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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에 갇힌 그들의 아바타
메타버스에 갇힌 그들의 아바타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1.12.31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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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메타버스에 꾸려진 파리의 S매장에 아바타로 등장해 실제의 제품과 같은 가방, 핸드백, 옷가지, 액세서리를 구경하다가 멋진 명품의상들로 치장한 한 멋쟁이를 만났다. 가상의 공간에서 만난 아바타였지만,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우아한 그의 주변을 서성댔다. 메타버스 내 명품의 가격은 고가인 실물에 비해 현저하게 낮아, 나도 덩달아 나의 아바타에 그(아바타!)를 쫓아 명품을 골라 사 입힐까 싶어 신용카드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가상의 명품에 결제하려는 순간, "아차, 내가 왜 이러지?"라는 현실감이 밀려와 간신히 메타버스에서 빠져나왔다.

 

불가리의 메타버스 전시

나의 분신, 아바타는 나와 작별인사도 할 겨를도 없이 사라졌다.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실제의 백화점,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심지어 도시 공간이 구현되면서 이를 체험하려는 이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 메타버스의 유행을 쫓아, 세계적 사회관계망업체(SNS)인 페이스북이 얼마 전 ‘메타’로 기업명을 바꿨고, 주식시장에서 메타라는 이름의 사업체들이 줄줄이 주가상승세를 기록할 정도다.

특히 5G 상용화에 따른 정보통신 기술발달과 코로나 19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추세의 가속화는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적 가상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를 가장 핫한 키워드로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대선주자들이 메타버스 붐에 편승하려는 듯, 자신들의 유세 버스차량을 일컬어 ‘매타버스’라고 말한다. ‘매일 타는 버스’라는 의미에서다. 꼰대들의 ‘아재급’ 유머지만, 언론에서는 대선캠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후보들의 매타버스를 자주 언급한다. 말장난이긴 하지만, 젊은이들의 감각에 부응하려는 후보들의 노력이 가상해 보인다. 

하지만 매타버스가 아닌, 진짜 가상의 세계인 메타버스에 갇혀, 자신을 현실인물이 아닌 ‘아바타’로 착각하는 정신 나간 이들이 있고, 평소 멀쩡하다가도, 이 아바타에 혹해 그것을 떠받드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이력서에 적힌 경력 대부분을 부풀리고, 조작하고, 허위로 작성해놓고도 그것이 ‘내 것’, ‘나’라고 우기는 증상은 자신을 메타버스적 가상세계의 아바타와 동일시하는 데서 기인한다.   

페이스북, 네이버, 위키피디아 등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프로필을 부풀리고 조작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이같은 일을 습관적으로 저지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이런 일을 게이머들이 아바타를 치명적 병기들로 치장하는 정도로 여기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아바타를 더 멋있고, 더 매력있고, 더 실력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그는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게임 속의 병기 득템은 금전과 시간이라는 비용을 치러야 하지만, 자신의 이력서 분칠은 찰나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추후 발각되면 그저 착각이라고 우기면 될 일이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현실과 가상의 세계, 그 어디쯤에 걸쳐 있는 것이고, ‘진실’은 늘 우기는 자의 편에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평소 입만 열면 ‘공정’과 ‘정의’를 외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검찰총장 출신의 그는 남들의 허물에 대해선 가혹할 정도로 “법대로” 적용하고, 특히 자신의 상관인 법무장관의 가정을 짓밟았으면서도(게다가, 대부분 무죄 또는 무혐의로 판결났다!), 거짓과 조작으로 얼룩진 자기 아내의 삶에 대해서는 “음해세력의 공작”이라며 오히려 역정을 낸다. 그의 아내가 분장한 메타버스적 가상의 아바타는 수많은 병기들로 화려하게 치장했으나, 어차피 현실에서 그걸로 과녁을 맞추지 않았으니 “별일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것이 별일이 아닐까? 그녀의 아바타가 거짓과 조작으로 분칠한 목적은 메타버스의 아바타처럼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니다. 주렁주렁 허위경력으로 치장한 그녀의 아바타가 겨냥한 것은, 학생들의 삶의 방식과 철학에 영향을 주는 강사직과 교수직이었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

하긴 ‘진실’은 늘 ‘칼’을 가진 자의 것이었다. 현실세계에서 휘하의 검객들과 더불어, BTS만큼이나 화려한 추풍낙엽의 군무를 즐긴 칼잡이 출신으로서, 그가 대통령보다도 더 파워풀한 ‘칼’을 휘둘렀을 때는 ‘그 자신이 진실이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돌연 터닝한 민주당 중진 출신의 김한길에 이어,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녹색당후보로 나온 젊은 레디컬 페미니스트 정치인 신지예가 그녀 자신이 가장 경멸했던 당의 대선후보인 그에게로 가서, 캠프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을 맡은 것은 아무래도 탈현실적이며 가상의 메타버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 게임에서처럼 그와 그의 아내가 조작하고, 분칠한 멋진 ‘병기’들이 무적의 승리를 약속할 것처럼 보였을까?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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