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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애의 문화톡톡] 장애와 비장애의 문턱을 넘어,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양근애의 문화톡톡] 장애와 비장애의 문턱을 넘어,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 양근애(문화평론가)
  • 승인 2020.12.2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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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홍대입구역 근처에 위치한 한 극장에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 극장에는 객석 제일 뒤편에 휠체어 좌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때 ‘배리어 프리(barrier-free)’라는 말을 처음 인식하게 되었다. 그날 세 개의 휠체어 좌석은 모두 비어 있었지만, 아무도 없는 그 자리를 계속 의식하면서 연극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2019년, 남산예술센터에 올라간 <7번국도>는 이동지원과 수어 통역, 자막이 제공되는 배리어 프리 공연이었다. 남산예술센터를 올라가는 언덕길부터 객석에 들어가기 위해 디디게 되는 단 높은 계단,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의 크기와 자막을 향한 시선까지 다 공연에 포함된 것처럼 느껴졌다. 보고 있었지만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벽을 없애는 일은 바로 그 장벽을 의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올해 10월과 12월에 올라간 ‘0set프로젝트’의 공연 두 편을 보고 난 후, 배리어 프리에 관한 나의 인식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는지를 실감했다. 문턱을 없애고 통역을 제공하는 등 장애인을 배려하고 장애를 포용하는 연극은 배리어 프리의 출발일 수 있을지 몰라도 목적일 수는 없다.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같은 세상을 사는, 베풂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적인 가시화의 영역에서 장애인을 비켜나게 하는 구조를 문제 삼아야 한다. 또 장벽 자체만을 문제 삼게 되면 눈에 보이는 장벽을 없애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차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차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가 아니라 장애인들 사이, 비장애인들 사이에도 있다. 우리가 각자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차이 말이다.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제공: 0set프로젝트 ©정택용

 

낯선 우리, 기다림의 시간

<관람모드-만나는 방식>은 ‘만남 이전’과 ‘만남’, 그리고 ‘만남 이후’로 구성되어 있다. 관객은 공연을 보러 가기 전에 미리 3개의 문자메시지를 전달받는다. 자신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홍성훈의 글 두 개와 목소리와 손글씨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박하늘의 글이다. 이 글을 먼저 읽고 공연에서 만나게 될 누군가를 상상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공연 당일, 혜화동1번지 주차장에 관객이 모여들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여기가 주차장이었다는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따뜻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다. 거기 드문드문 놓인 의자에 앉는다. 의자 위에는 핫팩이 놓여 있다. 공연이 시작되고 스크린에 누군가가 타이핑한 글이 영사된다. “거기 계신 분 중에 누군가 제 말을 읽어주시겠어요?” 이윽고 음성해설과 수어 통역이 시작된다. 이곳에 없는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를 관객이 함께 응시한다.

수어 통역을 하던 배우가 소개된다. 유현주 배우가 수어로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유현주 배우가 가르쳐주는 몇 개의 수어를 관객이 따라 해보는 시간도 있다. 코끼리, 족쇄, 시간이 흐른다, 힘이 세진다, 불가. 다섯 개의 단어로 긴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수어를 모르는 관객들은 그 이야기를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박하늘 배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는 동작을 보여준다. 관객들이 함께 일어나 체조한다. 박하늘 배우가 몸이 아프면서 녹음 방식으로 써 내려간 일기가 화면에 손글씨로 영사 된다. 박하늘 배우가 느낀 몸에 관한 생각을 따라 간다.

박하늘 배우를 따라, 박하늘 배우가 전에 이동한 경로를 같이 걷는다. 혜화칼국수 골목을 지나 우체곡을 건너 혜화동 로타리 횡단보도에서 멈춰서고 대로변을 천천히 걷는다. 이윽고 관객들이 이음센터에 도착한다. 이음센터 5층 로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박하늘 배우가 쓴 글이 적힌 종이 위에 글자를 따라 쓴다.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관객들이 진지하게 글씨쓰기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 이음아트홀 문이 열리고 마주 보고 있는 스크린을 가운데 두고 두 줄로 난 관객석에 앉는다. 스크린에는 혜화동1번지 주차장에서 보았던 홍성훈의 두 번째 글이 영사되고 있다. 홍성훈의 세 번째 글이 시작되고 박하늘이 음성해설을 한다.

나는 나의 상태를 설명하는 말 그 이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를 원해요. 나는 내가 이해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 글을 쓰고 싶어요. 나는 글을 쓸 때면 가장 정확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문장들을 고르고 골라요.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 /제공: 0set프로젝트 ©정택용

 

홍성훈 배우가 손가락으로 단어를 타이핑하고 문장을 만들기 위해 커서를 옮겨가며 단어를 고치는 과정을 함께 기다린다. 그가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 보인다. 그리고 홍성훈이 쓴 글이 이음아트홀의 빈 바닥에 가득 영사된다. 휠체어를 탄 홍성훈 배우가 그 글자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어떤 글자 앞에 멈추면 그 글자가 크게 확대된다. 단어를 고르는 중이다. 나, 글, 말, 어떤, 방식.

유현주의 수어가 이어진다. 누군가가 그의 수어를 말로 통역한다. 농인으로 살아오면서 청인들에게 차별받는 순간에 화를 내지 않고 참아왔던 경험에 관한 이야기. 화를 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게 된 이야기를 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있기 위해 나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고 설득한다.”

유현주 배우의 수어가 끝나고 난 후, 홍성훈이 유현주의 이야기에 응답한다. 그가 쓴 문장 “각자의 방식으로 함께 있기 위해 나의 언어로 나를 설명하고 설득한다.”가 스크린에 영사된다. 유현주와 홍성훈이 ‘자리를 바꾼다’. 박하늘이 음성으로 그 문장을 읽는다. 세 사람 서로를 바라본다. 배우들이 각자의 언어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면서 공연이 마무리 된다. ‘만남 이후’ 관객들에게는 공연에서 보았던 내용이 담긴 문자메시지가 전송된다.

<관람모드- 만나는 방식>은 어쩌면 큰 따옴표 안에 있는 저 문장을 말하기 위해 진행되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저 문장은 메시지가 아니라 인사다. 우리가 타인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제일 처음 나누어야 할 인사. 그 과정에서 관객들은 혜화동1번지 극장 외부 주차장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낯설게 조우하고, 혜화동 골목과 대학로 대로변과 이음센터까지 가는 길을 함께 걸으며 발걸음을 늦추었다가 잠시 쉬었다가 망설였다가 하는 마음을 느낀다. 홍성훈 배우가 혜화동1번지 주차장이 아니라 이음아트홀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언어로 가득한 글 속을 바퀴를 굴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은 올해 본 연극 장면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자신의 생각과, 그 이상을 설명하고 설득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구성하는 과정은 진지하고 힘들지만 끝내 자유로워 보였다. 자신이 쓴 글속에 들어가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살갑고 안전한 느낌이 공간 전체를 감쌌다.

청각장애로 수어를 쓰는 사람과 목소리로 발화할 수 없어 문자를 쓰는 사람과 글을 쓰는 것이 불편해 목소리를 쓰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소통하는 방식은 완전하지 않았다. 각자의 이야기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야기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의미를 헤아리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쪽에서 발신한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오류 없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 알아듣지 못해도, 다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더 긴장하면서, 서로를 조심스럽게 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0set프로젝트는 신재 연출이 이끌고 있는 프로젝트 팀의 이름이다. 신재 연출은 2016년부터 <장애극장>(2016), <불편한 입장들>(2017), <연극의 3요소>(2017), <나는 인간>(2018), <걷는 인간>(2018), <없는 사람>(2018) 등을 만들어 장애인 예술가들과 함께 접근성에 관해 질문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관객과 함께 줄자를 들고 대학로 공연장의 문턱을 재고 장애인들이 실제로 마주치는 장벽들을 확인하는 과정을 공연 대본으로 기록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전자저울의 무게를 잴 때 누르는 제로셋 버튼에서 착안한 이름대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0에 놓고 사유하는 일을 실천하는 중이다.

신재 연출의 작업들을 보다 보면, 연극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일종의 도구여도 된다는 믿음이 불쑥 솟아난다. 연극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이 아니라, 연극이 시대와 함께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문제틀 자체를 의문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는 생각을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극을 도구 삼으면서도 연극이 결코 도구화 되지 않는, 어떤 연극적인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자신의 언어가 무엇인지 인지하게 되는 최초의 계기를 말하거나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사람의 자리에 서 보는 일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 나타나는 순간, 마치 장면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내가 말하기 시작할 때>는 장애인 배우가 그의 방식으로 가족들과 동등하게 대화하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색의 동그라미가 무대 바닥에 그려져 있고 사정상 공연에 출연하지 못한 가족 구성원을 화분으로 표시하면서 연극은 다정하고 소박하게 진행된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을 때 혹은 가까운 친구가 장애인일 때, 그를 도와주기 위한 배려의 행동이 오히려 그를 불편하게 하고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도 있다. 홍성훈 배우는 가족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규칙을 정한다. 그동안 자신을 배려하기 위해 가족들이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미리 헤아리거나 때로는 가족 간의 감정이 앞서 대화가 제대로 진전되지 못한 일들이 있어 왔기 때문일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아기로 생각하고 죄책감을 갖는 부모와 자신을 배려하고 또 양보해온 형제들이 ‘글쓰기’라는 자신의 방식으로 대화에 동참하기를 권유한다. 첫 글감은 “좋아한다기엔 애매하지만 싫어한다기엔 열심인 일”이다. 엄마는 등산을, 아빠는 식물 키우기를, 동생은 축구를 가지고 글을 쓴다. 그들은 가족으로 묶여 있지만,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들을 자신의 방식으로 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결국 차별의 장벽을 가장 우선시하면서 장애인을 추상화시키는 일로부터 벗어나는 데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존재 조건을 설명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일에 관해 대화하고 싶었던 여러 장애인 창작자들을 통해 배우게 된다. 더불어 자연스럽다고 믿었던 나의 언어와 소통 방식에 대해 생각한다. 차이를 무화시킨다는 허상에 기대지 않고 차이를 의식함으로써 차이를 만들어내는 경계를 사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펜으로 메모를 시작했다.

 

양근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조교수. 극작, 드라마터그, 평론을 병행하며 극 창작에 참여하고 있다. 2016년 방송평론상을 수상했다. 기억과 역사의 길항 및 문화의 정치성 수행성에 관심을 두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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