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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를 거부하는 비용
중도를 거부하는 비용
  • 홍세화
  • 승인 2011.10.10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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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독자 여러분에게 미안한 말씀부터 드려야겠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의 가격이 이번호부터 조금 오른다. 편집인이지만 전국언론노조 산하 르 디플로 분회 조합원인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영진의 판단과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다. 물론 정기구독 중인 분들에게는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 28면으로 제작되는 프랑스판보다 10여 면 많은 40~44면 발행, 로열티, 번역료, 종이값 등 제작비용과 인건비 등 한국판의 가격을 올려야 하는 요인을 이해해달라고 독자께 요청할 수 있겠다. 올린 가격이라고 해도 책 한 권 값도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시장에 쏟아져나오는 허접한 책들을 떠올리니 그런 말도 구차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보다 이런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오늘과 같은 시장전체주의 사회에서 독립 언론의 생존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독자의 인식과 그에 따른 실천에 관해서다. 세르주 알리미 프랑스판 발행인도 이번호에서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뿐이다”라고 말한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다시 끌어들인다면, “생존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할 때” 독립 언론은 이미 설 자리가 없다. 재벌과 금융자본이 지배하는 ‘기업사회’에서 생존수단의 대부분을 그들이 나눠주는 광고로 충당하는 신문과 방송이 공정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구하는 격이다. 고종석씨는 최근에 쓴 <한겨레> 칼럼에서 “한때 인류에게 있었던 거룩하거나 성스러운 장소”가 지금은 사라졌다고 말한다. 교회나 법원 같은 데가 그런 곳이었는데, 지금은 “영혼을 사고파는 시장(교회)”이 되었거나 “진실을 덮는 기술의 경연장(법원)”이 되었다고 말한다. 또 신문은 비록 신성한 공간은 아니었어도 공정한 공간이라 여겨졌다고 한다. 이런 모든 곳이 지금은 온통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시장이 돼버렸다.

이런 사회에서 재벌과 금융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문과 방송은 여봐란듯이 번성한다. 이명박 정권 아래 그런 신문과 방송은 현 정권처럼 더욱 뻔뻔해지고 있다. 그들에 맞설 수 있는 균형력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비자발적으로 그들 편에 서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말이 될까? 지난해 작고한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말이 우리에게 더 적실한 것은 보수와 진보 사이에는 중도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뻔뻔함으로 가득한 몰상식과 상식 사이에 중도란 불가능하며, 혹 가능하다면 그 또한 몰상식과 한편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사회의 거울’이라 했다. 국민의 수준을 넘는 정부가 없다면 시민의 수준을 넘는 신문은 더더욱 없다. <르 디플로> 한국판은 그런 한국 시민의 증거물이 되어야 한다. 세르주 알리미가 밝혔듯이, 전세계에서 매달 27개 언어로 240만 부가량 나가는 <르 디플로>는 6200만 인구의 프랑스에서만 20만 부가량 소화된다. 진보적 학자와 대학생, 노동조합 간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독 월간지에 속한다. 3천 명 가까운 독자에게서 우리 돈으로 약 4억5천만 원의 기부금을 받은 것도 <르 디플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랑스 독자 수의 10% 정도를 기대하며 한국판 편집인으로 임했는데, 조금씩 늘던 독자 수가 최근 들어 정체를 보이고 있다. 나로선 <르 디플로> 한국판 편집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곳곳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정기구독 신청서를 내밀고 정기구독이 만료된 분들에게는 재구독을 간청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 또한 “기댈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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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 편집인  editor@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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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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