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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국의 문화톡톡]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병국의 문화톡톡]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 이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1.07.19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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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반강제적 자가격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도서관상주작가로 출퇴근했기 때문에 늦은 실감인지도 모르겠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실상 재택근무라는 말은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용어이지만, 카페에 가서 노트북 펼쳐놓기조차 염려되는 마음에 밖에는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집에만 있다 보면 새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집은 왜 항상 지저분할까. 밥 먹을 시간은 왜 이렇게 자주, 빈번하게 일상의 고요를 깨뜨리는가. 누군가 대신 이 일을 처리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오래전 영화 제목 하나가 떠오른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때의 ‘아내’란 남편과 나란한 횡적 존재로 인정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겠다. ‘아내’란 말 대신 ‘엄마’를 놓아도 같은 의미를 나타내지만, ‘남편’이나 ‘아빠’를 놓으면 전혀 다른 맥락을 갖게 된다. 저 용어에 내포된 요구는 가정을 위해 (비/자발적으로)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여성에게 제한된다. 이른바 따뜻하고 친밀한 타자에의 요구인 셈이다.

 

사진출처_게티이미지
사진출처_게티이미지

‘집콕’ 생활이 늘어갈수록 집안일을 둘러싼 역할 갈등은 사실 어제오늘만이 일이 아니다. 집안일을 노동이 아닌 누군가의 헌신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회 풍조는 무조건적인 환대만이 존재하는 친밀성의 장소로 여겨지는 가정을 여성적인 것과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가정을 돌보는 일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 해야 할 일이 된다. 레비나스의 말을 빌리면, 여성은 자신의 얼굴을, 언어를 지니지 못한 과정적 존재로 가정경제, 에로스, 모성의 순환 논리에 갇힌 타자이다. 그러니 코로나19 시대,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아내/엄마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삼시세끼를 챙기고 가사노동을 수행하면서 지워진 존재로 소외되고 만다. (<세계일보>(2021. 3. 2.) 기사에 따르면, 가사노동의 분담 비중이 성별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인식은 31.5%이지만, 전체 응답자의 79.4%는 가사노동을 여성이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집안일은 아내가 중심으로 하는 것이며 남편은 가끔 도와주는 정도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여전히 팽배한 현실이다.)

 

여성의 가사노동과 관련된 문학적 접근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비판의 측면에서 많이 다루어졌다. 그런데도 반복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 사회적 담론으로 확장된 것과는 달리 생활 세계에 침투하여 사람들의 극적인 변화를 이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착된 사고를 깨기가 어려운 것일 테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와 착종되어 남성적인 것을 강조하고 그것을 정상사회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을 비롯해 페미니즘 리부트 논의가 활성화되면서 성인지 감수성이 향상되는 한편에서 백래시도 감지되고 있는 것을 보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갈등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행주가 무심한 얼굴로 끓여지는 중이다/저 신성한 냄비 속에서//어느 때고 행주가 삶아지는 경로는 비슷하다/남편이 아내에게 행주에서 쉰내가 난다고 타박을 하거나/남편이 아내에게 행주가 이게 뭐냐고 성질을 내거나/남편이 아내에게 행주 좀 내다버리라고 비아냥거리거나//행주는 뜨거운 물속에서 제 물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지만/미세한 탈락을 막을 수는 없다 (……) 아내는 행주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가스불을 조절하고/식탁 위에 노트를 펴고 무언가를 적는다/무중력 의자에 누워 낄낄거리는/남편의 뒷덜미를 보며//무중력/무방비/무력감//아내는 무방비라는 글자에 몇 번이고 동그라미를 친다//너는 나를 왜 믿는 걸까/내가 보이긴 할까//이 집이/끓고 있다(강지혜, 「행주를 삶는다」 부분, 『문장웹진』, 2021년 3월호)

 

강지혜의 「행주를 삶는다」의 화자는 행주를 삶고 있다. 행주를 삶는 행위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편의 “타박”과 “성질”, “비아냥”을 경유한다. 아내를 향한 남편의 요구는 아내가 자기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는 비난인 셈이다. 수동적 위치로 아내를 고정시키는 남편의 이러한 비난은 아내를 타자화한다. 고유한 얼굴을 잃어버린 타자는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아내에게 작동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구속력은 강고하다. 여기서 벗어날 길은 요원해 보인다. 변화의 단초는 “끓고 있”는 “집”으로 은유된 아내의 내적 갈등에 있다.

 

“행주가 끓어 넘치지 않도록 가스불을 조절하”는 아내와 “무중력 의자에 누워 낄낄거리는/남편”의 층위는 명백한 위계에 바탕을 두며 각각의 내적 일관성을 강화한다. 이를 단순히 지배와 피지배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리된 축을 따라 성역할을 강제하는 관계라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적 위계를 내면화하지 않기 위해 화자는 행주가 삶아지는 동안 록산 게이와 레베카 솔닛의 책을 읽는다. 페미니즘 서적을 읽는 행위는 성차에 새겨진 폭력적 위계 구조로부터 당장은 벗어날 수 없을지라도 행주의 물성, 즉 여성 자신이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화자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인 셈이다. 물론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이라 전제된 보편성 속에서 “미세한 탈락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화자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아내의 독서가 깊어”질수록 “이 집의 모든 무생물에 생명이 깃”들며 변화의 단초는 마련된다.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주장을 인용하며 여성 자체가 과정 중에 있는 용어이기에 시작하거나 끝난다고 당연하게 말할 수 없는 구성 중에 있다고 말한다. 진행 중인 담론적 실천으로서 간섭과 재의미화가 열려 있는 것인데 그런 이유로 지배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여성이 된다는 것은 결코 종결될 사항이 아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여성은 수행적 차원에서 젠더의 본질적 외관을 젠더의 구성적 행위들로 해체할 수 있을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다.1) 주체와 타자가 고정된 실체가 아닌, 위치에 의해 주어지는 자리일 따름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면, 그리고 자신의 인식과 행위의 자율적인 주인이 되어 스스로를 표상할 수 있는 자리로 옮길 수 있다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타자에게 강제한 자리를 거부하고 그 역학 관계를 다른 방향으로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일은 “남편의 뒷덜미를 보며” 느끼는 “무력감”에서 벗어나 “무방비”로 노출된 자신을 다르게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을 것이다. 가사노동이 아내의 일이라는 담론을 당연하게 수용하고 그 담론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남편의 시야에 “내가 보이긴 할까”라는 질문 대신 “이 집이/끓고 있”음을, 무생물에 깃든 생명의 온도가 지닌 이질성을 노출 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사진출처_게티이미지
사진출처_게티이미지

한편에서 이러한 수행적 의미화에 대한 요구가 다른 어떤 정치적, 사회적 요구를 이상화된 관념으로 은폐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여성, 그중에서도 아내에 대한 설명을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 전제하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다른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배타적인 이상에 다름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코로나19로 인한 ‘집콕’이 정상적 관계라고 상상된 가사노동 내에서의 성별화된 위계를 폭로하는 계기가 된 것이기는 하나 이를 바탕으로 상상한 변화에의 요구는 위계적 관계를 너무 단순한 질서로 전유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를 구성하는 저 관계의 “고독”과 “오염인자들”이 존재하는 한, ‘행주’로 은유된 존재가 “끓어 넘치”도록 가스불을 키워보는 것도 필요한 일일 테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트러블』, 조현준 옮김, 문학동네, 2008, 98~114쪽 참조.

 

- 이 글은 <한국작가회의 회보> 2021년 3~4월호에 게시한 글임을 밝힙니다.

 

 

글 · 이병국

시인, 문학평론가, 그 외 이런저런 알바生. 시집 『이곳의 안녕』이 있음. 제4회 내일의 한국작가상 수상. 동시대 한국인이 쓴 시와 소설 읽는 걸 좋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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