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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코로나 블루’, 분노가 폭발하기 전 꼭 봐야 할 영화 <언힌지드>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코로나 블루’, 분노가 폭발하기 전 꼭 봐야 할 영화 <언힌지드>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1.01.11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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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학교에 늦은 아들을 데려다주고 출근을 해야 하는 레이첼(카렌 피스토리우스). 꽉 막힌 도로, 직진 신호가 되었는데도 앞차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짜증이 난 레이첼은 필요 이상으로 경적을 크게 울리고, 앞차의 운전자는 그녀의 무례한 행동에 사과를 요구한다. 이를 무시한 채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지만, 앞에 있던 차가 그녀를 따라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그녀는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일이 힘든 월요일 아침,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레이첼

일주일 중 어떤 요일보다 힘든 월요일 아침, 교통 체증은 최악이고, 아들 학교에도 늦었고, 자신의 일자리마저 지각으로 잃을 수 있는 불안한 상황이라 짜증과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예민해진 신경 탓에 운전 중 작은 실수는 큰 다툼으로 번질 확률이 높아진다. 운전 중 분노는 큰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다.

화는 타고난 것일까? 사회가 우리를 화나게 하는 걸까? 심각한 건 한번 화가 치밀어 오르면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난폭 운전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경찰은 인력이 부족하고, 시민들은 자신 앞에 닥친 문제를 직접 수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스로 지켜야 한다. 누구도 당신을 돕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든 일이 꼬여 힘든 월요일 아침, 짜증과 화가 머리끝까지 난 레이첼은 사과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미 분노가 폭발한 시한폭탄 더 맨

비 내리는 새벽, 더 맨(러셀 크로)은 복용하던 약과 손에 끼고 있던 결혼반지를 벗어 두고, 망치와 석유통을 들고 노려보던 집을 향해 걸어가 살인과 방화를 저지른다. 현대인의 정신 건강이 심각해지고, 불평등은 늘 사상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다.

새벽에 약물 남용과 힘든 개인사로 마음의 여유를 잃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 더 맨은 잠시 멍한 상태로 신호가 바뀐 지도 모르고 있는데, 뒤차가 ‘분노의 경적’을 울린다. 그 차를 따라가 자신이 요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 잠시 멍했었다고 설명하고, 사과를 하면 끝날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레이첼은 사과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그 누구한테도 그 무엇이든지
사과하는 방법을 잊어버렸어.”

“정말 끝내주게 힘든 하루가 뭔지 곧 알게 될 거야.”
더 맨(러셀 크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사소한 일 때문에 분노했지만,
결과는 테러가 된다

나만 세상에서 모든 힘든 일들을 겪고 있다는 억울함이 상대에게 순화되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퍼부어질 때 엄청난 폭력성을 띤다. 영화 제목인 '불안정한(언헌지드)' 더 맨은 이미 살인과 방화를 저지른 상황에서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어진 상태였다. 자신의 모든 분노를 풀 상대를 정했고, 폭주하기 시작한다.

더 맨은 레이첼을 쫓아가 핸드폰을 훔치고, 레이첼을 도우려는 시민을 차로 치고, 트럭으로 레이첼의 차에 부딪히며 위협을 가한다. 레이첼이 가까스로 도망치자, 레이첼에게서 훔친 핸드폰으로 알아낸 정보로 레이첼과 만나기로 한 이혼 전문 변호사 앤디와의 약속 장소로 먼저 간다.

 

'이혼 전문 변호사' 앤디와 더 맨

더 맨은 앤디에게 자신을 레이첼의 친구라고 소개라고, 레이첼의 전 남편은 최선을 다한 거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나 앤디가 레이첼의 전 남편은 구하는 일마다 전부 그만뒀다고 대답하자, 더 맨은 전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그게 큰 잘못이냐고 반문한다. 이혼 (전문 변호사) 때문에 자신도 몸도, 마음도, 돈도 자기 인생 전부를 잃었다고 말하며, 더 맨은 앤디에게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며 살해한다.

더 맨은 멈추지 않고 레이첼의 집으로 가 동생 프레드와 약혼녀 메리에게 폭행을 가한다. 이유는 누나가 자기를 버러지 취급했다는 이유다.

 

“투명 인간 같았던 내 삶에서
나의 노력과 희생들은 모두 묵살되고, 저평가되고 무시당했어.
난 잘근잘근 씹히고 단물만 빨린 채 버려졌지.
그래서 나한테 남은 건 이제 복수와 응징뿐이야.”

 

분노로 추락(falling down)하는 ‘디펜스’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더 맨을 연기하는 러셀 크로는 너무 섬뜩한 모습을 보여줬다. 말이 통할 거 같으면서도 통하지 않는 두려움, 오래된 화가 누적된 극도의 분노, 집요하고 지독한 집착에 대한 공포. 그의 분노는 조엘 슈마허 감독이 1993년에 만든 <폴링 다운>의 ‘디펜스’를 떠올리게 한다.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그 태양을 받아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지열, LA 시내로 들어가는 프리웨이를 가득 메운 채 긴 행렬로 늘어선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눌러대는 경적이 짜증스럽다. 꼼짝도 하지 않는 차 안에서 에어컨은 고장 나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있는 디펜스(마이클 더글러스 분)의 목 주위로 어디선가 들어온 파리 한 마리가 왱왱거리며 맴돈다. 그의 짜증은 이미 인내의 한계를 벗어난 듯하다. 마침내 차 문을 박차고 뛰어내린다.

 

그는 오랫동안 근무하던 방위산업체에서 해고당하고, 아내에게 이혼당한 후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다. 지극히 평범했던 샐러리맨의 생활이 이렇게 꼬여버린 후 불안한 일상을 지탱해오던 그에게 그날의 태양은 유난히 뜨거웠다. 그는 그날 어린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전처 베스와 어린 딸이 있는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베스는 전화를 끊어버린다. 삶에 대한 무기력, 그저 반복될 뿐인 일상의 단조로움, 우울하기만 한 디펜스에게 이 도시는 너무도 냉정하다. 그러다 우연히 손에 쥐어진 무기, 그는 자신을 버린 세상을 향해 거칠게 분노한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더 맨과 디펜스가 분노를 표출하기 전에 오랜 시간 화를 참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면 스트레스가 되어 여러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정서적으로 우울감이나 불안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억압된 분노는 때론 수동 공격형 방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더 맨은 자신의 삶이 투명인간 같았다고 했고, 디펜스는 조금씩 삐져나오는 분노를 가족에게 풀려다 접근금지 명령을 받기 전까지 이름 그대로 방어(D-Fens)만 하며 참고 살았다.

그리고 이제 두 사람 모두 가족에게 배제되어 더 이상 사랑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이 더 이상 사회에 필요하지 않은 무가치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에서 육체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 바로 집단으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억울한 누명을 써서 명예를 손상당하거나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판단될 때, 많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이 둘의 선택도 같은 이유에서다.

 

디펜스로 나온 '마이클 더글러스'

두 영화의 차이점은 <폴링 다운>의 경우 더 많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디펜스는 상당히 심도 있게 다원화되고 복잡화된 사회가 발생시키는 모순들에 적응하지 못한 소시민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993년에 보여주었던 사회적 모순들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더 주목받을 만 영화다. 그것과 비교하면 <언힌지드>의 경우는 더 맨 자신이 불행해진 이유를 레이첼이라는 한 여성이 “모든 것이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단정 지으며 매우 개인적인 분노를 개인적인 보복으로 마무리하는 지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분노를 폭발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사람들은 대개 분노에 휩싸이면 험한 말과 행동을 한다. 심하게는 폭력이나 살인 같은 우발적이고 극단적인 사건을 저지르기도 한다. 분노는 여러 원인으로 시작되지만, 대부분 부정적인 결과를 낳고 끝나버린다. 분노의 대상이 대개 가까운 가족이나 동료인 경우가 많아서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분노는 집단을 해칠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취급하고 억누르도록 가르치고 있다. 인류는 분노를 누르며 진화해 왔고, 분노를 자제하는 문화를 발전시켜왔고, 분노를 잠재우고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더 맨으로 나온 '러셀 크로'

분노가 일어날 때의 순서는 분노 감정에 관여하는 편도체 활성이 먼저 일어나고, 뒤따라 상황을 파악하는 신피질이 작동한다. 다시 말해 분노가 먼저 일어나고 그에 대해서 적당한 이유를 찾는 것이지,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노는 내면 낼수록 점차 증폭되고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처음에는 소리를 지르던 수준에서 점차 물건을 던지고 더 심해지면 사람을 때리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수준에 이르면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더 맨이 분노를 폭발시킴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씻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친절해라.
네가 만나는 사람 모두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분노를 잘 참지 못하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분노가 잘 조절되지 않는 것은 상대가 자신을 화나게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충분히 수양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설령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하더라도 분노를 직접 겉으로 드러내기보다는 평온하고 침착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렇다고 현대 사회의 분노 요인이 전적으로 개인에게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하는 상당 부분 책임은 사회에 있다. 그러나 분노를 쉽게 드러내는 사회는 더 살벌한 사회로 바뀔 것이다. ‘코로나 블루’로 심적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이 시기에 일어나는 “분노를 어떻게 할 것인가?” <언힌지드>는 의외로 명확한 해답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미덕을 가진 영화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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