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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가 멘토라는 한국의 소리 녹음꾼
김정호가 멘토라는 한국의 소리 녹음꾼
  • 안치용, 이연진 기자
  • 승인 2021.11.06 13: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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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ESG시민혁명] 탕카의 이석민 실장

 

"제 인생의 멘토와 같은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처럼 대한민국 소리지도인 '대동음향지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출입이 제한된 습지가 많고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이 금지된 기간이 길어 작업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상황입니다. 관계기관의 도움으로 좀 더 자유롭게 더 많은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촬영하고 녹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생활ESG행동 사무실에서 만난 음향감독 이석민 탕카 실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 실장은 국립공원, 도립공원, 유네스코 문화유산, 람사르 습지(람사르협회가 지정하고 등록해 보호하는 습지)를 대상으로 360도 영상과 현장의 자연음을 공간 음향으로 녹음해서 실감 콘텐츠를 제작한다. 

속리산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 이석민 실장의 모습 ⓒ이석민
속리산에서 녹음을 하고 있는 이석민 실장의 모습 ⓒ이석민

 

탕카의 실감 콘텐츠

 

- 탕카에서 실감 콘텐츠를 만든다고 했는데 실감 콘텐츠는 무엇인가.
"탕카에서 제작 중인 실감 콘텐츠란 360도 VR(가상현실) 영상을 촬영하고 현장의 자연음을 공간 음향(Spatial Audio)으로 녹음하여 영상에 입힌 콘텐츠를 의미한다. 현재 탕카에서는 산 정상, 계곡, 일출, 일몰 등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유네스코가 지정한 산사와 같은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360도 영상 콘텐츠는 900편 정도, 사운드는 스테레오와 공간 음향을 합쳐 약 4000 파일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의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널리 알리는 것이 탕카의 목표이다. 360도로 전 방향을 촬영하고 녹음하기 때문에 콘텐츠 이용자가 그 장소에 실제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더 자세히 설명하면.
"소리를 녹음할 때는 공간 음향 방식으로 녹음하고 이후에 녹음실에서 앰비소닉이나 돌비 애트모스 방식으로 믹싱한다.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란 음향 회사로 유명한 돌비(Dolby)사의 공간 음향 방식이다. 이 방식은 소리가 평면이 아닌 현실에서 듣는 것같이 상하좌우 전 방향에서 들려와 자연스러운 공간감과 입체감을 느끼게 해 준다. 이러한 특징은 마치 청취자가 그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강화해준다."

- 굉장히 전문적인 장비들이 필요할 것 같다.
"360도 영상 촬영은 액션캠을 여러 개 붙인 카메라 혹은 중국에서 만든 어안렌즈(사각이 180°를 넘는 초광각 렌즈)가 여러 개 달린 카메라를 사용한다. 녹음기는 영화 촬영 등에 사용되는 휴대용 멀티채널 녹음기를 사용하고 있고 마이크는 공간 음향 녹음용 VR 마이크를 사용한다."

- 이 장비들을 모두 지고 산에 올라가나.
"그렇다. 이러한 장비들과 산에 올라갈 때 필요한 식량, 여분의 옷과 삼각대 같은 짐을 포함하면 약 20kg 정도의 무게다. 하루 종일 지고 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다."

-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곳에 다녀왔는지 궁금하다.
"작업하러 나간 횟수는 현재까지 200여 회 정도 된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여 방문 횟수가 10회 이상 된다. 한 번 작업을 나가면 3~4일 일한다. 1년 중에 작업하기 좋은 기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아름다운 산새 소리와 신록은 4월 중순 이후가 적당하고 단풍은 10월 중순 이후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보통 4~7월, 9~11월 정도에 집중적으로 작업을 나간다.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은 몇 군데를 제외하면 여러 차례 다녀왔고 람사르 습지도 그러하나 방문 허가 등의 이유로 아직 작업하지 못한 곳도 많이 남아있다."
   
한국의 소리 찾기
 

 

이석민 실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생활ESG행동
이석민 실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생활ESG행동

 

- 영화 쪽에서 음향 일을 한 것으로 들었다.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음향을 전문적으로 배우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 녹음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1998년 호주에 있는 음향 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향 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국내에 음향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 없어서 외국으로 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 유학 전에는 1993년 초 삼성물산에 입사하여 구리 원자재를 거래하는 분야에서 5년 반 정도 일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악기를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녹음으로 승화했다고 할까."

-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며 망설이지 않았나.
"어느 날 더 늦어지면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표를 냈다."

- 영화 쪽에서 어떤 작업을 했나.
"영화의 오디오 후반 작업(Audio Post-Production)을 하는 사운드 디자이너로 녹음 일을 시작했다. 영화 <쉬리>, <유령>, <주유소 습격사건>, <역전에 산다> 등 여러 작품에 사운드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한국 장편 영화 10편 이상에 참여했고 2000년 녹음실을 열어 영화 오디오 후반 작업을 계속했다."

- 오디오 후반 작업은 무엇인가.
"애니메이션을 연상하면 된다. 사람들은 영화를 만들 때 촬영과 함께 모든 소리가 자동으로 녹음된다고 생각하나 그런 사례는 거의 없고, 촬영이 끝난 뒤에 녹음실에서 대사, 움직임 그리고 그 장소에서 날 만한 소리를 녹음해서 영상에 입히는 작업을 한다. 그런 작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영화 일을 하다가 어떤 계기로 한국의 환경을 기록하게 되었나.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외국에서 제작된 음향 효과 라이브러리를 녹음실마다 갖추고 사용했다. 그런데 외국에서 녹음된 소리들이 한국에서 촬영된 영상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영화의 배경은 서울인데 소리는 미국 LA를 녹음한 것을 사용했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기지만, 당시에는 촬영 후 오디오 팀이 현장에 나가 녹음해서 영화 후반 작업에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2010년에 한국의 사운드 라이브러리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때부터 쭉 녹음을 해오고 있다."

- 무거운 장비를 이고 새벽에 산을 오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몸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는 분도 많으니까. 녹음 기술자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고, 새벽에 헤드 랜턴에 의지해 홀로 산을 오르며 산을 온전히 혼자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묘한 만족감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가장 힘든 부분은 관심을 가질 만한 관계기관들의 무관심을 마주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새에 대해서 연구를 할 때 새의 울음소리도 함께 연구해야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자연과 문화유산을 기록할 때는 소리까지 충실히 기록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현실은 그러한 관심과 노력이 부족한 듯 보인다."

- 수익이 있나.
"소리를 팔아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은 마치 대동강 물을 판다는 말처럼 들릴 것이다. 하지만 현재 네이버 소리 전용 서비스인 오디오 클립에 자연의 소리를 제공하고 있고 SK텔레콤 'NUGU' 인공지능 플랫폼에도 소리를 공급해오고 있다. 몇몇 플랫폼과 VR 영상과 공간 음향 공급을 논의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메타버스(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에 공간 음향은 필수요소이기에 전망이 밝다고 본다."

멸종 위기종 소리 녹음하는 것도 목표

▲  탕카의 SOUNDSCAPE OF KOREA 앨범 표지 ⓒ 이석민


- 최근에 이러한 소리로 음반을 냈다고 들었다.
"맞다. 'Soundscape of Korea'라는 제목의 음반을 발매했다. 속리산 문장대 바람을 시작으로 거제도 망치몽돌해변, 태안해안 두웅습지 귀뚜라미, 소백산 뻐꾸기, 속리산 세조길 산새들, 변산반도 개울, 부석사 새벽 종소리와 법고 그리고 월출산 도갑사 새벽 예불 등 9개의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반은 지난 10여 년 녹음 작업의 중간 결산이라는 의미가 있다. 돌비(Dolby)에서 청음 절차를 거쳐 돌비 애트모스 로고 사용을 허가해 주었으며 국내 최초 'Dolby Atmos' 앨범이라는 사실도 확인해 주었다. 현재는 네이버 바이브에 출시되어 있어 로그인 후 앨범 제목을 검색하면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조만간 스포티파이(Spotify), 아마존 뮤직(Amazon HD Music), 애플 뮤직(Apple Music)에 업로드될 예정이다"

- 아직도 기록하지 못한 곳이 많지 않나. 더 기록해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DMZ, 백두산, 개마고원 등 일반인이 가기 어려운 곳의 실감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국내 섬이나 오지를 360도 촬영과 공간 음향으로 더 기록하고 싶다. 잘 보존된 자연에서 기회가 된다면 멸종 위기종의 소리를 녹음하는 것도 목표이다.

360도 촬영 카메라를 업그레이드하고 팀원을 보강해서 좀 더 선명하고 고해상도의 사진과 영상을 제작하고 싶다. 해외에 아름다운 곳이 많겠지만 국내에 아직 기록되지 못한 자연과 문화유산이 많다. 모두가 직접 가보지 못하더라도 가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그런 실감 콘텐츠를 계속해서 제작해서 많은 사람과 공유했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  라운드테이블 참석자들이 행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생활ESG행동

 



안치용 ESG연구소장, 이연진 바람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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