%) 순으로 나왔으며, 구입한 종이책 장르 역시 소설(56.7%), 자기계발(46.1%), 인문(40.2) 순으로 나왔다.(4) 세부적인 분석이야 좀 더 살펴봐야겠지만 전자책을 이용하든, 종이책을 이용하든 선호하는 장르는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장르는 소설이었다. 이때의 소설이 전자책과 종이책에서 각기 다른 형태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저 독자에게 제공되는 방식이 인쇄 방식이냐, 디지털 방식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매체의 차이이자 플랫폼의 차이일 뿐이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와 플랫폼이 달라지면 그 내용과 형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맥루한과 키틀러가 이미 밝혔듯이, 매체의 변화는 메시지 즉 콘텐츠의 변화를 야기하고 이는 기존의 기록시스템을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단적인 예로 스마트폰이 가져온 콘텐츠 접근 양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매체의 변화가 문학의 생산과 유통, 소비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문학’을 유통하는 방식을 간단히 본다면, 단행본과 월간, 계간 등의 종이문예지와 온라인을 기반으로 삼는 수많은 사이트들과 웹진을 들 수 있다. 콘텐츠의 향유를 위해 온라인 공간으로 독자들이 이동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PC에서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접근 매체가 달라진 것을 간과하기 어렵다. 쉽고 간편한 접근은 그만큼 쉽고 간편한 콘텐츠를 향유하게 한다. 소설의 경우도 흔히 이야기하는 순수소설보다는 장르소설 특히 웹소설 위주로 소비되는 경향이 더 크다.(5) 이는 접근성의 문제라고 볼 수 있겠다. 웹에 기반한 순수문학의 접근성보다는 장르소설 특히 웹소설의 접근성이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전자책과 종이책의 소비 양상을 살피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차피 문학 향유층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이를 확장할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문학 콘텐츠에 접근이 용이한 플랫폼을 마련하는 데 오히려 더 집중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매체의 변화는 생산 방식보다는 유통과 소비 방식에 치우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단의 상황은 어떠할까. 문학을 창작하고 유통하는 주된 주체는 출판사일 수도 있지만 한국 문학장의 지형 상 문단 구성원이 수행하는 바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 정권에서의 블랙리스트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예지 지원 사업의 축소, 중단 등으로 인해 재정난을 이유로 휴간, 폐간되는 문예지들이 생기는 한편,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 이후, 주요 문예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달리 포장, 개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양상은 생산자 측면에서 문학의 양태가 달라지는 것일 뿐, 소비자 측면에서 사유한 결과로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한편에서는 웹 플랫폼과 크라우드 펀딩에 기반을 둔 문예지들이 기획, 발간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도들은 개방성을 높여 독자의 참여를 높이는 데 의의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기존의 문예지와 큰 차이를 나타내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그렇다면 전자책의 경우는 어떨까. 현재 한국문학의 전자책 보급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전자책 단말기의 보급에 따른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요즘 사정을 고려해본다면 단말기 자체의 보급은 선결되어야 할 조건은 아니다. 전자책이 “종이책보다 저렴하다고는 해도, 단행본 단위로 구매하고 다운로드해 이용해야 한다는 점도 권당 과금 뿐만 아니라 일정 금액만 지불하면 일정 기한 동안 플랫폼 내의 콘텐츠를 전부 이용할 수 있는 정액제나 편당 소액 과금 및 대여/구매 선택이 가능한 웹 플랫폼에 못 미친다”(6)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문학이 소비를 위해 독자에게 유통되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 콘텐츠의 소통 방식에도 있다.

종이책과 전자책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출판 시장에 국한되기만 한 것일까. 혹시 작가의 입장에서 먼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없을까.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는 가능한 것일까. 인터넷 사이트를 통한 웹 플랫폼에서 창작되는 다수의 문학 작품들은 텍스트로서 불완전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플랫폼 자체에 대한 접근성과 개방성은 작가로 하여금 자신의 글에 대한 피드백으로 말미암아 그 형태를 불확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게끔 하기 쉽다. 작가와 독자가 쌍방향적 의사소통과 인터랙티브 멀티미디어 환경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환경이 일방적인 정보로 강제되는 텍스트의 의미망을 보다 폭 넓게 확장시킬 수도 있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단지 문자의 전달 통로가 달라지는 것만으로 문학의 영역이 이동될 수 없는 것도 고려해야만 한다.

새로운 문학 양식인 하이퍼픽션은 어떤 면에서 대안이 될 수도 있겠다. 하이퍼픽션은 종이 위에 선형적으로 서술되는 문자 문학과는 달리 컴퓨터 스크린에 쓰이며, 독자가 분어법적(分語法的)인 하이퍼텍스트 링크를 통해 비선형적이고 다양한 스토리 전개를 즐길 수 있는 소설 양식이다. 독자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만들고 다양한 의미를 탐색하는 동시에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의식하며 서사를 완성해 나가는 구조이다.(7) 파편화된 서사 구조를 독자가 링크된 정보들을 통해 의미를 정립해 가는 형태인 셈이다.

이러한 형태의 텍스트를 구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구조를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해서 구축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이러한 텍스트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완결된 것으로 자신의 손에 쥘 수는 없다. 이는 웹의 특성에 맞게 고안된 형식에 한정되는 측면이 강하며 웹 플랫폼 안에서만 향유되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의 정의를 고전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하이퍼픽션은 서브 텍스트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언정 고유한 작품의 지위를 획득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다만 작품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이루어진다면, 이 역시 문학의 새로운 양상으로 자리매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소설과 시 등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플랫폼의 변화는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거멀못이 될 수도 있다. 이미 작가는 한글이나 워드 프로그램을 통해 작품을 창작하고 비평한다. 예전처럼 연필을 쥐고 원고지에 적는 방식으로 작품을 창작하지 않는다. 디지털 환경을 수용하여 내면화한 방식으로 자신을 기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물성의 세계에서 벗어나 사유하고 기록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체의 변화로 인해 어쩌면 작가도 자신이 마주할 문자 텍스트를 읽고 쓰는 방식의 변화를 예비하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컴퓨터 자판을 눌러 작품을 창작하고 비평하는 것은 종이책의 방식을 답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책의 미래와는 관계없이 수행되는 행위로 남는다. 작가는 종이책으로 구현되는 작품의 양상을 다른 방식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수행해 왔던 창작 방법부터 전복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예측할 능력이 없다. 내 상상은 여전히 하얀색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 앞에 머물러 있다. 일명 ‘백지의 공포’를 넘어서는 미래의 창작 양상은 그저 불안의 영역에 놓아두고 싶다. 어찌되었든 한국문학이, 그리고 그것을 창작하는 작가가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은 그것을 향유하는 매체의 변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따라가기에도 버거워 보이기 때문이다.

종이책의 몰락을 상상하게 하던 전자책은 그것의 상용화가 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종이책이 상상해 온 독서의 양태를 바꾸진 못하고 있다. 조금 과격하게 말하자면, 전자책은 아날로그에 대한 낭만화를 자극하는 상상적 동일시일 뿐, 매체 자체가 갖고 있는 미래적 효용성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웹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의 활용이란 측면에서 언젠가 전자책은 융성하겠지만, 그 기반은 여전히 올드 미디어에 종속된 사고에 제한될 것이다. 지금의 전자책은 종이책의 대안으로 보다 폭 넓은 독자를 포용하기 위한 도구에 불구하다. 여전히 인쇄된 종이책의 관습이 폐기되지 않는 한, 전자책은 종이책의 인쇄 방식이 채택해 온 가독성 위주의 접근을 따를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전자책은 스마트폰이 보여준 새로운 감각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이라는 상품을 최대한 많이 판매될 수 있도록 돕는 소비재의 역할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 행위를 소비와 산업의 차원으로 한층 끌어올리는 것이 오히려 전자책의 주요한 책무처럼 되었다. “전자책은 정보화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책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나 하이퍼텍스트 등 첨단 기능을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읽기가 가능해지고,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은 디지털혁명이 가져온 긍정적 측면”8)이지만 그 안에서 전자책의 역할은 종이책의 대체제로서의 역할밖에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종이책이 그것의 물성으로 말미암아 디지털화된 소비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을 매체의 변화를 통해 유예시키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즉 전자책은 비물질적 텍스트인 독서를 소비재로 확장하며 지속가능한 상품으로 만드는 역할에 제한되어 있는 셈이다. 여러 가지 시도들이 앞으로 기획될 수 있겠지만, “전자책 시장에서 승부의 관건은 매력적인 플랫폼이기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토대, 쾌적한 독서환경 마련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며, 결국 “디바이스로 내려 받아서 볼 콘텐츠 확보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9)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웹진이 제공하는 콘텐츠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문학웹진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장웹진』에는 매달 단편소설과 시, 비평 및 기획 몇 편이 실린다. 이 글의 특색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 접속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진다는 것뿐이라서 스마트폰 환경에서 접근이 용이하다는 측면을 제외하고는 기존 문예지의 형태를 답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웹진이라고 할 때, 웹의 접근 용이성을 빼면, 다른 잡지와 변별점을 찾기 어렵다. 웹 플랫폼의 새로운 시도는 찾아볼 수 없으며, 독자와의 소통 면에서도 무언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도 없다. 이를 디지털 시대의 문학 유통방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창비 출판사의 『문학3』의 시도는 『문장웹진』의 아쉬움을 달래줄 만하다. “그냥 올려본다”나 “중계방송” 등 독자의 참여를 용이하게 하는 꼭지를 신설하는 한편, 종이 잡지와 웹진을 적절히 혼용하여 문학 플랫폼의 역할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문학몹을 통해 당대의 이슈를 나누는 현장을 꾸려 특정한 주제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하며 공모를 통해 비등단 작가/독자의 글을 종이잡지에 싣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학 작품을 발표하고 게재하는 방식은 종이책의 그것과 별반 차이를 느끼기가 어렵고 독자의 참여 역시 올드 미디어인 신문 투고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독자 편집회의” 꼭지를 통해 잡지의 방향성을 독자와 나누기도 하지만 독자의 적극적 참여가 전제되어 있는 만큼 그것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체계는 마련되어 있지 않다. 웹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등단 여부를 가리지 않고 공모를 실시하여 독자의 목소리를 직접 담는 여타의 웹진들도 그 시도와 노력에 비해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가 힘들다.

구텐베르크 이후 수백 년간 구축된 종이책의 형식을 바꾸기에는 아직 무리가 따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하이퍼픽션이 대중화되기 어려운 것도 종이책이 지니고 있는 권위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독자는 생산자에게 문학 향유자로 인식되며 문학 유통자에게는 소비자로 인식될 뿐, 그들이 창작된 문학 작품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의 문학 유통과 소통 방식은 생산자-소비자의 관계가 재정립되지 않는 한 기존의 것을 무너뜨리는 기제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종이책이 전자책으로 대체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그것으로 문학의 소통 방식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종이책을 문학이 독자에게 닿는 장소라 볼 때, 그 장소가 디지털화된 공간으로 이동한다고 해서 장소가 갖는 의미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종이라는 매체 공간 속에서 문학이 획득한 장소성은 고착화된 방식으로 작가와 독자에게 고정되어 있다. 그 고착화된 장소성이 공간의 변화로 인하여 다르게 수용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렇기 때문에 폐쇄되어 있는 장소를 뚫고 문을 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 문학이 자리한 장소로부터 도래할 어떤 지평을 확보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전자책은 종이책의 동시대적인 기술적 연속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종이책의 장단점과 전자책의 장단점을 상쇄하려는 모든 논쟁은 전자책이 기본적으로는 물체가 아니라 출력장치로 읽어야만 하는 전자 텍스트라는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10)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체하는 매체로서만 인식될 때, 문학과 독자와의 소통은 접근성의 용이함 이외에는 어떠한 의미 맥락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단지 텍스트를 디지털화하고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시키는 것만으로는 문학을 유통하는 데 도움을 줄지언정 그것과 소통하고 의미를 정립하여 문학을 향유하는 이들의 존재를 풍요롭게 하지 못할 것이다.

올드 미디어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낭만화 된 방식으로 우리의 사유를 의미화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레트로 감성이라 일컬어지는 일이 그것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삶의 환경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은 문학 작품과 문자 텍스트에 쉽게 접근하도록 함으로써 독서 인구를 늘리고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할 것이다. 이는 문학에 대한 유연한 사고를 불러올 것임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종이책에 의해 고착화된 장소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는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웹진이라는 플랫폼도 매체의 차이만 있을 뿐 종이책의 형식을 벗겨내지 못했다. 무엇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포털 사이트의 ‘브런치’와 같이 독자 스스로 텍스트를 생성해 내는 것이 답이 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작품을 생산하는 데 하나의 수단일 뿐, 그 너머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종이책은 여전한 형태로 꽤 오래 지속될 것이다. 적어도 종이책이 지닌 책의 담론은 끝까지 살아남아 있을 것이다. 종이책을 ‘대신’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제안되고 실천될수록 어쩌면 종이책은 이에 적응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쇄신하며 자신의 영속을 누릴지도 모르겠다. 섣불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종이책과 디지털 환경에서의 웹 플랫폼은 서로를 보완하는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며 독자는 자신에게 용이한 방식으로 그것을 향유할 것이다. 앞에서 언급하지는 못했지만 구글이 세상의 모든 책을 디지털화하려는 것은 단지 책 없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세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조직해 누구나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구글의 강령11)은 오픈 액세스로서 정보를 공유하는 데 있는 한편으로 정보를 검색하는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 이용하려는 의도를 포함하고 있다. 좋게 이야기하자면, 개인의 검색 정보를 활용하여 취향과 성향에 맞춤한 책을 추천하여 독서 시장 진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개인의 정보와 빅데이터를 이용하여 취향을 조작할 수도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음모론적인 이야기는 여기에 어울리진 않겠다.

중요한 것은 매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콘텐츠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 것이냐에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어쩌면 ‘책’을 사유하는 방식부터 변화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그릇이 나온다면 그에 합당한 내용물을 채워 유통하고 소통해야만 할 것이다. 그것이 작가와 독자를 비롯한 제3의 관계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거친 하이퍼텍스트의 형태가 될지 아니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형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콘텐츠의 질적 변화가 없다면 유통 방식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소통은 어려울 것이다. 가능하고도 불가능한 상상력이 중층적으로 쌓여 터져 나올 날을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계간 『파란』(2019, 가을호)에 게재된 졸고, 「책이 지녀야 할 물음들 - 문학의 유통에서 문학의 소통으로」를 다듬은 것이다.

 

1) 성대훈, 『디지털 혁명, 전자책』, 이채, 2004, 48~52쪽 참조.

2) 이와 관련된 사항은 로버트 단턴, 『책의 미래』, 교보문고, 2011.를 참조할 수 있다.

3) 이미 RISS를 비롯한 학술연구 관련 자료 서비스 사이트나 출판사, 포털 사이트 등에서는 자체적으로 디지털화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4) (주)마크로밀엠브레인, 『리서치보고서 Vol.2016 No.4, 마크로밀엠브레인, 2016. 참조.

5) 이와 관련하여 이승환, 「웹출판의 발전과 과제」, 『한국출판학연구78, 한국출판학회, 2017 참조.

6) 김녕, 「빛바랜 불편신고엽서와 전자민원창구, 그리고 문학-문학의 매체에 대한 단상」, 『내일을여는작가72, 한국작가회의, 2018, 51쪽.

7) 김민영, 「디지털 시대의 문학,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세계의문학, 2011년 봄호, 415쪽.

8) 전명순, 「디지털 시대에 전자책과 종이책의 상호 보완 역할」, 『독일언어문학63, 2014, 291쪽.

9) 같은 책, 같은 곳.

10) 우베 요쿰, 『모든 책의 역사, 마인드큐브, 2017, 205쪽.

11) 로버트 단턴, 앞의 책, 104쪽.

 

글·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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