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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신데렐라' 다시 읽기, 다시 쓰기
[김시아의 문화톡톡] '신데렐라' 다시 읽기, 다시 쓰기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01.04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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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처음 기고를 시작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문화톡톡’ 독자들과 함께 ‘신데렐라’ 이야기를 통해 영국의 런던과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의 풍경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또한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독자들을 위해 입말체로 들려주었던 방정환의 「산드룡의 유리구두」를 읽어 보자고 제언한다. 느닷없는 전 세계의 전염병으로 인해 여행의 자유가 제한된 요즘, 문학을 통해 특히 시각적인 그림책을 보면서 여행과 사유를 멈추지 말자.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신데렐라』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 가운데 로베르토 인노첸티(Roberto Innocenti)가 있다.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 1826-1890)가 쓴 『피노키오의 모험』으로 그가 그린 그림책을 처음 만났는데 그의 그림을 보면 ‘피노키오’라는 캐릭터보다 이탈리아 토스칸 지방의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는 등장인물을 부각시키기보다 건축물과 19세기 말 이탈리아의 토스칸 지방의 풍경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피렌체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나 현재도 토스칸 지방에 사는 그는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에 19세기 이탈리아의 사회와 역사를 그림으로 담아 그려냈다. 펼친 페이지에 해당하는 그림 한 장을 완성하는 데에 한 달이 걸린 적도 있고 석 달이 걸린 적도 있다고 할 만큼 세밀하게 그린 그의 그림엔 시간과 정성이 녹아있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을 볼 때는 구석구석 천천히 느리게, 여러 번 다시 보아야 한다.

 

샤를 페로, 로베르토 인토첸티, 『신데렐라』, 비룡소, 2007

1983년, 그는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의 『신데렐라』를 그렸는데 배경을 빅벤(시계탑)이 보이는 영국 런던으로 옮겨 놓았다. 금발이 아닌 신데렐라는 까만 단발머리를 한 ‘신여성’ 같은 모던한 스타일이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뿐만 아니라 무도회장 장면을 보면 영락없이 20세기다. 무도회 장면을 위에서 지켜보는 듯한 여왕은 영국의 빅토리아(1819-1901) 여왕처럼 보이며 계단 옆에 걸린 초상화는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여왕의 모습이다. 또한 중앙에서 왼편으로 파이프 담배를 문 사람은 영락없이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1974-1965)의 모습이다. 그러면 신데렐라의 모델은 누구일까? 『신데렐라』의 초판 발행연도가 1983년도이니 1981년에 있었던 세기적인 결혼식의 주인공 다이애나(Diana Spencer, 1961-1997) 황태자비를 연상시킨다.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신데렐라』의 마지막 장면으로 결혼을 후회하고 있는 듯한 신데렐라의 모습을 그렸다. 닫힌 창문 너머로 춥고 흐린 날씨에 앙상한 나무들이 보이는 창가에서 여인은 앞 장에서 볼 수 있는 결혼식 사진 앨범을 잡은 왼손을 아래로 떨구고 있고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창틀엔 와인 잔이 놓여 있고 바닥엔 꽃잎이 떨어져있다. 시든 꽃이 꽂힌 꽃병과 술병이 나뒹군다. 긴 벽시계는 오후 4시를 넘기고 있다. 그러나 페로의 글에 그림을 그린 것이기에 이 그림을 설명하는 글은 없다. 그림 작가인 인노첸티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비극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이야기한다.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적이지만 세로로 긴 액자형 프레임 안에 신데렐라가 그려져 있는데 새장에 갇힌 분홍 새 같다.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한국판은 2007년 비룡소에서 출간되었다. 이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 협조 요청 메일을 보냈으나 본문 일러스트 도판은 해외 저작권사에 권한이 있다며 표지 이미지만 보내주었다. 그러므로 그림이 궁금한 독자는 그림책을 직접 보길 바란다.)


샤를 페로의 아니마(여성성)를 표상하는 ‘신데렐라’

오늘날 진정 강한 여성은 남자를 통해 신분 상승하려는 ‘신데렐라 콤플렉스’ 자체가 없는 여성일 것이다. 또한 스스로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깨는 여성일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거세게 불어도 페로의 ‘신데렐라’ 이미지를 통해 생산된 신데렐라의 환상과 콤플렉스가 아직도 지속된다. 페로의 판본은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신데렐라> (1950)으로 각색되어 수많은 어린이가 보았고 어른이 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된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신데렐라』는 프랑스 샤를 페로의 동화집을 저본으로 삼았다. 페로의 신데렐라 이야기가 왜 권력 지향적인지 샤를 페로의 프로필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17세기,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가 프랑스를 통치하던 때 예술문화부 장관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 1619-1683)의 오른팔이었던 샤를 페로는 거의 20년 동안 (1663-1683) ‘작은 아카데미’(La Petite Académie) 서기관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일했다. 그의 대부 같았던 권력자 콜베르 문화예술부 장관이 죽자 그도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야만 했다. 이후 그는 글쓰기를 통해 1687년 『루이 대왕의 시대』 (le Siècle de Louis le Grand)’를 출간하며 신구 논쟁의 주역이 되었으며 1697년 구전으로 전해졌던 민담을 각색하여 ‘거위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펴낸다. 여덟 편의 이야기 중에 「신데렐라」 이야기는 무도회 장면을 통해 베르사유 궁전에 대한 그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신데렐라」의 원 제목은 「상드리용 또는 작은 유리구두」(Cendrillon ou la petite pantoufle de verre)다. 제목에서 샤를 페로의 이니셜(C. P.)이 보이듯 상드리용은 샤를 페로의 아니마(anima), 즉 무의식의 여성성일 수도 있다.

“민담 속 여성 인물은 실제 여성도 아니고 남성의 아니마도 아니며, 오히려 둘 다를 표상한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한 측면이 좀 더 두드러지는가 하면, 다른 때는 또 다른 측면이 좀 더 드러난다. 어떤 민담에서는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화자가 여성이라고 추측되는 반면, 다른 어떤 민담에서는 남성이라고 생각된다. (『민담 속의 여성성』, 14쪽)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는 위의 인용문처럼 작가를 알 수 없는 민담에서 화자의 ‘성(性)’을 추측한다. 하지만 저자가 분명한 페로의 ‘상드리용’ 판본은 화자가 남성임이 분명히 드러난다. 상드리용(Cendrillon)이라는 이름에서 재(le cendre)라는 의미가 보이듯 여주인공은 불을 다루는 사제였고 제의적인 의미가 민담 깊은 곳에 숨어있다. 그러나 페로는 자신의 자전적인 기억을 삽입하여 여성을 조소, 조롱하기도 하고, ‘고난극복’이라는 요소를 약화시킨다. 페로의 상드리용은 내숭쟁이에다 대모 요정의 도움으로 멋진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춘 기회로 왕자와 결혼을 한다.

페로는 일반적인 신발에 대한 화소보다 옷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다. 루이 14세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옷은 권력의 상징이었다. 그러므로 신데렐라의 이복 언니들뿐만 아니라 신데렐라도 아름답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 왕궁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간다. 그리고 당시에는 굉장히 귀했던 과일 레몬과 오렌지를 왕자가 주자 신데렐라를 못 알아보는 언니들에게도 능청스럽게 맛보라고 준다.

 

유리의 방과 유리구두

신데렐라 유형의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화소는 학대받는 여주인공, 계모의 구박, 잃어버린 신발을 통해 신분이 높은 남자와 결혼을 하는 요소다. 그런데 페로본에서 신발은 비단 구두도 아니고 꽃신도 아니고 누구도 신을 수 없는 유리구두다. 즉 신을 수 없고 장식용인 신발이다. 그럼 왜 ‘유리구두’ 모티프일까? 유리구두는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유리의 방’에 대한 향수나 암시가 아닐까? 값비싼 유리 샹들리에로 장식된 ‘유리의 방’ (la galerie des Glaces ou Grande Galerie)’은 왕과 왕비의 방을 연결하는 통로이자 궁신들이 만나고 기다리는 장소였다. 1678년에 공사를 시작해 프랑스의 유리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고자 했던 중상주의자 재무장관 콜베르가 죽은 지 1년 후인 1684년에 공사를 마쳤다. 콜베르는 베네치아 유리 제조를 도입하며 왕립 유리 제조소를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유리’는 권력과 부를 상징한다.

페로는 자신의 조카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마리 잔 레리티에 (Marie-Jeanne L’Héritier, 1664-1734)와의 친분으로 당시 문학 살롱의 주체였던 여성 작가들과 문학적인 교류를 나눴다. 그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민담을 각색하여 젊은 여성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야기의 끝마다 운문으로 된 교훈을 남기는데, 「빨간 모자」에서는 밤늦게 돌아다니면 늑대 같은 남자에게 잡아 먹힌다는 가르침을, 「신데렐라」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공하려면 조력자인 대모나 대부가 있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노동이나 노력이 아니라 대부와 대모를 잘 두는 것이 결혼과 성공의 지름길이라 하는 것은 일하지 않고도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헛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페로의 「신데렐라」 판본은 아이들에게나 어른에게나 권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그런데도 읽어야 한다면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신데렐라』를 읽을 수 있지만 이 또한 페로의 텍스트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페로의 「신데렐라」는 다른 텍스트와 비교하며 비판적으로 읽으면 좋다.

페로의 옛이야기는 출간 이후 점점 잊혀지다가 19세기에 귀스타프 도레(Gustave Doré, 1832-1883)의 일러스트레이션 판본의 영향으로 유명해진다. 『성서』 뿐만 아니라 단테의 『신곡』, 『돈키호테』 등 문학작품을 재해석한 도레의 삽화 판본은 150년이 지나도 여전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수 많은 예술가에게 영향을 끼쳤다. 페로의 옛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페로의 문학이 읽히는 것은 제국주의정책과 더불어 프랑스 문학의 장려(?) 정책 때문이 아니었을까? 페로의 『옛이야기』는 우리 시대에 맞는 좋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아무런 생각없이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고전’과 ‘명작동화’라고 출판사에 의해 이름 붙여지기 때문에 읽고 읽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양의 ‘고전’은 제국주의의 확대 속에서 번역된 부산물일 수 있다. 무비판적으로 읽는 독서행위에 대해 문화와 시대에 따른 비판적인 읽기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주인공이 죽은 「빨간 모자」 이야기는 페로 판본 이후 오늘날 헤게모니가 전복된 수많은 패러디 작품이 탄생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페로의 판본이 정전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용감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모델로 하는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콩쥐팥쥐」 이야기처럼 결혼 후일담으로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많은 독자가 읽어야 한다. 스타벅스 커피가 입맛을 단일화시키듯 이야기를 단일화시킬 필요는 없다. 입맛이 더욱 다양해져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도 다양해져야 한다.

 

방정환의 「산드룡의 유리구두」

약 백 년 전 방정환(1899-1931)은 페로 본을 번안·각색한 「산드룡의 유리구두」를 『사랑의 선물』(1922. 7. 7)에 두 번째 이야기로 수록한다. 그는 페로본의 「상드리용」 서사를 큰 축으로 그림형제 판본인 「재투성이 아셴푸텔」에서 재투성이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합성하며 울보 산드룡을 부각시킨다. 조국을 잃은 방정환이 어머니를 잃은 산드룡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었으리라 본다. 방정환은 일본어본을 통해 신데렐라 이야기를 번안했는데 충실 하게 번역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각색을 하였다. 즉, 이복 언니들이 옷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빼버리고 아래 인용문과 같이 개연성 있게 신발 모티프로 대체하였다.
 
 “이 애, 산드룡아, 장 속에 내 비단 구두 꺼내다 몬지 좀 털어 놓아라.”
 “이 애, 내 것도 좀 털어 놔라!” 하는 소래에 산드룡은 싫다는 수 없어 그 구두를 내어다 몬지를 털 때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가슴이 아프기는 두 색시의 입고 갈 비단옷을 산드룡이 손으로 짓는 것이었습니다. (『방정환 정본 1』, 40쪽)

방정환본은 페로본의 서사를 큰 축으로, 그림형제본의 울보 재투성이 아셴푸텔과 「콩쥐팥쥐」의 결혼 후일담의 영향으로 ‘색시’가 된 콩쥐의 이미지가 합성된 ‘비빔밥’ 버전이다. 페로본의 한계를 담고 있지만 어머니를 잃은 주인공의 슬픈 감정이 녹아 있고 글의 개연성 측면에서 오히려 페로본 보다 더 나은 측면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그림작가는 「산드룡의 유리구두」를 그림으로 재해석해도 좋다. 내년이면 근대문학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번안집 『사랑의 선물』이 출간된 지 백 주년이 되는 해이다. 필자는 새롭고 도전적인 시각을 가진 작가들이 그린 다양한 패러디 작품을 기다린다. 삶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작품에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 유럽의 고전(?) 앞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시대에 맞는 주체적이고 진취적인 다양한 ‘신데렐라’ 이야기를 새로운 세대가 쓰고 읽기를 바란다. 

 


*이 글은 『스토리앤이미지텔링』 제20집(2020. 12. 30)에 쓴 연구논문 「‘신데렐라‘의 문화적 이미지: 페로와 방정환의 판본과 여러 번역본 비교연구」에서 지면 관계상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서 썼다.

 

글·김시아(KIM Sun Nyeo)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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