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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단테적 지옥도 : <잘리카투>와 <화이트 타이거>의 계급의식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단테적 지옥도 : <잘리카투>와 <화이트 타이거>의 계급의식
  • 이현재(영화평론가)
  • 승인 2021.09.14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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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리카투와 화이트 타이거

굴절과 균열, 한국영화시장의 뉴웨이브 인도영화 수용 과정

한국에서 뉴웨이브 인도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의 일이다. 전사를 조금 살펴보면, 한국에서의 인도영화 수용은 약간의 굴절 과정을 거쳤다. 대니 보일의 <슬럼독 밀리어네어>(2008)가 평단과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전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계기로 인도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확대 되었는데, 한국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아미르 칸이 출연했던 <세 얼간이>(2009)는 발리우드 장르팬들이 극장으로 넘어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블랙>(2009)이 다양성 영화시장에서 흥행하며 한국영화시장에 유의미한 성과를 남겼다. 이후 샤룩 칸이 출연했던 <내 이름은 칸>(2010)과 <로봇>(2010) 등이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키며 인도영화는 한국시장에서 일정한 궤적에 오른다. 다만 이후 수입되는 대부분의 인도영화는 구루 두트가 이끌었던 50년대 힌디 시네마 황금기 양식을 이어받은, 발리우드 장르성이 강한 영화들이 곧 인도영화처럼 받아드려졌다.

뮤지컬 양식이 드라마와 강하게 결합된 장르가 곧 인도영화처럼 여겨지던 흐름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2년 이후였다.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부문에 아누락 카시압의 <와시푸르의 갱들>(2012)이 미드나잇 패션 최초 단독 상영작으로 소개되며 영화관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와시푸르의 갱들>은 ‘칸 조직(Khan Clan)’과 ‘싱 조직(Singh Clan)’ 간에 벌어진 갈등과 복수를 2대에 걸친 서사시로 풀어낸 영화다. 여전히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쓰이지만, 철저히 외화면 요소로 쓰이며 뮤지컬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는 점. 캐릭터 간 선악 구조를 파악하기 힘들고 권선징악의 모티프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극의 강력한 동력이 사회적 리얼리티에 가깝다는 점 등은 한국시장에 수입된 기존 인도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요소들은 기존에 소개되었던 인도영화들과 차이점을 보이는 요소들이었다.

 

<와시푸르의 갱들>과 <시크릿 슈퍼스타>

인도영화의 분열과 확장된 뉴웨이브 인도영화

평단은 여기에 ‘뉴웨이브 인도영화’[1]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후 ‘뉴웨이브 인도영화’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꾸준히 소개되며 한국영화시장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찾아가기 했다. 이후 <런치박스>(2013) 등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유의미한 성과가 그 흐름을 일정부분 유지시키기는 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비어있는 자리는 <당갈>(2016)과 <시크릿 슈퍼스타>(2017) 등 발리우드 장르성 영화가 채워나갔다. 발리우드 장르 영화의 일정한 반향은 인도영화에 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시켰다.

다만 장르적 보편성을 벗어난 시도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인상이다. 올해 여름에 개봉한 <잘리카투>(2019) 또한 흥미로운 요소들과 한국에서 유의미하게 기능할 수 있는 논의점이 많은 영화였음에도 한순간 스쳐지나간 인상이 없지 않다. 올해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화이트 타이거>(2021) 또한 아시아 영화를 두고 유의미한 담론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영화임에도 비평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인상이 강하다. 엄밀히 따지면 <잘리카투>는 인도 남부 케랄라 및 타밀 지역에서 만들어진 ‘몰리우드’ 영화에 가깝다. 발리우드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동안 소개될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잘리카투>를 뉴웨이브 인도영화로 볼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외적요인으로는 한국시장으로 유입되 극장이라는 메이저 시장까지 도달한 몰리우드 영화로서, 극장에서 개봉이라는 방식으로 몰리우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는 시장에서 인도영화에 대한 다양한 수용이 이루어지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적요소로는 발리우드를 벗어난 인도영화임에도 도전적인 공간 활용과 뛰어난 자본운용을 짐작케하는 롱테이크 시퀀스들을 지적할 수 있다. 더불어 <잘리카투>의 롱테이크는 단순한 영상적 쾌감을 넘어 클라이맥스까지 차곡차곡 도달하는 양식미를 통해 작가적 역량을 과시할 영역들을 다수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화이트 타이거>의 경우 발리우드 영화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발리우드 장르팬들이 반응하는 통속성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외적 요소로는 감독이 라민 바흐러니 감독을 들 수 있다. 라민 바흐러니는 뉴욕 콜롬비아 대학에서 영화학을 수학하고,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해외파’ 감독이었다. 2005년 뉴욕 이민자 홈리스를 그린 <카트 끄는 남자>로 주목받기 시작해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쓰나미를 다룬 <라스트홈>(2014), HBO 오리지널 <화씨 451>로 대중과 평단의 인정을 받아왔다. 발리우드 또한 기존의 통속성을 탈피하려는 시도들로써 해외에서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도들과 모종의 필요가 뉴웨이브 인도영화를 꾸준히 소환하고 있다고 유추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들을 확장된 뉴웨이브 인도영화로 평가해야 할지는, 뉴웨이브 인도영화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한 논의다. 무엇보다 한국시장에서 아직까지 포괄적 수용이 이루어지기에는 복잡한 부분들이 산적해 있다. 이를테면 타밀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탈리우드’와 앞서 언급한 ‘말리우드’, 그리고 ‘발리우드’에 공통분모가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또한 헐리우드 시스템과 발리우드 시스템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완전히 합의되지 않은 상태는 인도영화를 둘러싼 논의 자체가 정확히 정리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논의가 가치있는 이유는 뉴웨이브 인도영화가 가진 시의성 때문이다. 특히 ‘뉴웨이브 인도영화’가 공통적으로 다뤄온, 그리고 다루고 있는 계급의식에 관한 주제들은 한국사회와 영화계에도 유의미해 보인다.

 

<잘리카투> 스틸컷

파국 혹은 범죄, 영웅과 구원이 불가능한 세계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수용에 대한 보다 비평적이며, 동시에 본질적인 차원의 논의는 영화 형식과 외적 요소보다는 텍스트적 특성에 있다. <당갈>과 <시크릿 슈퍼스타> 등의 발리우드 장르성 영화가 카스트제를 비롯한 인도 특유의 계급의식을 다루는 방식과 <잘리카투>와 <화이트 타이거>가 계급의식을 다루는 방식에는 차이점이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캐릭터적 요소로, <당갈>과 <시크릿 슈퍼스타>의 주인공은 고난과 방황의 시기를 거쳐 자신의 역량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영웅적 캐릭터다. 이들은 자신 앞에 주어진 고난을 충실히 이행하거나 해결하며, 이에 대한 부가적인 보상으로 계급 상승의 결과를 얻는다.

<잘리카투>와 <화이트 타이거>의 인물들은 고난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방향이 사뭇 다르다. 이들의 최종적인 목적은 계급 상승이다. 즉, 뉴웨이브 인도영화에는 영웅이라고 할만한 존재가 없다. <잘리카투>의 주인공이 소유욕에 대한 본성적 욕망을 충실히 실행하여 파국에 이른다면, <화이트 타이거>는 극중 대사처럼 주인공에게 삶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와 정치”다. 화이트 타이거의 주인공 서사는 계급상승의 욕망을 실현하는 반영웅의 성장담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들이 마냥 악당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계급 상승을 원하는 이유는, 계급만이 삶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계급 상승의 목적 외의 객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즉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시선이 그리는 세계는 파국과 범죄가 삶의 동력이다.

뉴웨이브 인도영화가 그리는 세계는 동화적이면서도 사뭇 신화적이다. <잘리카투>에는 소유와 관련된 코미디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자연 앞에 순응해야 한다면서도 소유의 문제에 유달리 민감하게 반응한다. <잘리카투>의 인물들은 자연 앞에 인간은 나약하며 약자에게 자비를 베풀 의무가 있다고 웅변한다. 실제로 그들은 약자에게 관대하다. 그러나 본인과 비슷하거나 강한 이들의 사정은 용인하지 않는다. 즉, 자비는 철저히 계급적 논리다. 따라서 계급체계가 무너진다면 이들은 질서와 논리를 지킬 의무가 전혀 없다. 그리고 <잘리카투>는 계급체계가 완벽히 무너진 아비규환의 아노미 상태로 빠져든다. <잘리카투>의 관점에서 자비란, 딱 그만큼의 취약성을 지닌 논리인 것이다.

반면 <화이트 타이거>에는 돌연변이와 관련된 메타포가 자주 등장한다. 출생부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그들은 만인이 합의한 체계를 거침없이 뒤흔든다. 그들의 사고와 방식은 체계 위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종종 체계와 규약을 이탈한다. 이는 그들이 삶을 영위하는 조건이 인과가 아닌 우연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지목하곤 한다. 그들은 태생부터 우발적으로 태어나, 합의와 규약을 배반하는 방식 속에서 운 좋게 결과값을 획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선택받은 인간으로 그려진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 <화이트 타이거>가 헐리우드 장르성을 이식받은 인도영화임에도, 뉴웨이브로 분류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헐리우드와 발리우드가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운 단독자로서 영웅을 주요한 캐릭터 서사로 내놓는다면, 뉴웨이브 인도영화는 단독자로 존재하는 영웅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한다.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캐릭터들은 영웅보다는 안내자 혹은 전수자에 가깝다. 이러한 차이는 영화 내에서 작동하는 관점과 주제의식의 차이로 이어진다. 발리우드 장르성 영화가 환경을 개인이 극복하는 쾌감을 제공한다면, 뉴웨이브 인도영화에서 캐릭터는 그 인간 군상을 보여주기 위한 렌즈 혹은 혼란한 세상을 안내하는 카트에 가깝다. 그들은 파국과 범죄로 운영되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으며, 어떻게 욕망을 해결하고 생존할 수 있는지 설파한다.

 

<화이트 타이거> 스틸컷

뉴웨이브 인도영화, ‘단테적 지옥’의 인류학

뉴웨이브 인도영화의 주인공들에게 세계는 해결할 수 없으며 섣불리 대응할 수 없는 자연에 가깝다. 유일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다가오는 고난을 수용하고, 그것을 참아내는 것 뿐이다. 물론 인내가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들이 벌이는 파국과 범죄는 대단히 숙명적인 행위가 된다. 이러한 단테적 지옥이야말로 뉴웨이브 인도영화가 그리는 세계의 중핵일 것이다. <잘리카투>의 주인공 ‘안소니’(안소니 베르게스)가 거대한 욕망 덩어리로 인한 혼란의 세계를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화이트 타이거>의 주인공 ‘바르만’은 자본주의와 카스트가 결합된 지옥을 체험하고 온 단테에 가깝다.

이러한 숙명론적인 지옥도는 뉴웨이브 인도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중요한 세계관 중 하나다. 그들은 “판타지로 가득한 발리우드 영화는 인도의 현실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차이밍량의 비판[2]에 대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실을 바꾸기보다는 현실이 어떻게 지옥이 되었는지 탐구하는 쪽에 가깝다. 약자라고 쉬이 옹호하지 않으며, 악하다고 응징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을 환유라는 드라마의 기능을 이용해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의 현장 안으로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려는 이들이다. 이들은 재현과 가공의 줄다리기 속에서 지금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의 조건이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저널리스트이자 인류학자들에 가깝다.

 

 

글·이현재
영화평론가. 2020년 동아일보 영화평론부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경희대 문화콘텐츠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2018) 등의 다양한 연구를 보조・수행했다. 평론으로는 「보이(지 않)는 폭력」(2020, 창비), 「<미나리 – 잡초 우거진 황무지의 낭만, 그 심산하고 이상한 풍광>」(202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등이 있다.


[1] 김지석, 「[김지석의 시네마나우] 인도의 새로운 미학적 흐름」, 『씨네21』, 2011.09.02.
[2] <KBS스페셜 : 나이나와 싱카르의 시네마천국>(200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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