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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3) - K드라마,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창간 13주년 연중기획 (3) - K드라마,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 김민정 l 중앙대 교수
  • 승인 2021.12.0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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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3주년 연중기획 3]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K-문화콘텐츠는 어디로?
총론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팝 : 임진모 음악평론가 
영화(애니메이션 포함) : 김중기 영화평론가, 영화공간 ‘필름통’ 대표
드라마 : 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웹콘텐츠(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등) : 
신정아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기획위원장, 방송작가 
문학 : 유성호 한양대학교 교수, 문학평론가, 월간 ‘쿨투라’ 편집주간 
출판 :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출판위원장 
게임 : 남기덕 동양대학교 게임학부 교수 
미술 : 김원숙 미학박사, 예술 비평가 
연극 : 이은경 연극평론가 
무용 : 정옥희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무용 연구자 
뮤지컬 : 최여정 문화평론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포스트코로나 콘텐츠기획단 팀장 
전통공연예술 : 한덕택 서울남산국악당 상임 예술위원 
클래식 : 전찬일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회장, 영화평론가  
오페라 : 이소영 솔오페라단 단장 
제언 – 임대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인재학부 교수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어느 레스토랑의 장식물 , 2021 - 성일권

코로나는 한국에서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 분명하다. 코로나와 한국드라마의 상관관계를 고려해보면 말이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인은 이득을 보는 쪽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암울한 미래 전망에 다들 깊은 탄식을 쏟아내는데, 한국은 혼자 ‘꽃길’을 걷고 있다. ‘K’란 이름을 단 많은 한국드라마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한국발 코로나’라는 음모론도 기분 좋게 감내할 만큼, 2021년 한국드라마는 세계드라마의 역사를 새로이 쓰고 있다.

위기는 기회였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의 가입자와 시청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한국드라마는 초국적 콘텐츠플랫폼을 타고 아시아 대륙을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글로벌 OTT는 ‘K-드라마’를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만드는 한국의 ‘디지털 실크로드’가 됐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빈부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계급 단절과 계층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직면한 절망적인 현실이 바로 한국드라마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K-드라마의 5가지 공식 

<오징어 게임>, <빈센조>, <킹덤>, <이태원 클라쓰>, <D.P.>…

글로벌 신한류를 이끄는 ‘K-드라마’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5가지 공식이 있다. 첫째, 세계는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를 토대로 형성된다. 둘째, 그 세계는 영원불변의 시스템이다. 셋째, 갑은 부정부패의 온상이자 악의 축으로서 사이코패스이거나 소시오패스다. 넷째, 을은 동정과 연민을 자아내는 슬프고 굴곡진 사연을 가진 사회적 소수자다. 

이렇듯 K-드라마는 암울한 현실인식을 토대로 갑과 을의 위계서열이 중심축을 이루는 지극히 한국적인 세계관을 구축한다. 그리고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이라는 전 세계인의 공통된 이슈를 통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이때 드라마와 실제 현실이 갈라지는 지점이 있으니, 바로 다섯 번째 공식이다. 

드라마 주인공은 반드시 을이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갑이 갑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을이 현실의 을로서 드라마의 갑이 된다. 이로써 K-드라마는 현실을 전복하는 상상력을 토대로 공감을 넘어 전폭적인 지지와 열띤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K-드라마’라는 하나의 독특한 장르가 탄생한다. 

 

‘K’란 무엇인가

<가을동화>, <천국의 계단>, <시크릿 가든>, <파리의 연인>… 

2000년대 초중반 한류를 이끌던 K-드라마 목록을 훑어보면 로맨스, 그중에서도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로맨스가 자주 다뤄졌다. 지극히 상투적이고 진부한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폄하되던 바로 그것. 하지만 등장인물의 성별을 지우면 새로운 의미가 발생한다. 부유한 (남자) 사람과 가난한 (여자) 사람이 만나, 서로에 대한 몰이해로 툭탁거리다가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랑의 연대를 형성한다. 성별이 지워진 자리에 보이는 계급은 한국식 로맨스가 단순히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전 세계에 ‘한국 갓’ 열풍을 몰고 온 <킹덤>도 서양 좀비와는 탄생 배경부터 다르다. 미국드라마 <워킹데드>에서 좀비는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의해 갑자기 발생해 폭발적으로 퍼져나간다. 하지만 한국식 좀비를 다룬 <킹덤>은 계급사회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인간이 좀비가 되는 과정을 담아냄으로써, 약육강식의 생태계가 사회 불평등, 사회 지도층의 탐욕과 부정부패가 결합했을 때의 문제를 보여준다.

2021년 최고의 화제작 <오징어 게임>도 가볍게 즐기는 ‘데스 게임’을,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불공정에 관한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한국형 스릴러로 전환한 것이다. ‘K’의 손길만 닿으면 어떤 소재든 어떤 장르든 한국적 세계관의 K-드라마로 변모한다. 그것이 ‘K’가 가진 독특한 세계관의 힘이다. 

 

‘K-컬처’의 이름으로 

2021년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그 꽃길을 손수 갈고닦은 ‘선배’ 드라마들이 있었다. 한국드라마의 넷플릭스 랭킹을 살펴보면 그 순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결국 그 상승세를 타고 <오징어 게임>은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미국을 포함해 94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이다. 

긍정적인 파급효과는 같은 장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21년 <오징어 게임>의 초대박 흥행이 있기 전, 2020년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고, 소설 『82년 김지영』이 미국 <타임지>에서 선정한 ‘2020년 반드시 읽어야 할 도서 100’에 등재되고, 방탄소년단이 미국 빌보드 2020년을 대표하는 최고의 팝스타로 선정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K-유니버스 안에서 K-컬처는 서로의 알고리즘 역할을 하며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대한 풍자를 보여주고, 소설 『82년 김지영』은 여성인권 유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MZ세대의 대변인으로서 동시대 청년세대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공론의 장으로 소환해낸다. K-컬처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국내외 언론들은 “시의성 높은 사회적 이슈를 날카롭게 포착해 전 세계적인 공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라고 평가한다. 나아가 K-콘텐츠 속 한국적 세계관의 사회비판적이고 현실참여적인 성격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콘텐츠의 변방에 자리했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콘텐츠 강국으로 등극하게 된 진정한 원동력은, 사회적 이슈를 단순히 반영하는 데 있지 않다. 

K-콘텐츠의 약진 이면에는 세계 질서의 변화와 중심의 붕괴가 있다. 인류공동의 환경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탈퇴한 트럼프 행정부의 폭주는, 더는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님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문화적 관용주의로 존재감을 유지해온 유럽의 철학과 사회적 수용성도 약화 일로를 걷고 있다. 21세기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중국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보완해가는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18세기 이전의 황제체제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K-콘텐츠의 약진은 한국이 유럽과 미국이 걸었던 근대화의 길을 가장 늦게 갔기에 가능했다. 지난 세기 한국은 패권주의와 약육강식의 질서에 시달리며 불합리한 횡포를 절감했다. 이는 역으로 미국과 유럽이 한때 내세웠다가 폐기해버린 평화와 공존, 그리고 민주주의 가치를 가장 역동적으로 실현하는 나라로 발돋움하게 했다. 중심이 아닌 주변부가 세상을 구원하는 세계. 그런 세계를 우리는 K-드라마의 안과 밖에서 함께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K-드라마가 누리는 행운이자, 동시에 완수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지난날 세계 문화를 주도했던 미국과 유럽처럼 자아성찰력을 잃어버린 채 관념적 도그마에 빠진다면, K-드라마도 그들이 걸어간 쇠락의 길을 답습하게 될 것이다. 과연 K-드라마의 신화는 계속될 것인가? 이제 K-드라마가 경쟁해야 할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K-드라마 자신이다. 

 

<오징어 게임>의 빛과 그림자 

2021년,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군 <오징어 게임>은 K-드라마가 구축한 한국적 세계관을 가장 극명하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하지만 열광적인 해외 반응과 달리, 한국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오징어 게임>의 캐릭터와 플롯이 ‘진부하다’라는 것이 그 이유다. 한국적 세계관에 대한 누적 시청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 시청자들로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판의 본질은 세계관의 상투성이 아니라, 그 세계의 단순함과 그 폭력성에 있다. 

드라마는 극적 구성을 위해 실제 현실의 특정한 측면을 선택적으로 강조하거나 축소한다. <오징어 게임> 속 빈부, 선악 등 극단적 이분법에 토대를 둔 세계 또한, 부의 불공정과 자본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기 위한 서사 전략의 일환이다. 하지만 그 세계가 다수의 작품에서 반복돼 재현된다면 특정 계층과 계급에 대한 고정관념과 우리가 사는 사회에 대한 특정 이데올로기로 작동할 소지가 있다. 드라마를 허구의 픽션으로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다. 

최근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K-드라마는 갑과 을만 존재하는 평면적 세계를 묘사한다. 갑은 절대 악으로서 온갖 범행을 저지르고 을은 절대 선으로서 세상의 모든 억울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산다. 그리고 정부와 경찰, 그리고 법과 같은 공권력에 대한 아무런 기대와 개입 없이 오로지 사회적 약자의 사적 복수만 강조된다. 갑과 을로 분류된 사람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악순환만 남은 세상이 바로 K-드라마 속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얼마나 비극적인 현실 인식인가. 얼마나 폭력적인 해결 방식인가. 또 얼마나 평면적인 타자 인식인가. 

물론 드라마는 윤리 교과서가 아니다. 따라서 바람직한 메시지를 담아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한국드라마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한국적 세계관의 자가복제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근 ‘다크 히어로’의 연이은 출현에 지친 한국 시청자들이 <오징어 게임>보다 강원도 어촌마을 배경으로 따뜻한 공동체를 그린 <갯마을 차차차>에 더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는 사실은, K-드라마가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수의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 진정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자,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이 공존하는 평화로운 K-드라마 월드다. 

<오징어 게임> 직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이 네임>이 “K-드라마만의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약해 아쉬움이 남는다”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전 세계 시청자들의 마음속에 ‘K-드라마’의 장르화 작업이 꽤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모든 한국드라마가 특정 세계관으로 수렴된다는 위험 신호이기도 하다. 자칫 ‘K’가 한국드라마의 다양성과 상상력을 가로막는 굴레가 될 수 있다. 

 

K드라마, 왕관의 무게를 견뎌라

안타깝게도 <오징어 게임> 속 부의 불평등과 불공정, 그리고 승자 독식의 가혹한 현실은 드라마 밖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넷플릭스는 한국에 콘텐츠 전담 자회사를 설립하고 올해 5,500억 원을 투자했다. 덕분에 K-드라마의 제작 및 유통이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100% 사전 투자로 제작비를 전액 지급하는 계약에는 IP(지식재산권)를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이 전제돼 있다. <오징어 게임>의 초대박 흥행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직접 만든 제작진에게 돌아가는 게 없다는 사실은, 실로 경악할 일이다. 구체적 액수는 알려지진 않았으나 최근, 감독과 제작진에 인센티브가 지급됐다는 보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오징어 게임>의 유일한 생존자 성기훈(이정재 분)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 속 ‘성기훈’들은 보다 슬기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중이다. 최근 tvN에서 방영중인 <지리산>은 세계적인 히트작 <킹덤>의 배우 전지현과 주지훈, 그리고 김은희 작가가 함께 모여 만든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사는 넷플릭스가 아닌 중국 아이치이와 손을 잡고 해외 온라인 유통에 나섰다. 한류 스타 송혜교 주연의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제작한 삼화네트웍스도 싱가포르 PCCW 뷰클립과 해외 유통 계약을 맺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이 목숨을 건 투쟁, 그것 하나일 리 없다. 우리가 내딛는 만큼, 상상하는 만큼 길은 무한히 넓어진다. 얼마 전 넷플릭스는 저작권 독점계약과 관련해 상생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드라마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K’의 힘이다.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포스트코로나 시대 K-드라마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를,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글·김민정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를 졸업하고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드라마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2021), 드라마 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2020), 드라마 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201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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