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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 예술, 이분법과 클리셰를 넘어
참여 예술, 이분법과 클리셰를 넘어
  • 산티아고 실베스테르
  • 승인 2011.08.08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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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한 19세기는 그 이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예술은 유익한 것이 돼야 하는가, 아니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하는가. 뒤이어 온 20세기 내내 이 논쟁은 정치적 색채를 띠며 더욱 활기차게 된다.이런 이분법적 대립이 근거 있는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참여 예술’이라는 표현이 “‘신교도의 승마’(신교도의 말타기에 대한 가톨릭교도의 편견)라는 말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의 효과를 만들어냈다”고 했다.부조리하다고 말하지 않기에는 진지함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그런 식으로 그는 20세기 후반 흔하게 사용되던 ‘앙가주망’(사회참여)이라는 수식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그럼에도 앙가주망이라는 표현은 살아남았고, 오늘날에 이르러 참여는 정치적 참여에 국한된다.참으로 놀라운 집중이 아닐 수 없다.일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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