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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장 소외된 이들의 동행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송연주의 시네마 크리티크] 가장 소외된 이들의 동행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 송연주(영화평론가)
  • 승인 2021.06.07 09: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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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화려한 곳에서 가장 초라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하루하루 먹고 자는 것만 이룰 수 있어도 만족할 뿐인 그가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 도움이 과거 자신의 아픔과 연결되어 있다면 무엇까지 할 수 있을까?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영화는 독특한 오프닝 시퀀스로 시작한다. 불에 그을려가는 사진 속 아이의 모습과 나무에서 노래하는 엄마와 아이의 그림이 보이는데, 마치 상황을 되돌리는 것처럼, 불길이 잦아들며 타버린 아이의 사진도 그림도 원래의 형태를 찾아간다. 이는 크리스틴의 과거이자, 크리스틴이 겪은 아픔을 앞으로 회복해 갈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가로등빛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센 강의 지하도 아래에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을 얻어 지내는 홈리스 크리스틴(카트린 프로). 화장실조차 없어서 강가에서 아름다운 물빛을 보며 노상방뇨를 해야하는 누추한 상황이지만, 길고양이 밥을 챙기는 사람이다.

크리스틴의 하루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아침이면 지하도 공간을 비워줘야만 한다. 강 계단을 올라 거리로 나가는 크리스틴. 밤새 어둠속에 가려졌던 홈리스들의 텐트가 모습을 드러낸 거리를 걷는 크리스틴을 통해 낭만의 도시 파리의 이중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홈리스들을 위한 급식소를 찾아가는 크리스틴은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거리를 떠돈다. 밤이 되어야만 지하도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휘파람을 불며 새들과 노래하고 하루를 보낸다. 그렇게 다시 밤이 오면, 거리를 헤매던 홈리스들이 텐트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어둠은 파리의 누추함을 덮어버린다. 크리스틴은 강 계단을 내려가 지하도 공간으로 들어간다.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영화는 크리스틴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은 채 이렇게 그녀의 일상을 차근히 보여준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은 오프닝 시퀀스의 그녀가 크리스틴일 것이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녀의 공간에 술리(마하마두 야파)가 들어온다. 술리는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이다. 엄마와 단둘이 파리로 들어왔지만, 추방 명령을 받은 엄마와 헤어지게 됐다. 크리스틴은 술리로 인해 지하도 공간에서마저 쫓겨나 완전히 거리로 나앉게 된다. 술리를 받아들일 수 없는 크리스틴은 어떻게든 술리를 떼어 놓으려 하지만 결국에는 술리에게 엄마를 찾아주기로 결심한다.

크리스틴은 술리의 엄마를 찾아주기 위해 홈리스들에게 난민들의 정보를 물으며 술리의 엄마를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크리스틴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위기에 빠지지만, 술리의 엄마를 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마지막 가진 것까지 다 털어서 술리를 챙겨준다. 크리스틴과 술리는 언어로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행동을 통해 서로를 믿고 챙겨준다. 이제 크리스틴에게 술리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도 아깝지 않은 전부다. 자신의 과거를 팔아 술리에게 옷과 만화경을 사주고, 거리에서 은박 이불 한 장을 술리와 나눠 덮으며 따뜻함을 느낀다.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크리스틴이 이렇게 술리를 끝까지 책임지는 행동은 사실 소소한 디테일이지만 지하도에 거주할 때 길고양이의 밥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그럴 수 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조용한 일상을 보냈던 크리스틴에게 술리를 지키며 엄마를 찾아주는 모험은 그녀가 사람들과 소통하고 갈등하고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변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크리스틴의 이름도 알게 된다.

이렇게 술리의 엄마를 찾는 여정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짐작했듯이 아이를 잃은 크리스틴의 전사와 연결된다. 아이를 잃은 여성이 엄마를 잃은 아이에게 엄마를 찾아주는 여정으로 자기 회복을 하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이야기다. 아이를 잃고 가장 화려한 파리에서 가장 초라하게 살아가는 홈리스 크리스틴이, 이 도시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난민이자 엄마를 잃은 아이 술리를 도와야하고, 그 여정으로 크리스틴이 아이를 잃었던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강력한 한방은 두 사람의 여정을 성공시키는 크리스틴의 마지막 행동이다. 크리스틴의 마지막 행동으로 둘의 여정은 성공하고,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된다. 마지막 술리를 바라보는 크리스틴의 눈빛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왔던 그녀가 완전히 치유되는 모습이다. 그래서 파리의 거리로 돌아간 크리스틴은 이제 은박 이불을 벗어던지고 파리의 별빛 아래로 들어갈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출처 : 네이버 영화 - 파리의 별빛 아래(2021)

영화는 전반적으로 큰 갈등이 돋보이지 않고, 사회 현실을 강하게 고발하지도 않는다. 크리스틴과 술리가 여정을 통해 겪어가는 일들이 갈등이 되고, 그들의 여정에 자연스럽게 사회 현실이 묻어나고 있다. 그래서 강력한 고발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이 따를 수 있다. 이 영화의 프랑스 포스터를 보면, <나, 다니엘 블레이크> 제작진을 강조하기 보다는 프랑스 국민배우인 카트린 프로를 더 강조한 것도 크리스틴의 변화를 보여주는 그녀의 연기가 중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글·송연주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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