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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저 그런 가족도 가족이다 – 영화 <작은 빛>의 담백한 한 방
[송아름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저 그런 가족도 가족이다 – 영화 <작은 빛>의 담백한 한 방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0.11.16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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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곽진무)의 등장은 놀랍거나 웬일인 일이다. 엄마에게도, 누나에게도, 형에게도, 그리고 사촌 형에게도 그가 찾아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어서 혹여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눈치를 살피게 한다. 그렇다고 그의 등장이 껄끄럽다는 것은 아니다. 별일 없다는 진무의 말에 그들이 더 이상 걱정을 붙들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만남이 잦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킬 뿐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바로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을 띄엄띄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반찬이 맛있다, 밥 좀 천천히 먹어라, 그때 기억나냐, 누가 그랬냐, 그땐 왜 그랬던거냐, 니가 늙었네 네가 늙었네, 미친놈 등등. 진무가 그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는 표지들이 산재하지만 또 어색할 수도 있다는 전사들이 넘쳐 나지만, 쉽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영화 <작은 빛>은 그저 그런 가족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담담하게 이어나간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 ‘그저 그런 가족’이라는 점인데 이것이 바로 기존 ‘가족’에 덧씌워 놓은 무수한 강박들을 차분하지만 시원하게 걷어내고 있어 흥미롭다. 극이라는 이름으로 아니 너무도 다양한 곳에서 너무도 넘치는 매체를 통해 가족의 모습은 오랫동안 왜곡되었다. 대체로 합의된 적절한 가족의 숫자, 세대의 구성, 부모와 자식의 역할과 관계, 경제적 상황 등은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를 만들어 놓았고, 여기에서 벗어난 훨씬 더 많은 가족들은 불행하거나 불쌍하거나,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가족으로 형상화됐다. 이와중에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서든 화해를 해야 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부모는 가족의 구성원 중 누구도 모르는(특히 자식이 부모의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비밀 하나쯤을 간직한 채 학대에 가까운 일상을 만들다 이를 이해하게 된 자식을 통해 ‘진정한’ 가족이 탄생한다. 지극히 폭력적인 이 화해의 과정은 결국 가족은 어떻게 해서든 함께해야 하고, 친밀해야 하며, 심지어는 서로를 너무도 아끼고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까지를 전제한다. <작은 빛>은 과연 이것만이 가족인가? 라는 것을 되물으며 그저 그곳에 있는, 그것만으로 가족이 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앞서 말한 고정된 가족의 기준으로 본다면 진무네 가족들은 상처를 끌어안고 불행해야 하는 이들일지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은 사랑이 아닌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다. 딸인 현(김현)을 학교 갈 나이까지 호적에 올리지 못했던 엄마 소녀(변중희)는 정무(신문성)를 데리고 있던 아버지와 결혼했다. 엄마는 딸을 호적에 올리기 위해, 아버지는 아들을 키울 누군가와 함께 하기 위해 그렇게 가족을 만들었다. 그래서 진무와 진무의 누나 현(김현)는 아버지가 다르고, 진무와 그의 형 정도(신문성)은 어머니가 다른 가족이 생겨났다. 현은 아들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면서 엄마와 허물없이 지내지만, 정도는 엄마가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작은 빛>은 이렇게 갑작스레 만들어진 가족들 사이에서 발생할 껄끄러움을 굳이 봉합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나열하면서, 그럼에도 그들이 가족일 수 있는 이유를 하나 제시한다.

집에 자주 내려오지 않던 진무가 가족들을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던 건 기억 때문이었다. 진무는 뇌수술을 앞두고 수술의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진무의 선택은 작은 카메라를 들고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진무가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신과 함께 살아온 가족이었다. 진무는 엄마의 잠든 뒷모습을 찍고, 조카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찍게도 하며, 천천히 자신의 기억에 담듯 가족들을 담는다. 진무는 카메라를 들고 누나 현의 집으로, 그리고 형 정도의 집으로 오가며 자신이 찍었던 영상을 또 그들에게 보여준다. 서로를 기억하고 있던 이들에게 서로의 모습은 시간으로 인한 낯섦만 있을 뿐, 과거 기억 속의 그 모습으로 다시금 익숙해진다.

 

진무가 엄마와 누나, 형을 통해 떠올렸던 기억과 과거는 특별하지 않게 그들이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누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나를 앞에 두고 책을 읽어주기도 했으며, 형은 (남들은 다 몰랐어도) 내 앞에서 춤을 춰주고 심지어 잘 추기도 했다. 엄마는 남자 아이들을 새벽부터 목욕탕에 데리고 가 때를 벅벅 밀어 주었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 기억들은 굳이 서로 함께 살지 않더라도, 서로 친밀해 보이지 않더라도 그저 그렇게 가족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진무가 카메라를 들고 왔다가 자신을 집을 떠났을 때, 멍하니 생각에 잠기던 엄마와 누나, 형은 아마도 과거의 어느 때를 다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복작대며 함께 살 때와 이렇게 따로 떨어져 있을 때, 변한 것은 특별히 없다. 그들은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가족이며, 굳이 더 많은 것을 하지 않아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작은 빛>은 진무가 찍은 카메라의 내용을 굳이 다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그것에 찍힐 내용보다 기억하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그래서 <작은 빛>은 굳이 가족의 형태가, 또 서로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억지스러운 화해와 완벽한 거리를 두는 것으로도 잘 드러난다. 영화에서 이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아버지의 묘를 옮기기 위해서였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으나 폭력적이었던, 그리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았던 이로 언급된다. 진무는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찾으면서 자신이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족 누구도 몰랐지만 아버지가 가족들의 사진을 찍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대로 가족에 대한 기억을 남기려 했을지 몰라도 가족들에게는 그는 크던 작던 분명한 아픔을 남겼다. <작은 빛>은 아버지가 남긴 이 흔적들로 가족들이 쉽게 아버지를 용서하거나 갑작스레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가족들은 아버지의 관에 나무뿌리가 자라고 있다는 말에 묘를 옮기기로 했지만, 묘를 파헤친 후 예상치 못한 모습에 인부들은 일을 마무리 짓지 않고 산을 내려가 버린다. 이렇게 아버지는 ‘끝까지 그런’, 즉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을 애먹이고 힘들게 하고야 마는 이가 되어 버린다. 짜증도 화도 나지만 그들에게 그가 아버지라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고, 그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들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긋지긋하게 미웠으면서도 엄마에게 아들을 남겨 놓았던 아버지는 이렇게 애증 속에서 가족의 한 켠을 차지한다. 가족들은 파헤쳐진 묘 주변을 서성거리며 방법을 마련하고 어찌저찌 마무리 하고 함께 산을 내려오는 것은 분명 가족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아마도 이날의 기억은 진무 가족에게 오랫동안 회자될 것이다. 아버지가 그래도 이런 면이 있었지 라고 할 때에는 그가 남겨 두었던 사진이, 참 그 사람이 우리를 힘들게 했지 라고 할 때에는 묘를 옮길 때의 상황들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까.

담담한 <작은 빛>은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족을 대해야 할 태도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그저 어릴 때부터의 서로를 잘 알고 있고, 그래서 오랫동안 못 본다 해도 띄엄띄엄 할 말은 있고,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모두 함께 모여 얼굴을 맞대야 하는 이들. 이 데면데면함이 굳이 가족 사이에서 유하게 풀어내야 할 것도 아니며 그 자체로 그대로 가족일 수 있다는 것을 매우 솔직한 화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가족만큼 오래 붙어있을 수 있는 관계는 없다. 그 절대적인 시간의 양만큼 서로에게 상처 줄 기회 역시 어떠한 관계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사이의 이별과 분노와 눈물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임에도 가족은 하하호호 속의 단란한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정된다. 그것이 아니면 어떠한가. 우린 모두 누구도 모르는 우리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작은 빛>(2020)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Drama)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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