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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그림책 『꽃할머니』와 『용맹호』 마주하기
[김시아의 문화톡톡] 그림책 『꽃할머니』와 『용맹호』 마주하기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1.11.01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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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모두 없애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것, 전쟁에는 온갖 폭력과 잔인함, 묵인과 공조가 따라붙는다. 그리고 그 결과는 참전 군인의 몸에 그대로 남는다. 적을 죽이는 순간부터 시간이 지나면서 적은 마음속에 되살아난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살생보다 생명에 가치를 두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 그 간극에서 참전 군인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한국 정부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한국군 32만여 명(연도별 누적 인원)을 베트남에 파병하였다. 전쟁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은 누군가의 가족으로, 누군가의 동료로 살았다. [...]” 

 

위의 글은 권윤덕 작가의 그림책 『용맹호』(사계절, 2021) 이야기 뒤에 있는 ‘작가의 말’이다. 『용맹호』를 그려야 2010년에 출간된 그림책 『꽃할머니』가 완성된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하여 11년 만에 완성한 그림책이라고 한다. 그사이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그림책 『나무 도장』(2016), 광주 5.18을 다룬 그림책 『씩스틴』(2019)과 더불어 열권의 그림책 작업을 이야기한 에세이집 『나의 작은 화판』(2020)을 출간하며 끊임없이 작업했다. 피해국의 입장을 그린 『꽃할머니』와는 달리 가해국의 입장이 되어 그리는 『용맹호』는 그림책으로 만들기에 더욱더 힘든 일이었지만 그는 마침내 완성했다. 얼마 전 줌으로 열린 북토크에서 피해자인 베트남 여성들을 그리는 일은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일’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전쟁의 직접적인 가해자도 아닌데 왜 작가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작업을 할까?

『꽃할머니』는, 권윤덕 작가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피해를 당하신 할머니들과 전쟁으로 고통받고 희생된 모든 여성들에게” 헌정한 그림책이다. “1940년 열세 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앞의 두 인용문은 『꽃할머니』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실화인 이야기를 감싸고 있다. 『나의 작은 화판』을 읽어보면 작가가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라고 한다. 큰 충격 속에서 “그분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2007년 시작되었던 <한·중·일 평화 그림책 프로젝트>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택했다고 한다.

 

Ⓒ 권윤덕
Ⓒ 권윤덕

『꽃할머니』는 피해자 할머니가 주인공이지만, 『용맹호』는 호랑이가 주인공이다. 의인화된 호랑이 용맹호 씨는 현재 정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그러나 과거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군인이다. 그림책의 공간적 배경은 대한민국과 베트남을 오간다. 아니, 과거와 현재 이미지가 중첩되고, 두 나라의 풍경은 그림책 안에서 몽타주 방식으로 섞이고 겹치며 다층적 시공간을 만든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야기와 대조적으로 베트남 풍경은 아름답고 동양화 물감으로 그린 색감은 맑다. 민화 호랑이를 닮은 용맹호 씨는 때론 표정이 우스꽝스럽다. TV 리모컨을 들고 있는 모습은 귀엽고, 아버지와 남편을 닮은 모습처럼 친근하다. 때론 의젓하지만 때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귀와 가슴이 세 개가 될 때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눈이 세 개가 될 때의 무서운 표정, 눈물을 흘릴 때의 슬픈 모습, 돌부리에 넘어지고, “밤새 분홍 살점이 덕지덕지 달라붙고”, 발목 옆에 발이 하나 더 자라 넘어지고 쓰러지면 안쓰럽다.

 

Ⓒ 권윤덕
Ⓒ 권윤덕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용맹호 씨 귀엔 계속 중대장의 목소리가 들린다. “야! 왜 귀찮게 모아놨어. 확실히 처리해.” 과거엔 전쟁의 영웅이었지만 현재 그는 아파서 쓰러진다.

용맹호씨의 이불은 파란 꽃이불이다. 파란 꽃이불은 『꽃할머니』 속 파란 꽃과 이어져 있다. 파란 꽃은 ‘피’를 상징한다. 붉은 피가 아니라 파란 피다. 파랗게 질린 두려움과 공포다. 권윤덕 작가의 파란색은 종종 죽음을 상징한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나무 도장』에서도 희생자를 그릴 때 파란 선으로 표현한 것에서 볼 수 있다. 학살의 현장에서 파랗게 질린 희생자는 파란 바다에 둘러싸여 파란 한라산을 바라보며 사는 제주도 도민이다.

독일 나치 정부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대인에게 명령하여 강제로 같은 동포인 유대인을 죽이게 하였다. 제주 4.3 사건도 군인과 경찰에게 명령하여 같은 동포인 제주 도민을 죽이게 한 비극이다. 또한 6.25 전쟁이 일어나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 민족끼리 싸우고, 서로 적으로 규정하며 군사분계선을 만들어 분단이 고착화된 가운데 남쪽과 북쪽에 사는 같은 민족이 서로를 끊임없이 적대시한다. 국가 명령에 의해 사람을 죽인 군인들, 다친 상이군인들 모두, 개인에게 떼어낼 수 없는 기억으로 전쟁 트라우마가 붙어있다. 전쟁의 영웅으로 잠깐 칭송받지만, 전쟁은 살인을 정당화하지만, 군인이었던 사람들도 피해자이며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가족과 (먼) 친척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나 볼 수 있다. 나의 작은아버지도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던 분이라 가족까지 얼마나 고통받고 사는지 『용맹호』를 만나기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고엽제 피해자인 작은 아버지는 음악을 좋아하며 뭐든지 만들기를 좋아하는 ‘맥가이버’ 같은 분이다. 어린 시절, 사촌 동생들을 부러워했을 정도로 작은아버지는 아주 자상한 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드실수록 가족에게 언어폭력으로 수많은 상처를 내셨다. 용맹호처럼 눈이 우락부락하고 미남형인 작은 아버지는 나이를 드실수록 마음도 몸도 아프다.

『용맹호』를 그리며 작가는 ‘어떻게 하면 초록색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아픈 이야기를 그리며 고통받은 사람들이 모두 치유 받기를 원했던 작가의 소망이 닿았는지 나도 그의 그림책을 살 수 있었다. 아무리 요즘 <오징어 게임>이 재밌다고 전 세계적 열풍이라고 떠들어도 나는 보다가 볼 수 없었다. 잔인한 장면과 시각의 폭력성 때문이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도 보고 듣기에 힘든 이야기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역사를 마주한다. 다행히 권윤덕 작가의 색채는 자연의 풍경과 함께 고통과 트라우마를 보듬는다.

작가는 줌토크에서 심아정의 글을 인용하며 ‘가해자성’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기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는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가 놓인 구조를 의심하고 되물어야 한다고 한다. 가해자성을 인정하는 것이 자기 자신을, 우리가 사는 세계를 새롭게 만나는 일이며 당연시되는 폭력을 멈추는 일이라고 한다.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한국 군인들이 저지른 학살과 만행은 일본군이 한국인들에게 가했던 고통과 겹쳐진다. 느닷없이 당해서 놀란 여인들과 아무것도 어떤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 그 선한 사람들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아직 베트남에 간 적은 없지만,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며 우리나라 학생뿐만 아니라 베트남 학생들을 정기적으로 본다. 덕분에 베트남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우리나라 「콩쥐 팥쥐」 이야기와 유사한 「땀과 깜」 이야기도 있고 학생들에게 베트남 문화를 물어보면 왠지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과 일본보다도 문화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

제주에 가면 사람들이 제주 4.3을 그려달라 했고, 광주에 가면 광주 5.18 이야기를 해달라 했고, 또 여수에 가면 여수·순천 사건을 이야기 해달라 하고, 아이들은 세월호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는 작가의 말이 계속 울린다.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타인의 고통에 마주하며 울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작가는 타인의 고통을 몸으로 통과해야 하니 작업을 하는 동안 자주 몸이 아프다. 마른 체구가 더 깡마른 몸이 되었으니 그를 보는 독자도 마음이 아프다. 세월호 이야기를 빨리 해달라고 조를 수도 없다. 작가가 몸을 추스를 때까지 독자는 기다려야 한다. 죄없이 죽어간 모든 사람을 애도하며 상처 난 기억이 몸에 새겨진 사람들을 보듬으며 기다려야 한다. 용기를 내어 조만간 작은아버지를 만나야겠다. 『용맹호』를 전해야겠다.

 

 

글. 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평론가.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 장르를 가르치고, 역사를 그리는 그림책을 좋아한다. 옮긴 책으로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등이 있다.


[참고 자료]

『용맹호』 출간 권윤덕 작가 라이브 북토크 (사계절 출판사, 2020. 10.20)

권윤덕, 『나의 작은 화판』, 돌베개, 2020.

심아정, 「우리가 만난 참전군이 – 참전군인A와 ‘함께 말한다’는 것」, 『베트남전쟁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 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자료집』, 2018년, 61-62쪽. (권윤덕 인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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