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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겨울별』: 암울한 시기를 통과하는 그림책의 힘
[김시아의 문화톡톡] 『겨울별』: 암울한 시기를 통과하는 그림책의 힘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01.03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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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소영, 『겨울별』, 글로연, 2021
Ⓒ 이소영, 『겨울별』, 글로연, 2021

“캄캄한 어둠 속에서 눈앞에 아른거리는 빛이 있을 거야. 그 빛을 따라서 깊이깊이 가다 보면,”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는 2022년 1월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끝이 안 보이는 팬데믹의 중심에서 백신 패스가 있어야만 공공장소와 식당을 들어갈 수 있고, 백신의 부작용으로 누군가는 신음하고, 누군가는 코비드 19 때문에 죽는 어이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린 어떻게 버텨야 할까? 캄캄하고 거대한 겨울 숲을 우리는 어떻게 통과해야 할까?

이야기와 상상력은 아주 옛날부터 긴 겨울을 나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글과 그림으로 구성된 그림책은 그림책을 펼쳐 든 독자에게 아주 쉽게 상상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덕분에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도 그림 속에 쏙 빠져들며 판타지 세계에서 여행할 수 있다. 그게 문학과 예술의 힘이다. 그림책의 힘이다.

이소영 작가의 그림책 『여름,』(글로연, 2020)에 매료된 터라, 그의 신간 그림책 『겨울★』이 반가웠다. 특히 그의 그림책에선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파리 거리와 프랑스 풍경이 보여 친근하다.

『겨울별』은 의인화된 겨울이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만난다. “캄캄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는 겨울이 싫다고 말한다. 엄마 아빠를 먼 곳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왜 먼 곳으로 데려갔을까?

이 글을 쓰기 위해 이소영 작가의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니 작가는 한여름에 『겨울별』을 작업하고 있었다. 젖은 종이 위에 수채화로 그리는 습식 수채화로 그린 작품인데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잘 그려지면 득도한 것 같고, 망치면 미칠 것 같은 기법이다.”(2021. 8. 21)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새해 인사도 할 겸 작가와 전화 통화를 했다.

“왜 미칠 것 같은 기법이에요?”

나의 질문에 이소영 작가는 물감과 물이 그리는 우연성 때문에 망치면 다시 그리고, 다시 그리고 수없이 같은 장면을 다시 그렸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인 사물과 인물의 표정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해 수없이 노력한 결과 최종 그림이 나온 걸 알 수 있었다. 맑은 수채화와 번지기 기법으로 그리는 작가의 손놀림은 빠르다. 번지는 기법은 색의 마술사처럼 하늘과 산의 경계를 허문다. 하얀 바탕은 눈이 온 대지와 산에 눈이 쌓인 효과를 내고 있다. 의인화된 겨울은 “하얀 가방과 까만 가방에 선물을 가득 넣고, 뜰에 핀 노란 별을 가슴에 꼭 안”고 구멍을 통해 초콜릿 가게가 있는 어느 도시에 도착한다. 펼침 페이지에 시원하게 그려진 도시 풍경은 다음 페이지에서 열여덟 장면 컷으로 여러 화면을 동시에 보여주며 ‘겨울’은 도시를 여행한다. 빨간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장면을 보면 배경 공간이 한국인 듯 보이다가도 파리의 건물도 보이고 온기가 전해지는 카페 모나코(café Monaco) 풍경은 어느새 프랑스의 거리 이미지를 불러온다. 붉은 스웨터를 입은 아이는 학교에서 파한 후, 혼자 메트로를 타고 집으로 간다. 벽에 그려진 역 이름 ‘Glac’가 그려진 역은 파리의 지하철 노선 6번이 다니는 ‘얼음창고’라는 뜻의 글라시에르(Glacière)역을 암시한다. 센강 남쪽 13구에 있는 이탈리아 광장에서 가까운 곳에 아이의 집이 있는 것 같았다.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니 글라시에르 역에서 또 버스를 타고 가는 14구에 살았다고 한다. 아이 둘을 키우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겨울의 온기처럼 그대로 스며들었다.

팬데믹이라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 작가는 프랑스에서 지난해 2월 귀국한 후, 줄곧 한국에서 작업하고 있다. 그러나 『겨울별』 이야기의 씨앗은 파리에서 움텄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살 때 섬네일 스케치를 완성했고, 익숙하고 낯선 한국에 적응하며 여름에 겨울을 그렸다. 작가는 독자를 파리와 상상의 나라로 안내한다. 그러나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간과 공간이다. 독자는 이야기의 끝에 부모의 등장으로 아이의 이름이 ‘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동생의 이름은 ‘겨울’이다. 겨울에 태어난 겨울이다.

기다림의 상상 속에서 ‘별’은 동생 ‘겨울’의 탄생을 함께한다. 별이의 성장을 상징하는 사다리가 그려진 펼침 페이지 왼쪽에 웅크린 태아의 이미지도 보인다. 탄생의 비밀처럼 작가는 독자가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도록 그림 속에 숨겨(?) 놓았다. 현실에서 마주하기 전부터 별이는 상상의 공간에서 동생 겨울이와 함께 있다. 『겨울별』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까마귀들이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을 볼 수 있는 펼침 페이지다. 독자의 시선엔 먼저 빨간 스웨터를 입은 별이가 누워서 데칼코마니처럼 자신과 마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구석구석 디테일을 보면 작가의 유머가 넘친다. 그림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지 않으면 독자는 눈을 뜨고도 작가의 의도를 못 보게 되는데 이소영 작가가 친절하게도 부모의 등장을 알려주었다. 스치고 지나칠 수 있는 아주 작은 디테일은 다음에 올 장면을 암시한다.

 

Ⓒ 이소영
Ⓒ 이소영

긴 겨울, 기다림을 주제로 하는 그림책 『겨울별』은 다양한 화면 구성과 다채로운 색, 구석구석 디테일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지루할 틈이 없이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림책과 그래픽 노블의 혼합적인 문법으로 화자가 이야기하는 문장과 등장인물들의 말풍선이 공존하는 이 책의 형식은 형과 동생처럼 유사함과 동시에 다름이 적절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별’과 ‘겨울’의 만남처럼!

마음에 드는 신간 그림책이 출간되면 설렌다. 팬데믹 상황이더라도 그림책을 통해 자유롭게 상상의 여행을 하다 보면 삶의 지루함을 잊는다. 정치 뉴스로 고조되었던 화와 분노는 어느새 수그러들어 평온한 마음을 되찾는다. 디스토피아 같은 세상에서 희망도 부푼다. 이것이 그림책의 힘이다.

 

 

글 · 김시아 KIM Sun nyeo

문학·문화평론가.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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