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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 춤과 섹슈얼리티의 자유 그리고 경계 허물기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 ― 춤과 섹슈얼리티의 자유 그리고 경계 허물기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0.12.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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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춤

영화에서 춤은 강렬한 시각적 환상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에밀 아돌리노 감독의 <더티 댄싱>(Dirty Dancing, 1987)은 1963년 피서지 젊은이들의 더티 댄싱을 보고 열광하게 된 베이비(제니퍼 그레이)가 핸섬한 댄스 교사 자니(패트릭 스웨이지)에게 춤을 배우면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이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Billy Elliot, 2000)는 영국 북부 탄광촌의 11살 소년 빌리(제이미 벨)가 복싱을 배우러 간 체육관에서 발레를 보고 동작을 따라하다가 그의 재능을 발견한 발레 선생님(줄리 월터스)의 특별 수업을 받게 되어 무용수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빌리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아버지(게리 루이스)의 반대, 어려운 가정 형편 등을 극복하고, 오디션에서 발레가 아니라 자신만의 춤을 췄지만 합격해 무용수로 성장한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블랙 스완>(Black Swan, 2010)은 발레리나 니나(나탈리 포트만)가 순수하고 가녀린 백조와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흑조를 모두 완벽하게 연기하고 싶은 욕망 속에서 극한의 스트레스와 긴장으로 자신의 숨겨진 자아를 드러내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흑조를 탐한 백조의 핏빛 도발을 보여주며, 깨진 거울, 페르소나, 분열의 이미지를 깊이 있게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위의 세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자신에 대한 정체성 고민과 춤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 면에서 공통점을 보여준다. 레바 아킨 감독의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And Then We Danced, 2019)도 마찬가지로 주인공이 춤과 사랑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을 다룬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조지아 국립무용단에서 섬세하고 우아한 춤을 추는 메라비(레빈 겔바키아니)와 카리스마와 에너지를 가진 이라클리(바치 발리시빌리)는 무용단 오디션에서의 경쟁자이다. 이 영화는 이라클리에 대한 경쟁심과 욕망으로 갈등하는 메라비가 춤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유의 몸짓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가족: 재능/열정의 경계에서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은 춤에 대한 압박감, 동성애에 대한 두려움, 가족에 대한 부담으로 갈등한다. 메라비는 조지아 국립무용단 선생 알디코의 질책, 대역 이라클리에 대한 경쟁심, 오디션에 대한 압박감에 부담을 느끼고, 조지아 무용단의 미래가 없다는 아버지와 형의 말에 힘들어한다. 그리고 그는 조지아 국립무용단 정규단원인 자자가 동성애로 인해서 동료들의 폭행과 무용단의 퇴출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성애에 대해 경직된 사회 분위기에 직면한다. 또한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 가족의 생계를 떠안아야 하는 부담감 속에서 춤을 추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에서 메라비는 재능과 열정 사이에서 괴로워하며, 그의 사적 갈등과 공적 갈등은 긴밀하게 얽혀 있다. 우선, 메라비의 사적 갈등은 3대째 무용수 집안인 가족과 조지아 국립무용단의 관계로 인해 공적 갈등과 연결된다. 메라비의 가족은 3대째 조지아 국립무용단의 무용수 집안이다. 메라비는 라스깔라나에서 공연한 할머니와 생활고 때문에 무용을 포기한 부모를 보며 자라났다. 형 데이빗은 재능은 있어 부모의 기대를 받지만, 미래가 없다며 무용을 포기하고 탈선의 길을 걷는다. 반면에, 메라비는 무용 선생으로부터 남성적인 힘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만, 태어날 때부터 췄던 무용을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열정적으로 정진한다. 다음으로, 메라비의 공적 갈등은 조지아 국립무용단에서의 경쟁자인 이라클리에 대해서 메라비가 경쟁심, 질투, 욕망을 동시에 느끼면서 사적 갈등과 연결된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메라비에 대한 바스트숏과 클로즈업을 통해서 메라비에게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하면서, 그의 사적 갈등과 공적 갈등에 공감하게 만든다.

 

섹슈얼리티: 이성애/동성애의 경계에서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중반부에서 주인공은 섹슈얼리티에서의 이성애와 동성애의 경계를 보여준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춤을 추는 메라비는 마리암과의 남녀 듀엣에서 남성적인 힘이 없다는 이유로 대역 이라클리에게 역할을 빼앗기지만, 이라클리와의 동성 듀엣을 맡게 되면서, 메라비가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해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메라비는 자신의 대역인 이라클리에 대한 사랑과 섹스로 동성애적 욕망을 표출함으로써 무용단의 경직된 사회와의 불협화음과 오랜 파트너인 마리엄과의 갈등에 직면한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에서 숏의 대비와 시선의 어긋남은 인물의 사랑과 실연을 보여준다. 우선, 카메라움직임은 동성애와 이성애를 대비시킨다. 메라비와 마리엄의 이성 듀엣 연습 장면은 정적인 카메라와 긴장된 표정으로 표현되는 반면에, 메라비와 이라클리의 동성 듀엣 연습 장면은 동적인 카메라와 활기찬 표정으로 표현된다. 다음으로, 시선은 사랑과 실연을 대비시킨다. 이라클리를 훔쳐보거나 뒤쫓는 메라비의 시선과 그런 메라비를 쳐다보는 마리엄의 시선은 인물의 사랑과 실연에서의 어긋남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숏 크기의 차이는 인물 감정의 차이를 강조한다. 메라비와 이라클리의 키스 장면과 섹스 장면에서 메라비의 클로즈업과 이라클리의 바스트숏을 통해서 메라비의 넘치는 감정선을 보여주면서 실연을 암시한다.

 

춤: 보수성/혁신성, 남성성/여성성의 경계에서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보수성/혁신성/, 남성성/여성성의 경계에 서게 된다. 이라클리가 고향으로 돌아가 여자친구와 결혼하겠다고 밝히자, 메라비는 실연의 아픔에 힘들어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편들어주는 형과 자신을 달래주는 마리엄으로 인해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메라비는 마지막 오디션 장면에서 알라코 선생이 강요하는 남성적인 춤을 거부하고, 부드럽고 섬세한 자신만의 춤을 선보임으로써 보수적이고 경직된 무용사회에 저항한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핸드헬드와 슬로우 모션, 다양한 카메라 움직임과 숏 크기로 인물의 감정과 갈등을 강조한다. 이라클리의 연락 두절로 불안해진 메라비가 여장 남자, 게이 등과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장면은 핸드헬드와 슬로우 모션을 통해서 자유와 탈선의 느낌을 보여준다. 마지막 오디션 장면은 부드럽고 섬세한 춤을 추는 메라비, 이를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선생과 단장, 위에서 따뜻하게 응원하는 마리엄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준다. 이때 감정을 잡아내는 클로즈업부터 상황을 보여주는 롱숏까지 다채로운 숏 크기로 메라비의 자유로운 춤을 강조한다.
 

전통 무용과 새로운 세대 간의 대립

조지아의 국가 정체성은 세 가지, 즉 교회, 전통 노래, 전통적인 국가 무용이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에서 메라비의 동성애와 여성적인 춤사위는 조지아의 전통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교회와 전통적인 국가 무용에 대한 저항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자유로운 춤을 통해서 보수/혁신, 남성성/여성성의 갈등과 전통적인 국가 무용단과의 대립을 보여주며, 이성애/동성애의 갈등을 통해 보수적인 교회와 경직된 사회에 대한 저항을 보여주며,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족의 우애와 사랑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춤은 공적 갈등, 사적 갈등, 내적 갈등을 가로지르며 정체성의 변화와 자아의 성장을 그려낸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는 조지아 국립무용단의 무용수인 주인공의 성장담, 독무, 섹슈얼리티, 첫사랑을 그려내면서, 주인공의 사랑과 용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조지아의 춤은 옛 것을 상징하며, 두 남성 무용수 사이의 동성애 사랑은 새로운 문화를 상징한다. 이 영화는 극우 세력과 교회의 개봉 반대, 동성애 반대에 직면하여 보수적이고 경직된 사회에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레반 아킨 감독은 섬세한 연출과 사회의 계급이나 젠더 이슈를 주로 다룬다. 그는 조지아의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기념 퍼레이드에서 극우 세력의 폭력적인 공격을 목격한 사건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게 된다. 이 영화는 조지아의 성소수자들이 처한 현실, 전통 문화와 새로운 세대 간의 대립 속에서 기존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 서곡숙
영화평론가. 비채 문화산업연구소 대표로 있으면서, 세종대학교 겸임교수, 서울시 영상진흥위원회 위원장,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사무총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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