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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속 미친 자의 이성
경제위기 속 미친 자의 이성
  • 피에르 랭베르
  • 승인 2011.09.07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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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정책이 경제위기를 악화한다, 세금 부과는 고소득층에 평준화 효과를 내야 한다, 금융거래 과세가 시급하다, 유로는 큰 오류를 안고 있다…. 이런 내용은 이미 10년 전 신문과 정치권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는 대중매체에서 다루기에는 구식으로 치부되는 간행물에 실렸고, 정치권에서도 민주주의라는 영화의 단역 정도에 머물러 있는 목소리였다. 사상적 대립의 경우, 마치 은행 창구에서처럼, 권력자들이 이기는 세상인 것이다. 정당성을 얻은 권력자가 이런 주장을 공식적으로 다루는 것만으로도, 과거에 터무니없고 이단적인 것으로 치부된 논의들은 대중매체와 여론의 조명을 받게 된다. “유로화는 벼랑 끝에 서 있다.” 전 프랑스 재무장관이자 1985∼95년 유럽집행위원회장을 지낸 자크 들로르가 말했다. 들로르는 헬무트 콜, 프랑수아 미테랑과 함께 유럽경제금융공동체와 단일통화를 고안한 인물이다. 이보다 몇 달 전, 들로르는 권력자들의 탐욕을 맹비난했다. “은행 자문들에게서 공공부채 감소 정책을 강력히 권고받아 잘 이행하고 있으면, 이번에 그들은 그런 정책이 경제성장에 해가 될까 전전긍긍한다.”(1) 앞으로 들로르는 유럽 통합 구조의 예측 불가능성을 비난하게 될까?

들로르의 분개에 공감한 이는 크리스틴 라가르드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이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재무장관으로 고소득층 세금 감면과 공무원 수 감축을 추진한 라가르드는 “재정지출 감소만으로는 불충분하며, 세수가 증가해야 한다. 수요에 대한 악영향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다”라고 말했다. 몇 달 전 라가르드가 가장 우려한 것은 시장의 기대를 넘어설 수 있을지였지만, 종국에 라가르드는 시장의 기대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모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시장은 높은 공공부채를 꺼리고 예산 안정화를 환영하지만, 경제 침체에는 극히 부정적이다.”(2)

지난날 ‘비현실적’이고 ‘좌파적’이라는 비난을 받은 유럽의 금융거래 과세를 오늘날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르코지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있다. 과거, 과세라는 무기는 투자(즉, 고용)를 감소시키고 자본 유출을 야기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였다. 그런데 세계 제1의 부국에서 둘째가는 부호이자 투자가인 워런 버핏이 자신에 대한 과세율이 직원들보다 낮다며, 과세율의 현저한 인상을 요구했다. 버핏은 이에 덧붙였다. “나는 60년 동안 투자자들과 일해왔지만 잠정적 이윤에 대한 과세율 때문에 합리적인 투자 기회를 포기하는 사람은 한 번도 못 봤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하기 때문에 세금을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들어온 것이기에, 이런 주장은 유럽에서 순식간에 지지자를 확보했는데, 그중에는 미디어광고 기업인 퍼블리시스 사장 모리스 레비와 신랄한 일부 여론이 탐욕스럽다고 질타한 이들도 있었다. 세금 납부를 먼저 내세우며, 릴리안 베탕쿠르와 소시에테제네랄 최고경영자, 토탈 최고경영자는 부유층에게 ‘특별기부세’를 신설하도록 요청했다.(3)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읽으면, 어린왕자의 별인 ‘소행성B612’를 발견한 것은 터키 천문학자였지만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다가, 천문학자가 그의 발견을 유럽식으로 치장해 소개하고 나서야 관심을 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경제 분야에서 타인의 존중을 얻는 것은 조금 방식이 다르다. 무한한 실패 경험이 있거나, 엄청난 부자여야 한다. 아니면 둘 모두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남들이 내 말에 귀기울이게 하려면 말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è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김윤형 hibou98@naver.com
파리3대학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르몽드>, 2010년 12월 8일.
(2) <르피가로>, 2011년 8월 16일.
(3) <뉴욕타임스>, 2011년 8월  14일. <누벨옵세르바퇴르>, 2011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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