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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미국의 논쟁
100년 전 미국의 논쟁
  • 편집부
  • 승인 2011.11.1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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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자본주의 성향을 띤 미국노동총연맹(AFL)은 오랫동안 세계산업노동자(IWW) 노조와 사회당에 반대했다. 이들의 대립에서 핵심은 ‘노조는 노동자의 당장의 이익을 옹호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노동자를 장기적 정치투쟁에 대비시켜야 하는 것일까’였다.

1912년 미국에서 노동분쟁이 증가하자, 이를 우려하던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의회에 노사관계 해결에 힘써달라고 요청했다. 그의 후임인 민주당 출신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국회 진상조사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9명에게 이 사건을 맡겼다. 1914년 이 위원회는 노동조합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미노동총연맹(AFL·American Federation of Labor) 회장 새뮤얼 곰퍼스와 사회당 창시자이자 사상가인 모리스 힐퀴트를 토론장에 초대했다. 당시 사회당은 유진 데브스가 이끌고 있었지만 힐퀴트가 핵심 인물이었다. 사회투쟁의 근원적 이유와 노조투쟁의 궁극적 목적에 관한 차이를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예컨대 그때그때 즉각 노동자의 일상적 이익을 어떻게 옹호하고, 노동자의 정치투쟁을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준비하는 것인지 답변을 듣기 위해서였다.

<비오는 날>,2007-도로시슈즈

토론 장소에서 먼저 노총 회장 곰퍼스가 힐퀴트에게 사회주의의 민주적 성격에 의문을 표했다. 이어 곰퍼스가 공격받는 차례가 되었다.

힐퀴트 곰퍼스, 미국 노동자들이 지금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다 받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건 당신의 견해입니까, 아니면 노총의 견해입니까? (중략)
곰퍼스 전 노동자들이 생산노동의 대가를 정확히 얼마나 받고 있는지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노조운동 덕분에, 오늘날 이들이 받는 대가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힐퀴트 노조의 기능이 바로 노동자들에게 배당될 생산 이익의 대가를 키우는 것이란 말입니까?
곰퍼스 네, 그렇습니다. 노동자의 봉사 없이는 문명적 삶도 있을 수 없기에, 노조는 사회가 자신에게 봉사하는 노동자에게 감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중략)
힐퀴트 만약 향후 노동자들이 대략 생산 이익의 5%를 챙긴다면 만족하고 임금투쟁을 멈추겠습니까?
곰퍼스 제가 아는 인간의 속성상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힐퀴트 노동자단체가 임금투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 않을까요? 노동자가 생산 이익을 전부 챙기는 게 가능할까요? 말하자면, 노동자가 주장하는 진정한 사회정의(생산 이익의 전부를 차지하기)가 확보될 수 있을까요?
곰퍼스 당신은 아주 공손한 어투로 집요하게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는데, 전 이에 대한 답변으로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들도 인간입니다. 노동자도 모든 이들처럼 똑같은 욕망과 희망에 이끌려 행동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죽어서 땅에 묻힌 뒤 얻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얻고 싶은 것입니다. 그들은 자녀가 더 나은 여건에서 살며, 향후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노동자가 상황을 바꿉니다. 그들은 자신의 요구사항을 갖고 있으며, 모든 힘을 다해 이를 지켜내는 겁니다. 즉, 계속해서 늘어나는 부의 더 많은 부분을 향유하기 위해 정상적·합리적 방식으로 자신의 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정의의 최고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싸우는 셈입니다.
힐퀴트 부의 재분배 측면에서 보면, 사회정의의 최고 이상이란 노동자가 육체 노동자이든 정신 노동자이든, 책임자이든 실무자이든 간에 생산 이익을 전부 챙기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닐까요?
곰퍼스 아시겠지만, 물고기는 미끼를 물다 잡히고, 생쥐는 치즈 조각을 탐하다 잡히죠. 똑똑하고 분별 있는 노동자는 당면한 문제를 다루고 싶어 합니다. 만약 진보를 원하는 노동자라면, 유례없는 꿈(생산 이익을 전부 챙기는 시스템)을 좇거나 앞으로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꿈을 좇기보다는 당면한 문제와 싸워야 합니다. 단언컨대, 인간사에서 그런 꿈은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 꿈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천재 인간’이 만든 최악의 생산 시스템이 될 공산이 큽니다.
(중략)
힐퀴트 AFL의 업무가 전반적인 사회철학에 의해 이끌린단 말인가요?
곰퍼스 노총을 이끄는 것은 과거의 역사입니다. 노총은 노동자가 직면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되도록 가장 고통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일하기 위해, 그리고 남성·여성·어린이와 오늘·내일·모레·글피를 위해 좀더 개선된 노동여건을 확보하기 위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원칙과 철학, 그리고 목표가 노동운동을 이끌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죠.
힐퀴트 하지만 날마다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당신들은 ‘옳은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한 견해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곰퍼스 아닙니다. 만약 당신들이 어떤 프로그램을 정한다면, 모두가 그것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가 당신들의 이론과 맞지 않는다면, 당신네는 ‘결과가 낭패’라고 말하겠지요.
힐퀴트 제가 당신에게 궁금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들은 매일같이 노동자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해 애쓴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운명이 좋은 쪽으로 변했는지 나쁜 쪽으로 변했는지 판단하려면, 당신네들에게 노동운동에 무엇이 좋고 나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몇 가지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곰퍼스 (힐퀴트의 말을 자르며) 잠깐만요. 하루에 8시간 일하고 3달러를 받는 것이 하루에 12시간 일하고 2.5달러를 받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깨닫는 데 그렇게 대단한 분별력이 필요한가요? 그걸 이해하는 데 심오한 사회철학까지 동원할 필요는 없습니다.
힐퀴트 당신의 논리대로라면, 좋은 환경에서 7시간 일하고 4달러를 받으면 더 낫지 않겠어요?
곰퍼스 그거야 당연하죠.
힐퀴트 좋습니다. 그럼 그다음은요?
곰퍼스 물론 더 요구하겠지요.
힐퀴트 그러니까 더 많이 받기 위해 투쟁을 계속하겠단 말인가요?
곰퍼스 그렇습니다.
힐퀴트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노동자는 합당한 노동의 대가를 챙길 때까지 노조투쟁을 계속하겠네요?
곰퍼스 노조투쟁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힐퀴트 그것이 문제군요.
곰퍼스 (힐퀴트의 말을 자르며) 당신이 방금 지적한 그런 목적이 혹시 달성된다 하더라도 노동자는 자신과 아내, 자녀, 그리고 인류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얻기 위한 투쟁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힐퀴트 노조투쟁의 목적이 자신과 아내, 자녀를 위해 완전한 사회정의를 쟁취하는 것이란 말입니까?
곰퍼스 날마다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한 투쟁이죠.
힐퀴트 앞으로도 계속 투쟁한다는 말입니까?
곰퍼스 투쟁엔 한계가 없습니다.
힐퀴트 언제까지….
곰퍼스 영원히.
힐퀴트 달리 말해?
곰퍼스 달리 말해, 우린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멀리 간다는 얘깁니다. (홀 안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짐.) 당신들은 범위를 정하지만, 우린 그러지 않거든요.
힐퀴트 그러니까 당신은 공식적으로 AFL이 사회당보다 목표나 행동에서 더 진보적이라 주장하는 거군요. 사회당이 현재의 소득과 임금체계의 폐지를 요구하며 노동자가 합당한 생산노동의 대가를 분배받을 수 있게 애쓰는데 말입니다.
곰퍼스 당신은 제가 당신과 같은 일부 몽상가들이 만들어낸 유령 사회단체(사회당)에 우호적 반응을 보이길 기대하는 것 같은데, 진일보한 답변을 해드리죠. 노조운동은 더 나은 존재의 조건을 요구하는 인간적 속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인간적 속성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이죠. 당신이 말하는 그런 목적이나 그 이상의 목적 때문이 아니라. (중략) 제1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노조운동을 붕괴시켰습니다. AFL과 저는 노사갈등에 미 정부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입니다. 무정부주의 노조운동을 지지하는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은 이에 반대할 것입니다. 정부의 강제 탄압으로 IWW의 일부 노조가 붕괴됐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죠. AFL도 후일이 두려워, 당신이 내세우는 것처럼 미국의 자본주의를 문제 삼진 못하지만, 노조원들이 자신의 동력(생산 이익)을 최대한 챙기도록 애쓸 것입니다.


출처 <노사관계위원회가 의회에 제출한 최종 보고서와 증언> (워싱턴, 정부 인쇄물 제작기관, pp.1526~1529, 1916).

번역. 조은섭 chosub@ilemonde.com
파리 7대학 불문학박사로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강의 중. 주요 역서로 <착각>(200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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