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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미의 문화톡톡] 이민자들이 언어: 당신의 언어는 무엇입니까
[장윤미의 문화톡톡] 이민자들이 언어: 당신의 언어는 무엇입니까
  • 장윤미(문화평론가)
  • 승인 2021.03.0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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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 이민자가 맞닥뜨리는 가장 큰 장벽은 자본과 언어다. 그런데 자본을 얻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기에 이 두 가지는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민국의 언어에 능통하거나 소수 전문직을 제외한 대개의 이민자가 이민 초기 시절에 육체 노동직을 선택하는 이유는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육체노동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언어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과 함께 이민자는 이민국의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때까지 학습 수준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미성숙한 아이 취급을 받는다. 언어 수준은 학습과 지적 수준에 비례한다는 무의식적인 사고가 이민자를 미성숙의 아이와 같은 급으로 환원해버리는 것이다. 이민자가 자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한들 그것이 언어로 증명되지 않는 이상 의미가 없다. 현지인들이 보기에 이들은 부정확한 발음과 어설픈 문장을 구사하는 미숙한 이방인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국가와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성숙한 어른으로 승인받기 위해서 이민자에게 언어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언어의 습득 방법에 따라 모국어-제 2 언어-외국어로 구분했을 때, 이민 1세대의 경우 이민국의 언어는 외국어와 제 2 언어 사이 어디쯤 위치한다고 할 수 있다. 지역 사회에 진입에 성공하고 체류 기간이 길수록 외국어에서 제 2 언어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의사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고 맥락 이해에 방해가 되는 잡음(noise)이나 오해가 발생할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발음의 경우 문제가 다르다. 원어민의 발음과 비슷할 수는 있어도 완전히 똑같게 하는 건 어렵다. 모국어 발음 체계가 체화된 상태에서 외국어를 습득할 경우 외국어에 대한 모국어의 저항이 강하기 때문이다. 국가 이름을 앞에 붙여 모국어의 저항력을 보여주는 예로 ‘~식 발음’이란 표현은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는 한 예다.

그런데 이민 1.5세대나 2세대의 경우 모국어는 한국어가 아니라 이민국의 언어다. 이것은 이민 1세대와 2세대는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언어가 사고를 구조한다는 명제를 빌려 온다면 두 세대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단순히 언어갈등에 머무르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고 체계는 필수적으로 물리적/정신적 충돌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이 다른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세대 간, 문화 간 갈등까지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훨씬 복잡하다. 의사소통의 최종 목적이 텍스트 전달을 넘어 잡음과 오해 없는 콘텍스트(맥락)까지 전달하는 것에 있다면 서로 다른 체계를 가진 각각의 세대가 완벽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이번 지면에서는 이민 가족을 다룬 <LA아리랑>, <김씨네 편의점>,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을 통해 언어의 차이로 인해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그 봉합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 가족이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려보고자 한다.

영어를 쓰지 않는 이민자들 -<LA아리랑>

1995년에 SBS에서 방송된 <LA아리랑>은 LA에 사는 교포들의 일상을 담은 코믹 시트콤이다. 90년대에 들어선 이후부터 경제적 부흥과 함께 해외여행, (조기) 유학, 해외 연수 등 해외 경험의 기회가 많아졌고 그 문턱도 굉장히 낮아진 덕분에 90년대 발 이그조티즘(exoticism)은 티비, 드라마, 소설 등을 통해 다양하게 등장하며 외국에 대한 동경과 욕망을 자극했는데 <LA아리랑>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미국이라는 배경과 시트콤이라는 낯선 형식을 도입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지 촬영보다 세트 촬영이 주로 이루어진 탓에 현장성이 떨어졌다는 지적은 한계점이었지만 한국이 아닌 미국을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는 시도만으로도 신선함을 주며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1995년 제작, 방영된 'LA아리랑(출처: 네이버)
1995년 제작, 방영된 'LA아리랑(출처: 네이버)

 

이민 1세대로 등장하는 아버지는 변호사로 미국 사회의 중산층에 진입에 성공한 인물이다. 경제력을 갖춘 것은 물론 가족들 간에 갈등이 생기면 특유의 이해심과 포용력을 가지고 접근하는 등 서구적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로 등장한다. 아내는 전문직 여성으로 괜찮은 직업을 가진 아내(엄마)로 그려진다. 이 드라마의 컨셉은 재기발랄하고 화목한 가정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3대가 함께 사는 집이지만 권력은 한 곳에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시어머니(시아버지)-아들-손자로 이어지는 수직적 계보를 따르는 대신 부부-자녀-장모로 계보의 방향을 수평적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철없는 처가 식구들의 재기발랄한 스토리는 이른바 K-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가부장의 무게나 책임감과 같은 사회적 위치가 주는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민자들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고 말하기엔 가장 큰 한계점을 가졌는데 등장인물 모두 영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가정에서는 물론 직장이나 학교 등 각각의 공적 영역에서도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자식들도 한국어 소통에 문제가 없고 집에서는 완벽하게 한국어를 사용한다. 드라마의 현장성을 주기 위해서 교포나 유학파 출신의 연기자를 동원해 영어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이러한 장치는 어디까지나 대중의 호기심과 흥미를 충족하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 물론 배경이 LA 한인타운이라는 설정이 이 모든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언어는 이민자들에게 가장 높은 장벽 중에 하나라는 점에서 언어 문제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LA 아리랑>은 교포 가정이라는 설정을 괄호 넣는다면 실상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가정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민자들의 삶을 보여준다는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출신 국적을 초월하며 일상의 영역을 점차 확장해나가는 모습까지도 보여주어야 하지만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만 활동하고 있는 드라마 등장인물들의 일상의 연속은 익숙함 뒤에 가려진 이방인의 고립은 외면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어를 쓰지 않는 이민자들, <김씨네 편의점>

2016년에 제작되어 현재 시즌4까지 제작된 <김씨네 편의점>은 캐나다에 이민 간 김씨 가족의 이야기다. <LA아리랑>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상적인 이민 가정을 보여주었다면 <김씨네 편의점>은 좀 더 평범한 이민 가정의 모습에 충실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점이 있다.

 

2021년 현재 시즌 4까지 제작된 '김씨네 편의점'(출처: 네이버)
2021년 현재 시즌 4까지 제작된 '김씨네 편의점'(출처: 네이버)

 

이 드라마의 트레이드마크이자 유머를 만드는 지점은 아빠와 엄마가 구사하는 독특한 ‘한국식 발음’이다. 이 독특한 한국식 발음 때문에 유창한 영어 문장을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민1세대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다(엄마와 아빠를 맡은 주연 배우들은 실제로는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이민 2세대지만 ‘한국식 발음’을 위해 많은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반면 아들 정과 재닛은 현지인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민 2세대로 이들이 아는 한국어란 엄마와 아빠, 김치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부모의 한국식 영어 발음과 자식들의 영어 발음에서 야기되는 묘한 이질감은 단지 소리의 차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족 간, 세대 간에 존재하는 미묘한 갈등을 보여주는 느슨한 장치로 작용하는데 고칠 수 없는 –혹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아빠나 엄마의 한국식 발음은 정이나 재닛에게 그저 ‘고집, 경직, 세련되지 못함’ 의 의미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모순적 행동을 일삼는 ‘꼰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학창 시절에 소년원에 다녀온 아들 정에게 비난을 퍼붓고도 정이 먼저 용서를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다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곤 한다. 딸 재닛과는 그나마 사이가 낫지만, 캐네디언 사고방식을 완전히 장착한 딸이기에 사고방식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말다툼은 일상이다. 엄마는 아빠보다 자식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정과 재닛이 오랫동안 싱글인 것을 걱정하며 직접 나서서 이성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애쓰는 등 자식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관여하며 한국형 엄마의 모습을 답보하고 있다.

<김씨네 편의점>이나 <LA아이랑>은 이민 가족의 일상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김씨네 편의점>이 <LA아리랑>과 갈라지는 지점은 이민자가 안팎으로 겪게 되는 미묘한 갈등을 괄호에 넣지 않고 계속 환기한다는 점이다. <김씨네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주제는 다름과 차별인데 각각의 등장인물은 나름의 방식으로 다름을 인정하되 차별에는 저항한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은 재닛이다. 재닛은 이민 2세대로 현지인과 같은 교육 과정을 밟고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한 만큼 이민 1세대에 비해 다름과 차별에 대해 예민하고 저항력도 강하다. 특히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일어나는 차별은 부당하며 동시에 공적 영역으로 소환하여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인식도 분명하다. 성적 취향을 근거로 고객을 차별하는 아빠의 행동이 잘못됐음을 지적하거나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서버 취급을 받은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기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닛의 캐릭터는 여러모로 인상적이다.

어쨌든 김씨네 가족은 캐나다 사회의 일원으로 진입한 것이 분명하다. <김씨네 편의점>의 아빠와 엄마의 영어 발음은 현실적이라 오히려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현실성을 더한다. 이민 2세대로 대표되는 정과 재닛 역시 부모의 출신에 따른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신 캐네디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비백인/비서양인으로서 겪게 되는 부당함에 대해서도 대응할만한 힘을 가진 동시에 부모의 국가인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잃지 않는다.

그동안 서구 미디어에서 다루었던 동양인의 이미지는 범죄자, 왕따, 외톨이, 사회 부적응자였다면 <김씨네 편의점>은 지극히 평범한 캐네디언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또 하나는 이민하면 자연스럽게 연상하는 이상적이고 성공한 이민 가정을 보여주는 대신 평범한 이민 가족의 일상을 다룸으로써 이민(가족)에 대한 로망이나 이민=성공한 삶으로 은유 되었던 이전의 텍스트와 갈라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언어가 언어로 끝나지 않는 이유-<페들러스 타운의 동양 상점>

이민 1.5세대 작가가 쓴 자전적 소설인 <패들러스 타운의 동양서점>은 이민 1세대인 아빠와 엄마, 그리고 1.5 세대인 아들과 딸이 이민 초기에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문제는 역시나 언어 장벽이다. 아빠는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며 경제적인 기반을 잡은 후 한국에 있는 가족을 미국으로 부르고 본격적인 이민 생활을 시작한다. 그런데 가족들보다 오 년이나 먼저 미국을 생활을 시작한 아빠지만 영어 실력은 가게 운영을 위해 필요한 생존 영어 수준에 불과하다. 민이라는 이름 대신에 헤리라는 영어식 이름을 사용하고 친근하고 감성적인 미국식 남자가 되기 위해 애를 쓰긴 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좁힐 수 없는 가족 간의 거리감은 좀체 줄지 않는다.

 

우성준,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상점(출처: 알라딘)
우성준, '페들러스 타운의 동양상점(출처: 알라딘)

 

엄마인 인영은 남편이 한국에 없는 동안 모든 일을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며 가족이 재결합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사라질 줄 기대했다. 하지만 5년 사이에 남편은 어설픈 ‘미국st. 남자’가 되었고, 어색하고 낯설기 짝이 없지만, 영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탓에 어쩔 수 없이 남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자신의 처지를 씁쓸해한다. 특히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했던 지난 오 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든 자격과 권리를 박탈한 상황에 대한 자괴감과 비루함은 인영을 더 납작하게 만들었다.

딸 인숙과 대준은 민이라는 이름 대신 헤리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아빠를 바라보며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지 못한다. 특히 인숙은 이민 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강한 인물로 등장하는데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국제전화를 하며 전화비 폭탄을 맞게 하기도 하고 자살 소동을 벌여 아빠에게 경고 메시지를 던지는 등 아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민 생활에 좀체 적응하지 못한다. 열네 살의 대준은 누나인 인숙보다 무던한 편이고 영어에 대한 거부감 역시 다른 가족에 비해 덜하다. 하지만 대준 역시 아픔이 있었는데 동양인에다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다운증후군을 가진 같은 반 친구와 함께 대준은 ‘저능아’로 묶인 것이다. 대준이 학교에서 배운 첫 번째 단어가 ‘저능아’라는 것, 나는 저능아가아니라고 부정하기엔 자신의 영어 실력은 저능아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슬프지만 대준이 견뎌야 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다행인 건은 대준이 그러한 차별에 대해 적당히 체념하고 적당히 무시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준에게 언어 문제만큼이나 심각하고도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가족이 (이전처럼) 화목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였다. 오 년이라는 공백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온 탓에 가족의 결합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동안 가족 각자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준과 인숙은 가장 예민한 시기인 십 대로 성장했고 인영은 남편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다. 아빠는 헤리라는 이름으로 ‘미국식 남자’를 흉내 내는 것도 모자라 불륜을 저지르기도 했다. 각자의 고민과 갈등은 너무나 분명했고 상대가 해결해줄 수 없기에 그만큼 그 골도 깊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연대하게 만드는 막강한 공공의 적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영어였다. 영어는 낯선 미국에서 생존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수단이었기에 가족들은 각자의 고민을 잠시 미뤄두고 영어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로 한다. 언어(영어)는 대준의 가족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배제하며 소외감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대준의 가족을 통합하고 연대하도록 만드는 강력한 끈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작업에는 늘 돌발 상황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가족 모두가 ESL 수업을 받으러 갔다가 엄마가 영어 강사에게 이성적 끌림을 느끼는 바람에 한차례 위기가 올 뻔하기도 했고,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미국인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건은 인숙과 대준이 아빠의 불륜 상대녀를 만나기 위해 뉴욕을 가서 한바탕 소동을 벌인 일이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대준의 가족은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된다.

어쨌든 네 명의 가족이 겪게 되는 낯선 경험들과 깨달음은 모두 언어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이 만약 언어 장벽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물론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맞닥뜨리며 가족 해체의 위기를 겪어야 했지만 다른 세계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대준의 가족이 다른 세계에 기꺼이 진입하고 타인과 섞여 일상을 보내면서 얻은 건 다른 피부색을 하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서 결코 나와 다르지 않다는 보편성이다. 언어가 달라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다르지 않다는 것, 이들 역시 과거에는 자신들처럼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견뎌내었다는 것,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외로움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글·장윤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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