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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화양연화>, 마주할 수 없는 그들
[강선형의 시네마 크리티크] <화양연화>, 마주할 수 없는 그들
  • 강선형(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04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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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하릴 없이 밤거리를 걷는다. ‘둘은 어떻게 시작했을까요?’ 여자가 질문을 던지자 두 남녀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어 서로를 바라본다. ‘늦었는데 아내가 뭐라고 하지 않겠어요?’ 그럼 남자가 말한다. ‘신경 안 써요. 늘 늦는 걸요.’ 그럼 또 남자가 묻는다. ‘남편은 뭐라고 안 해요?’ 그럼 여자는 답한다. ‘벌써 잘 텐데요, 뭐.’ 여자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연극은 비슷하게 반복된다. ‘누가 먼저였을까’라는 질문 앞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오늘은 나랑 함께 있어요.’ 여자는 자신의 남편이 그렇게 말할 사람이 아니라고 자꾸만 생각하고, 그렇다고 남자의 아내가 그렇게 말하는 모습도 상상할 수 없다. 서로의 남편과 아내의 사이는 분명한 관계이고, 누가 먼저냐는 것도 사실은 중요하지 않지만, 두 사람은 끝없는 질문들에 사로잡혀 밤거리를 하릴없이 걷는다. ‘부인에 대해 잘 아세요?’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잃어버린 두 사람은 더 이상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에 사로잡힌다.

 

비밀이 휩쓸고 간 자리

<화양연화>는 이렇게 리첸(장만옥)과 모완(양조위), 두 남녀가 서로의 남편과 아내 사이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낯선 모습들을 발견한다. ‘당신이 주문해요. 뭘 좋아하는지 모르잖아요.’ 두 사람은 자신의 남편과 아내가 식당에서 어떤 메뉴를 고를지, 어떤 맛을 좋아할지 잘 안다. 그렇지만 모르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은 한 순간에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다. 모든 것들은 그들의 비밀과 함께 휩쓸려 떠나가 버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떠나버린 폐허가 된 그 자리 위에서 그들의 사랑이 자라난다.

 

폐허 한 가운데에서 서로를 발견한 두 사람은 놀랍도록 애틋해진다. 이내 함께 있는 시간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 된다. 노래 가사처럼 ‘花樣的年華’. 두 사람은 완전히 낯선 사람이 되었던 서로의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된다. 이미 잃어버린 서로의 남편과 아내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던 연극은 그들의 진심이 되어 이미 떠나버린 자들의 현실에 가닿는다. ‘낮엔 사무실에 왜 전화했죠?’ 리첸은 묻는다.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모완은 답한다. 리첸이 말한다. ‘제 남편도 늘 그렇게 말했죠.’ 두 사람은 서로의 남편과 아내가 되어 이렇게 연극을 했었다. 리첸의 사무실로 걸려온 모완의 전화는 그녀에게 그들의 연극을 떠올리게 한다.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받지 못한 수화기 너머 모완의 목소리는 꼭 그렇게 말했을 것만 같다.

 

감추어진 표정들

그래서 모완은 말한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고. 이것은 단지 도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리첸과 모완의 연극이 현실이 되면서 놀라운 것은 영화에서 한 번도 비추어지지 않던 그들의 남편과 아내의 얼굴이 표정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모완과 마주하는 리첸의 남편, 리첸이 다녀간 뒤 흐릿하게 비추어지는 모완의 아내의 울음, 그 모든 감추어진 감정들이 리첸과 모완을 통해서 우리에게 펼쳐진다. 그들이 짓고 있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차를 두고 우리에게 다시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게 모완과 리첸을 통해서 마주하는 그들은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마주할 수 없는 자들이면서 우리 앞에 있는 자들이 된다. 그들은 우리에게 자신의 표정들을 드러내주지 않는 완전한 타자들로 남아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서 되살아난다. 그들은 모완과 리첸처럼 우리 앞에 있으며 우리 앞에서 사랑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두 사람은 그들에 대해 궁금할 것이 없는 정형화된 자들로 남아있지 않고 비밀을 간직한 자들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들 덕분에 모완과 리첸의 사랑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사랑에 관한 질문들이 된다. 우리는 다른 이들의 사랑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는가? 또 우리는 우리의 사랑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 수 있는 것일까? 모완의 말처럼 ‘많은 일들이 나도 모르게 시작된다.’

 

비밀이 묻히는 곳

우리는 모완과 리첸처럼 그들의 아내와 남편의 사랑의 시작을 알 수 없었지만 모완과 리첸의 사랑의 시작을 보게 되고, 반대로 모완과 리첸의 사랑의 끝은 그들의 아내와 남편을 통해서 그들보다 우리에게 먼저 전달된다. ‘앞으로 다시 찾아오지 말아요.’ 모완의 아내가 리첸의 남편에게 한 말은 모완과 리첸의 이별극에서 다시 펼쳐진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세요.’ 리첸은 모완에게 그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끝을 이미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진짜 사랑은 이 이별극과 함께 시작된다. 그들은 다시 한 번 말하게 된다. 이번에는 연극이 아니라 진심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 밤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연극으로 시작하여 이별도 연극으로 끝이 난다. 아주 짧지만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버려 현실에는 없는 한 편의 연극처럼 끝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먼지 쌓인 유리창처럼 볼 수는 있지만 만질 수 없기에’ 우리는 그들과 함께 여전히 그리움 속에 있다.

 

모완과 리첸의 사랑은 모완이 그의 동료 아핑에게 전하는 비밀을 덮는 이야기처럼 영원히 감추어진다. ‘유리창을 깰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갈지 몰라도.’ 산 속 나무에 구멍을 파고는 그 안에 비밀을 속삭이고 흙으로 봉하는 사람들. 모완과 리첸의 비밀이 묻히는 장소가 앙코르와트였어야만 하는 이유는 수많은 역사가 스며들어 있고, 또 그것이 아주 오랫동안 잊힌 곳이기 때문이다. 왕가위는 모완과 리첸의 사정은 건물 외벽에 조각된 부조 장식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는 영원과 같은 시간 동안 수없이 속삭여지고 봉해지는 보편의 이야기들이 된다. 이 이야기들은 깊이 스며들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지만 더 이상 사람들의 기억의 표면 위에서 부유하지 않는다. 유리창을 깨고 싶어도 깨어지지 않고 흙으로 덮고 또 덮어지는 시간들. <화양연화>는 그런 우리 모두의 시간에 관한 영화이다. 그리고 이것이 또한 <화양연화>라는 이미 시간이 꽤 흘러버린 영화가 다시금 영원한 울림을 간직하는 방식일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강선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 강사 및 철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40회 영평상에서 신인평론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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