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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많은 이야기가 가능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송영애의 시네마 크리티크] 많은 이야기가 가능한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 송영애(영화평론가)
  • 승인 2020.11.16 0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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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다양한 시선에서 즐기고, 분석되고,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극적인 평가가 가능한 영화들도 있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평가받는 영화지만, 인종차별적인 사고를 담은 영화거나 하는 식이다. 최근에 논란이 됐던 1939년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빅터 플레밍), ‘미국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D. W. 그리피스의 1915년 영화 <국가의 탄생> 등이 이에 해당한다. 두 영화 모두 미국 남북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남부의 시선에서 만들어진 대작 영화로서 엇갈리는 평가를 동시에 받아왔다.

1952년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진 켈리, 스탠리 도넌)도 비슷하다. 최적의 영화 역사 강의 교재라 해도 될 만큼 다양한 공부도 가능한데, 뮤지컬 장르와 컬러 영화에 관한 공부가 가능하고, 유성영화 도입 시기 할리우드의 상황도 참고할 수 있다. 또한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를 통해 젠더 이슈도 살펴볼 수 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무성영화 시기 할리우드

<사랑은 비를 타고>는 1927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들이 스타 영화배우이다 보니, 당시 영화 촬영 현장을 엿볼 수 있다. 촬영감독은 수동이던 영화 카메라의 셔터를 재봉틀 돌리듯 돌리고 있고, 감독은 옆에 앉아 메가폰을 들고 “자, 들어와. 이제 앉아. 마주 봐.” 식으로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지시한다. 또 피아노 연주자는 배우들을 위해 분위기 음악을 연주하고, 배우들은 (자연스럽지 않은) 무성영화 연기를 펼친다.

영화관 풍경도 요즘과는 아주 다르다. 주인공이 출연한 무성영화의 VIP 시사회가 진행 중인 상영관 앞쪽에는 오케스트라가 자리하고 있다. 지휘자도 보인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이들은 근사하게 배경음악을 연주한다.

1920년대는 미국에서 할리우드가 막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영화배우와 감독 등 인력들은 영화사와 전속 계약을 했고, 대형 영화사들은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 거대한 세트장에서 영화를 제작했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는 1920년대 무성영화를 제작하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목격할 수 있다.

 

유성영화 등장 직후 혼돈의 할리우드

<사랑은 비를 타고>에는 실존 영화 제목이 등장한다. 영화 초반 “워너브라더스에서 <재즈 싱어>라는 유성영화가 제작 중이래.”라는 대사가 스치는데, 1927년 영화 <재즈 싱어>(앨런 크로슬랜드)는 실제로 세계 최초의 장편 상업 유성영화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인공들은 <재즈 싱어>의 흥행으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된다. 촬영 중이던 무성영화가 갑자기 유성영화로 바뀌면서, 난데없이 유성영화 연기를 하게 된 것이다. <재즈 싱어>를 비롯해 초기 유성영화들의 경우 동시녹음이 진행됐다. 영화 촬영과 녹음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영상과 사운드가 잘 맞을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무성영화 제작 시스템에 익숙해진 배우와 스태프가 (요즘에도 만만치 않은) 동시녹음까지 해내려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1930년대 초반까지 유성영화가 대세가 되는 과정에서 많은 영화인이 적응에 실패하고 영화계를 떠났다고 한다.

기술적 문제도 컸다. 영상과 사운드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촬영과 녹음은 모두 일정한 속도로 시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카메라에는 모터가 달렸는데, 성능이 좋지 못한 동시 녹음용 마이크가 배우들 가까이에 설치되면서 마이크에는 카메라 모터 소음까지 담기게 됐다. 잠시 카메라는 배우들로부터 멀어졌고, 카메라 움직임이나 편집 등도 덜 활용되었다. 이후 카메라 외부에 방음 기능이 추가되고, 붐 마이크, 후시 녹음 기술 등이 나올 때까지 여러 시행착오와 극복의 시간이 이어졌다.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도 배우들은 발성과 발음 훈련을 받느라 바쁘고, 촬영장에서는 마이크를 신경 쓰느라 감정대로 고개조차 마음껏 돌리지 못한다. 감독은 멀리 떨어진 카메라와 배우들 사이를 오가느라 바쁘다. 이들은 재촬영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장되기는 했지만, 당시 소위 멘붕에 빠진 영화인들의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1920년대 기준 영화감독의 위상도 확인할 수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 속 영화감독은 영화사 사장을 ‘보스’라고 부르는 부하직원의 모습이다. 영화사 사장, 스타 배우가 중심이 되는 영화 제작시스템 즉 스튜디오 시스템과 스타 시스템의 일면이라 하겠다.

 

여자의 적은 여자!

<사랑은 비를 타고>에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발견할 수 있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도 등장한다. 여자 주인공 리나는 금발의 스타 배우로 얼굴만 잘생겼을 뿐, 목소리도 나쁘고, 머리도 나쁘고, 성격까지 나쁜 캐릭터다. 영화 속 대사대로 말, 연기, 노래, 춤 모두 못한다. 다들 유성영화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리나는 그 상황 자체를 이해조차 못 하는 민폐다.

반면에 남자 주인공 돈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스타배우로, 얼굴도 잘생기고, 노래와 춤도 잘하는데, 성실까지 하다. 유성영화로 재촬영에 들어간 영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연기를 되돌아보고,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제작자에게 제시한다.

또 다른 여자 주인공 캐시는 무명 배우지만 연기와 노래, 춤이 모두 가능한 능력자다. 돈과 사랑에 빠지지만, 돈을 자신의 연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리나의 질투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심지어 이번 영화를 살리기 위해 리나의 목소리 연기(더빙)를 자청했는데, 리나는 그 사실을 알고는 이후에도 자신의 목소리 연기만을 전담하라고 강요한다.

사실 리나 입장에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다. 무성영화에 적합한 외모와 연기에 적응한 스타로서 유성영화 제작 시스템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그렇게 무능한 일일까? 게다가 자신과는 상의 한마디 없이, 몰래 자신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이 더빙했다는 사실을 시사회 얼마 전에야 알게 됐다.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영화사 사장에게 계약서를 근거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리나는 마냥 탐욕스럽고 나쁜 사람으로 그려진다. 비이성적인 전형적인 여성 악역의 모습이라 하겠다.

이 영화의 두 여자 주인공 리나와 캐시는 유성영화 기술보다는 본인의 무식함이나 또 다른 여자 주인공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 것이다. 다른 인물들을 유성영화 등장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두 인물은 ‘여 vs 여’ 관계 설정으로 위기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캐시의 위기는 연인인 돈, 돈의 친구 코스모, 영화사 사장 심슨이 해결한다. 이들은 머리 나쁜 리나를 이용해, 시사회장을 박차고 도망치던 착한 캐시를 구해낸다.

 

기타 등등

그밖에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는 장르적으로도 분석할 게 많다. 돈이 우산을 손에 든 채로 비를 맞으며 "아임 싱잉 인더 레인"이라 신나게 부르는 노래를 비롯해 유명한 노래들도 여럿 등장하고, 뮤직 넘버 장면을 아방가르드적인 영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테크니컬러 기술을 사용한 컬러 영화로서 색감도 화려하고, 장면 전환 기법들도 여럿 활용되어, 다양한 분석과 평가도 가능하다.

 

앞서 언급했듯, 모든 영화는 다양한 시선에서 즐기고, 분석되고, 평가될 수 있다. <사랑은 비를 타고>도 예외는 아니다. 유쾌하고 즐거운 (영화 역사 공부도 가능한) 권선징악 스토리를 화려한 뮤지컬 영화로 담아낸 영화지만, 여성과 남성에 대한 편견을 담아낸 영화기도 하다. 그래서 보고 또 봐도 할 이야기가 많은 또 한 편의 영화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영애

영화평론가.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한국영화 역사와 문화 관련 연구를 지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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