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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자리’에 관한 짧은 생각
‘몸 자리’에 관한 짧은 생각
  • 홍세화
  • 승인 2011.08.04 15:5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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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결국 자기 몸 자리에 관심을 갖는다. 그건 당연하다. 사람의 모든 삶의 궤적은 처지에 의해 수동적으로 ‘놓이는’ 몸 자리와 의지에 의해 스스로 ‘놓는’ 몸 자리의 연속으로 규정할 수 있다. 가령 “내 한 몸 건사하기 어려워”나, “이 한 몸 누울 자리가 없어”라는 말이 처지에 의해 ‘놓이는’ 몸 자리를 푸념하고 있다면, 200일 넘게 85호 크레인을 지키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은 의지로 자기 몸을 능동적으로 거기 ‘놓은’ 경우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 몸을 ‘놓는’ 의지는, 대부분 처지에 따라 ‘놓이는’ 몸 자리에 대한 관심- 그것이 자기 몸이든 이웃 몸이든- 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진숙 위원이 그 자리에 자기 몸을 ‘놓은’ 것은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몸이 더욱 열악한 자리에 ‘놓이게’ 될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저항과 연대의 의지에서 비롯됐다면, 용역이나 용역을 부리는 사람들이 자기 몸을 그 자리에 ‘놓은’ 것은 주로 자기 몸이 ‘놓이는’ 자리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용역의 관심이 생존 차원에 가깝다면 그들을 부리는 자들의 관심은 그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는 차이가 있지만(1, 25면 ‘용역, 폭도 자본주의의 그늘’).

나 같은 범인(凡人)은 이 한 몸 아무리 잘 ‘놓인’다고 한들 얼마나 편안하고 대단한 자리일 수 있겠는가 싶다. 어느 날 김용철 변호사에게 삼성 재벌가의 마름이나 머슴 자리에 자기 몸을 자랑스럽게 ‘놓는’ 임원이나 검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더니, 김 변호사는 나의 어리석음을 간단히 일깨워주었다. “돈 많이 가져봤어요?” “권력 가져봤어요?”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한 유한계급에 속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지만, 솔직히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돈과 권력이 아무리 대단하더라도 그것을 내 몸 자리에 적용해보니 기존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돈이 많은들, 또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들 그게 내 이 작은 몸을 ‘놓는’ 자리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겠는가? 최근에 내가 몸을 ‘놓은’ 자리 중 희망버스가 포함되는데, 나는 거기서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즐거움을 느꼈다. 참가비 3만원으로. ‘쉬러 가는 서구인들, 쫓겨나는 원주민들’(16~17면)에서 TV 스타와 미디어 거물, 정치인과 기업가를 위한 특급 호텔과 호화 저택에 관해 읽으면서도 나는 시큰둥했다. 그들의 몸 자리가 아무리 화려한들 그 또한 나처럼 작은 몸이 놓이는 자리일 뿐이지 않은가. 그게 무슨 대수인가. 물론 나는 ‘어리석음’이라는 병을 앓고 있음을 알면서 치유할 의사가 전혀 없는 위인이다.

그래도 남는 문제가 있다. 돈과 권력에의 탐욕과 의지가 자신의 몸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이웃의 몸 자리를 공격해 인간의 존엄성 아래로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수많은 몸을 더 행복한 자리에 ‘놓이게’ 할 것이라고 떠들어댔지만, <분노하라!>를 쓴 스테판 에셀이 지적했듯이 양극화를 심화해 수많은 몸을 더욱 나쁜 자리에 ‘놓이게’ 했듯이(1, 4~5면 ‘탈세계화와 그 적들’). 독일 녹색당이 자유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1, 6~7면 ‘독일 녹색 황금빛 야망’), 21세기에 가히 엽기적인 수준을 드러낸 미국의 언론-돈-권력의 삼각관계도(12~13면) 돈과 권력에의 탐욕과 의지와 무관하지 않은데, 신자유주의는 그것을 극한으로 부추기면서 존엄하게 태어난 몸들에게서 존엄한 자리를 빼앗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싸움은 그 공격에서 우리 이웃, 사회적 약자의 몸 자리를 지켜내는 데 있다. 그 길은 민주화의 진전과 공공성의 확장에 있다. 예컨대 “스무 살에 얻은 좋은 점수로 평생을 편하게 사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14~15면 ‘세금에서 금융으로, 프랑스 엘리트들이 사는 법’)인 ‘교육의 민주화’처럼.

글•홍세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editor@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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