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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노란 집 - 정원 그리고 강강술래
[최양국의 문화톡톡] 노란 집 - 정원 그리고 강강술래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1.09.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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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9월. 국내 스마트폰 색상은 ‘보라색’ 전성시대다. 보라색은 라벤더(lavender)를 떠올리게 한다. 열정적이며 감성적인 빨강과 냉정하고 이성적인 파랑을 적절한 비율로 섞으면 보라색(purple) 계열의 색인 라벤더가 태어난다. 이는 태생적으로 열정과 냉정, 낮과 밤을 DNA로 갖는 조화의 색이며, 색의 좌우를 대표하는 빨강과 파랑이 적절히 혼합되는 임계점을 유지하게 하는 균형의 색이다. 여닫는 반복을 통해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이 '위드 코로나‘(With corona)로 열린다. 라벤더의 상징인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이를 대표하는 아담한 도시 아를(Arles)을 찾아 아침~낮~저녁의 달과 만난다.

 

노란 집 / 공동체는 / 한계로 / 퇴색하니

아를의 아침. 달은 눕고 집이 일어난다. 별이 빛나던 군청색(Ultramarine)도 아우르는 노란색으로 넘쳐난다. 노란 집이다. 이 노란 집은 아를에서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1890년)가 살던 집이며, 그의 꿈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중 하나인 <노란 집, 1888년 9월>의 실재 장소이다.

 

* 노란 집(The Yellow House, 1888년), V.W. van Gogh, Google
* 노란 집(The Yellow House, 1888년), V.W. van Gogh, Google

고흐는 모국인 네덜란드를 떠나 예술의 도시인 파리에서 화가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1년 6개월 동안 인상파 화가들과 주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화풍과 색채를 시도하며 활발히 활동한다. 하지만 사람들 기대에서 오는 주관적 자아에 대한 실망과 객관적 타아인 그들과의 관계 설정에 미숙했던 그에게 파리는 회색 겨울의 암울함으로 밀려온다. 결국 정신 및 육체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에서 음울한 파리를 떠나 1888년 2월에 남프랑스의 아를에 도착한다. 그해 5월, 아를의 경이로운 노란 햇빛 아래에서 그림을 그리며, 파리에서부터 시도한 화가 공동체의 실현을 위해 고흐는 아를의 라마르틴 2번가에 있는 이층집으로 이사하여 외관을 노란색으로 단장 하며 꿈을 현실화하고자 한다. 미술 칼럼니스트 박희숙(The Science Times 칼럼, 2009년 4월)에 의하면, 고흐는 “오늘 나는 이 건물의 오른 채에 세를 들었다. 방이 네 개 있는데 두 방에는 캐비닛이 갖추어져 있다. 볕이 잘 드는 집의 외부는 금방 만든 버터 빛 노랑으로 칠했고 창틀은 진한 녹색으로 칠했다. 집은 광장으로 나 있는데 거기에 플라타너스와 협죽도, 아카시아 등 초록의 나무들이 우거진 공원이 하나 있다. 집의 내부는 모두 흰색으로 칠했고 바닥엔 붉은 타일을 깔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이 있다. 이 집에서 나는 진실로 살 수 있고, 쉼 쉬고, 생각하고, 그릴 수 있다.”라고 노란 집을 묘사한다.

고흐가 오랫동안 생각했던 화가들의 공동체를 설립한다는 꿈을 구체화하고자 한 곳이 노란 집이다. 고흐는 가장 먼저, 파리에서 만난 고갱(Paul Gauguin, 1848년~1903년)에게 그 계획에 같이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고갱은 당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원시 자연과 가까이서 호흡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타히티로 가기 위한 재정적 여력 확보의 일시적 수단으로써 고흐의 노란 집에 동참하기로 한다. 하지만 고흐는 노란 집에서 고갱과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화가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 간다. 고흐는 화가 공동체 형성을 통해 각자가 그린 그림은 구성원 공동체 소유로 하고, 공동의 힘으로 그림을 판매하여 그 돈을 나누어 각자 생활을 유지하는 공동체를 가꾸고자 한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화가로서의 최소한의 생계유지와 각자가 추구하는 지속적 작품 활동을 보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현되지 못한다. 그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존중과 배려의 대상이었던 고갱과의 갈등에 따른 정신 및 육체적 쇠약에 따른 환각 증세의 악화에 있다. 화가의 열정 이외에 외모와 기질은 물론 추구하고자 하는 화풍에서도 이견을 보이며, 화가 공동체라는 문에 진입도 하기 전에 두 달여의 짧은 동거 기간은 파국으로 향한다. 또 다른 근본적인 이유로는 고흐가 추진한 화가 공동체의 다양성과 어울림의 부족을 들 수 있다. 아를의 경이로운 햇살과 함께 하는 노란색의 집은 화가 공동체를 지향하는 색상의 상징성을 나타내며, 일방향적인 단일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듯하다. 고갱을 포함한 다수 화가의 참여를 통한 가치의 공유를 위해서는 다양한 기질과 화풍을 아우르는 다양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고흐의 내성적이며 충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상적 낭만성과 같은 사조(후기인상주의) 내에도 너무나도 다른 개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공동체에 대한 화가의 참여를 원초적으로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원의 / 꽃밭 같은 / ’다양성‘의 / 수용력과

아를의 낮. 달은 떨어지고 꽃이 피어난다. 색과 빛의 삼원색이 개성을 자랑한다. 정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년~1918년)가 정원에서 그림을 그린다. <꽃이 있는 농장 정원 Farm Garden with Flowers, 1905년~1906년>이다.

 

* 꽃이 있는 농장 정원(Farm Garden with Flowers, 1905년~1906년), G.Klimt, Google
*꽃이 있는 농장 정원(Farm Garden with Flowers,1905년~1906년), G.Klimt, Google

김선현은 『그림의 힘』(2015년)에서 <꽃이 있는 농장 정원>은 “~꽃이 덩그러니 하나만 핀 게 아니라 종류별로 아주 많이 풍성하게 피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의 절대적인 부족을 느끼는 이들이 이 그림에서 황홀감을 느낍니다. 다양한 꽃이 가득한 것만으로도 좋지만, 이 그림은 특히 명도 대비가 큰 색들의 활용으로 우리에게 에너지를 줍니다. 명도는 색의 밝고 어두운 정도를 말하는데, 색 그 자체에서 보다 주변과 비교되었을 때 더 확실하게 느껴집니다. ~ 이 그림에는 자연 풀밭처럼 편안한 초록 바탕에 명도 대비가 큰 빨간색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여기에 태양 같은 활력을 주는 해바라기의 노랑, 깨끗하고 밝은 흰색도 불쑥불쑥 다가와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줍니다.” 라고 한다.

클림트는 형식 측면에서는 거리감이 덜 느껴지는 정사각형의 구도를 사용함으로써 직사각형의 구도에서 의도할 수 있는 공간감이나 입체감을 나타내지 않고 평면성을 강조하며, 마치 그림이 자연의 일부인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소재 측면에서는 정원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의 노란 꽃과 함께 붉은색, 보라색, 흰색 등 다양한 색으로 화면을 가득 채우며, 각각의 꽃들은 다른 꽃들과 상호 보완적 역할을 하며 집단적 나선형의 형태로 피어난다. 아울러 꽃잎과는 묘한 이질감으로 다가오는 풀밭 내음을 풍기는 듯한 노랑 및 녹색 계열의 색 점은 정원이라는 공간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또한, 사각의 구도 안은 현실 세계와 절묘하게 배합되는 환상세계로 빠져드는 느낌을 준다.

고흐의 <노란 집>이 노랑 위주의 단일 색을 통한 화가의 강렬한 열정을 담고 있다면, 클림트의 <꽃이 있는 농장 정원>은 농장 정원 속 여러 종류의 꽃과 풀잎 세계의 모습 그대로를 부각하며 다른 꽃들과 뒤섞일 수 있도록 함으로써, 다양성의 역학적 구도하에 더욱 풍성하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자연의 유기체적 순환 논리를 나타낸다.

이제 다양성의 측면에서, 클림트의 <꽃이 있는 농장 정원>과 고흐의 <노란 집> 그림이 주는 상징성을 비교해 보자. 고흐의 노란 집이 고갱, 세잔(Paul Cézanne, 1839년~1906년) 및 쇠라(Georges Seurat, 1859년~1891년) 등과 같이 동일 사조이지만 하나의 다른 사조라 할 만큼 개성 강한 화가들과, 클림트와 같은 동시대의 다른 사조나 개성도 아우르면서 다양성을 수용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추진하지 못한 것은, 화가 공동체 거점화를 위한 근본적 한계를 보여 주는 전형으로 남는다.

 

한가위 / 강강술래의 / ’어울림‘도 / 필요해

아를의 저녁. 달은 일어나고 원무와 함께한다. 온갖 색과 빛들의 놀이터다. 강강술래다. 강강술래는 한국의 서남 해안 일대에서 주로 한가위 때 여성들 중심으로 각종 원무(圓舞)를 그리면서 춤, 노래, 놀이가 병행되는 민속놀이이다.

 

* 강강술래, 국립국악원 무용단, Google
* 강강술래, 국립국악원 무용단, Google

『한국민속대백과사전』(2021년)에 의하면, “강강술래는 전승 지역으로 보면 호남 일원이요, 연행 시기로 보면 음력 8월 한가위가 일반적이며, 연행 주체는 주로 마을의 여자들이다. 호남 일원에서 줄다리기가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해지는 것에 반해 강강술래는 한가위의 대표적인 놀이인 셈이다. 때로는 정월대보름에 강강술래를 하기도 하지만, 한가위만큼은 아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남자들이 참여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라고 하며, 이의 주요 특성으로써 자연적 측면인 추수, 생성력 및 밤, 인간적 측면인 모성애, 윤무 및 집단 등을 든다.

자연적 측면으로써 첫째, 한가위의 세시적 의미는 추수(특히 풍년)에 대한 감사이다. 정월대보름이 농경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한가위는 수확의 시작에 해당한다. 농사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에 농경과 밀접한 놀이로 줄다리기를 한 것과 대칭선상에서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는 강강술래를 한다. 대보름에 하는 줄다리기가 기풍(祈豊)을 목적으로 한다면, 한가위에 하는 강강술래는 기풍의 실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둘째, 달은 생성력을 상징하는 구상물이며, 신화 원형의 핵심이다. 더구나 보름달은 가장 왕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특히 태음력을 농사력으로 사용해온 우리 민족은 농사와 관련된 명절로 보름을 중시한다. 셋째, 밤은 낮과 구별되는 시간대이다. 낮이 세속적인 시간대라면 밤은 성스러운 시간대요, 낮이 남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여성의 시간이기도 하다. 또한 낮이 인간의 시간이라면 밤은 신들의 시간이다. 보름달이 훤히 밝은 가을밤,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강강술래 소리가 맑고 곱다. 밤은 추(醜)를 감추고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신들이 나와 활동하고 세속보다는 성스럽고 신비감 넘치는 밤무대에서 추는 강강술래는 여성적 아름다움을 극치로 몰고 가는 한편 금빛 달을 닮아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저 들녘의 나락을 한껏 영글게 할 수 있는 주문과도 같다.

이어서 인간적 측면으로써 첫째, 부녀자로서의 모성애적 기능을 가진다. 부녀자의 모성애적 세대 전승 관계는 특히 농경 민족에게는 절대적이다. 농경문화의 종교 주술적 믿음 체계 속에서 여성은 모성애적 본능을 가진 존재로 우대된다. 출생과 농경의 생산성이 유관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듯하다. 둘째, 윤무(輪舞)는 원형을 그리며 춤추는 것으로, 달의 원형적 신화를 모방한 주술적 성격을 가진다. 알곡은 크고 둥글수록 알찬 것이며 풍요 다산으로 이어진다. 한가위와 알곡 그리고 풍요 다산을 이어주는 기하학적 원리는 원형이다. 알곡과 같은 구체물이든, 한가위의 밤하늘에 뜬 둥근 보름달이든, 소망을 담은 풍요 다산이든 모두 둥근 원으로 관통된다. 셋째, 집단은 개별자의 집합이지만, 전체가 하나이기도 하다. 마치 구슬이 하나하나 따로 있지만 꿰어놓으면 하나의 목걸이인 것과 같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보듯 ‘구지가(龜旨歌)’나 ‘해가사(海歌詞)’를 부르는 상황은 많은 사람, 곧 집단이 한목소리로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노래하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은 신을 감동하게도 하지만 위압할 수도 있다.

서양 미술사에도 원무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년~1640년) <춤추는 농부들>, 드가(Edgar Degas, 1834년~1917년) <무대 위의 무희>,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년~1901년) <물랭루주에서의 춤>, 뭉크(Edvard Munch, 1863년~1944년) <생명의 춤>, 놀데(Emil Nolde, 1867년~1956년) <황금 송아지를 둘러싼 춤>. 마티스(Henri Émile-Benoit Matisse, 1869년~1954년) <춤Ⅱ>.

 

* 춤Ⅱ(DanceⅡ, 1909년~1910년), H.Matisse, Google
* 춤Ⅱ(DanceⅡ, 1909년~1910년), H.Matisse, Google

고대를 거쳐 바로크~인상주의~야수파 등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각각의 시공간적 상징성을 나타내는 원무를 그린다. 원무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며 인간 삶의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위도와 경도의 교차점에 따라 원무의 강강술래화 정도와 성격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북위 43도의 아를이나 북위 37도의 카불(Kabul)~베이징~서울~도쿄~뉴욕 등의 추수에 대한 감사의 대상은, 시공간 따른 선택적 종교와 함께 자연과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 인간 그리고 민족과 국가 간 협력과 배신의 줄다리기 게임이 변곡점을 거듭하며 상승 곡선을 그린다. 다가오는 한가윗날에는 강강술래의 개념적 확장을 하고 싶다. 북위와 남위의 그 어떤 위도를 떠나 ‘나’와 ‘너’, 그리고 자연을 위한 술래가 되어 상호 어울림의 원무놀이를 하며, 현대적 화가 공동체가 추구하는 건강한 조화와 균형의 과실을 나누고 싶다. 매일 뉴스의 데이터로 축적되며 빅데이터화 되어 가는 백신 접종, 부동산 그리고 정치와 경제 게임. 공공재와 민간재에 대한 분별력을 갖춘, 지혜로운 수요자와 공급자의 어울림이 울림이 되는 시공간을 그려 본다.

 

“잘잘못에 대한 생각을

넘어선 저 멀리에

들판이 있다.

나, 그대를 그곳에서 만나리.”

-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 -

 

그리고 달은 울림과 함께, 눕고 떨어지며 일어난다.

 

 

글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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