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쏘나타로 사유하는 세계
쏘나타로 사유하는 세계
  • 안영춘
  • 승인 2011.07.11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년 넘게 선두를 질주하던 한 국산 중형차 모델이 요즘 판매 부진에 시달린다는 보도를 봤다. 기름값이 너무 올라 작은 차 쪽으로 일부 수요가 옮겨가기도 했지만, 기름이 더 많이 드는 한 단계 고급 모델에 빼앗기는 고객 수가 오히려 더 많았다. 사회 양극화의 자동차 버전이다. 잘나가던 그 모델은 잘나가던 한국 중산층의 아비튀스였으나, 이제는 한발 앞서 몰락한 중산층을 뒤따르는 신세다. (사회 양극화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거대한 부를 축적해온 자동차 재벌도 이번에 뜻하지 않게 양극화의 부메랑을 맞았다.

신자유주의 논리로 중무장한 세계 자본은 아무나 좇을 수 없는 복잡한 수식으로 앞날을 예측하고, 나아가 제게 유리하도록 기획하지만, 만사가 뜻대로만 되지 않는 건 자본에도 마찬가지다. 수식이 복잡할수록 결정적으로 놓치기 쉬운 게 있다. 밀어붙이는 힘이 강하면 반작용의 에너지도 그만큼 상승한다는 단순한 물리 방정식 말이다. 억압의 힘 안에는 이미 반란의 힘이 내포돼 있다. 다만 그 힘이 어떻게 구성될지, 폭발의 임계점이 어디일지 간파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저항은 어떤가?

지난해 가을 프랑스에서는 퇴직연금 축소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거대한 거리시위가 있었고, 아랍 민중은 새해  첫머리부터 봉기해 독재를 타도한 뒤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리비아에서는 여전히 무장투쟁이 전개되고 있다(18~21면). 이번에는 또다시 유럽이다(2, 8~12면). 납세자를 희생시켜 국제 금융자본의 배를 불리려는 국가에 맞서 스페인 시민들은 광장을 점거했다. 비판적 경제학자들은 국가 채무불이행(디폴트)의 국제법적 논거를 제시하며 금융자본의 주술을 타파하려 하고 있다.

이들 사태는 개별적이지도 않고, 시계추처럼 진자운동을 되풀이하는 것도 아니다. 순차적이면서 통합적인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관한 인류학자 드니 뒤클로의 통찰은 탁월하다(1, 3면). 뒤클로는 2008년 시작된 금융대란과 올해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아랍의 민중봉기가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닌 똑같은 문제 안에서 조우한다”고 갈파한다. 자본과 에너지, 통치기구는 전 지구적 지배력을 행사하기 위해 유기적으로 형성된 3대 축인데, 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위기를 맞은 것은 정작 자신의 내적 한계를 노출한 것이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심증은 더욱 확고해진다. 작가 손아람은 한진중공업 ‘희망의 버스’와 반값 등록금·무상급식 요구가 소셜 네트워크라는 매개를 통해 확산·전파되는 구성력에 ‘피플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지배체제의 의제 ‘처리’ 속도가 의제 ‘확산’을 따라잡을 수 없고, 이에 따라 여론이 조작·선동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다소 성급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정동을 날카롭게 포착한 것임은 틀림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은 개별적으로 보이는 이들 사건의 관계와 작용을 깊이 있게 재구성했다(28~31면).

세계 자본주의 지배체제의 운명을 점치는 것은 성급하다. 하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저항이 표출되고, 지배체제 스스로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그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르 디플로> 7월호는 그 간극을 잇는 가교이고자 한다.

글·안영춘 편집장  editor@ilemonde.com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안영춘
안영춘 info@ilemond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