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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성덕> ― “언젠가 성공한 덕후가 되고 싶다”
[이승민의 시네마 크리티크] <성덕> ― “언젠가 성공한 덕후가 되고 싶다”
  • 이승민(영화평론가)
  • 승인 2022.01.1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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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감정은 참 묘하다. 분명 내가 사랑하는 것이지만, 때때로 그 감정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상대인 것처럼 상대에게 감정의 열쇠가 쥐어진다. 상대로 인해 희노애락과 심지어 자존감까지 휘청거리곤 하기 때문이다. 상호관계라고 하지만 무게축이 자주 상대에게 가서 내 감정을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게 사랑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것이 짝사랑이나 ‘덕질’일 경우는 더하다. 성숙한 사랑은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 라는 명제에서 목적어만이 아니라 주어도 함께 선명해지는 과정이 아닐까?

<성덕>은 남자 아이돌의 성범죄로 인해 상처받은 팬들의 이야기이다. 감독은 중학교 시절부터 7년을 직진 주행한 정준영의 ‘성공한 덕후’였으나 ‘단톡방 사건’ 이후 감정이 순식간에 복잡하게 엉켜 버렸다. 사랑과 신뢰는 분노와 배신감과 자책감 나아가 자괴감까지 만들어내면서 열성팬이라는 이유로 가해자 같기도 하고 2차 피해자 같기도 한 ‘머리 속에서 종이 울리는 상태’가 되었다. 영화는 그럼에도 여전히 탈덕하지 않고 팬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팬이었다는 사실 조차도 부끄럽게 만든 사람에게 아직도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 그 물음의 답을 찾아 나선다.

 

영화는 정준영의 덕후인 감독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자타가 공인한 성공한 덕후였기에 오히려 실패한 덕후가 되어버린 감독은 사건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팬덤 공동체 내부 팬의 입장에서 솔직한 자기 경험담을 풀어낸다. 과거 기성세대로부터 쉽게 대상화되고 폄하되어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세대의 감독은 이제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서사를 당당하게 말한다. 당사자의 목소리로 덕후들의 삶과 감정을 솔직담백하게 듣는 것은 이 영화만의 묘미이다. 먼저, 영화는 감독 자신의 개인 기록에서부터 현재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다양한 퍼포먼스로 유쾌하고도 긴장감 넘치게 수행한다. 성덕사에 가서 성덕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굿즈 장례식을 치르다 버리기 아까운 최애 품목을 자신도 모르게 챙기고, 정준영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그에게 쓴 편지를 읽는다. 무엇보다 주변 지인들을 만나서 덕후 끼리 통하는 솔직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영화는 이처럼 감독 자신의 사적인 경험에만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유사한 경험을 한 주변 친구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우연히도 영화의 조감독도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임이 드러나고, 고교 친구는 물론 같은 학과 친구들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영화는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덕질이 개인적이고 고립된 행위가 아닌 젊은 세대가 만들어내는 고유한 문화이자 공유가능한 공동체의 집단정서임을 가만히 일깨운다. 또한 영화는 덕후들의 허심탄회하고 솔직한 대화로 관객을 팬덤 내부 공동체로 안내하고, 아이돌 팬만큼이나 남자 아이돌의 성범죄로 상처받은 팬들이 많다는 사실도 일깨운다.

 

영화는 나로부터 출발해 우리 나아가 사회를 이어내지만, 초점은 사랑과 분노를 일으킨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분노를 느끼는 ‘나’들이다. 감독은 정준영에 대해서가 아니라 상처 받은 팬의 입장에서 떠난 자와 아직도 남은 자의 마음을 듣고 읽고자 한다. 영화는 지인들의 인터뷰 속에서 열가지 이유를 정리하면서, 팬으로서 자신의 시간과 추억 그리고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덕후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OPPA’를 옹호하는 마음 만큼이나 사실은 그랬을 수 있을 거란 추측을 했고, 실제 그이기 보다는 자신을 꿈꾸게 만들어주는 캐릭터 이미지를 사랑했음을 안다. 영화는 오늘날 팬들이 맹목적이고 광신도적인 스토커가 아니라 스타를 사랑하며 위안받고 문제에 대해 냉철하게 성찰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생산소비자”이자 비판지성임을 보여준다. 팬덤의 주체는 스타가 아니라 (분명 스타가 매개이지만) 팬 자신임을 영화는 편안하지만 섬세하게 풀어낸다. 감독 엄마의 인터뷰가 이를 명료하게 드러낸다. 조민기 팬이었던 엄마는 젠틀하고 시크해서 그의 팬이 되었지만, 죄 지은 놈이 죄 값을 치루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에 찬 비난을 쏟아내고, 그러면서도 딸의 정준영에게 고마웠다고 말한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딸에게 정준영과 그의 음악은 그 시간을 견디게 해준 감사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덕후의 결이 얼마나 다양한 지를 단번에 일깨우는 재미있고도 의미심장한 인터뷰였다. 실제 많은 덕후들이 덕질로 위안받고, 덕질 자체를 삶의 동력으로 삼으면서, 적지 않은 덕후들이 대중매체를 전공과 미래 직업으로 삼는다. 짐작컨대 오세연 감독의 영화 역시 덕질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영화는 또한 팬인 나의 생각과 감정에만 주목하지 않는다. 아픔과 성찰은 어느 순간 팬이었기에 했던 부끄러운 기억 앞에 선다. 감독은 처음 정준영의 성범죄를 밝힌 박효실 기자에게 가했던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며 사과를 시도한다. 잘못을 기억해내고 사과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잘못을 덮고 기억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이들과는 다른 행보이다. 감독은 혹여 이 사과가 자기 마음 편하자고 하는 사과인가를 되물으면서 상처 받은 나의 감정을 헤아리는 만큼 내가 상처 준 타인의 감정도 헤아리는 용기를 낸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자신의 덕질과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과의 연결이다. 감독은 아이돌 팬덤과 박사모를 정치적 성향과 이념의 틀에 갇힌 분류가 아닌 덕후 감독의 관점에서 이어낸다. 잠시 박사모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 감독은 이들 내부를 보며 ‘대상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응원하고 기다리는 마음 자체’를 만나면서 자신의 답을 계속 찾아간다.

언젠가 성공한 덕후가 되고 싶다”는 감독의 말은 개인적 바램이기도 하지만 이 사회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상처받지 않는 성공한 덕후가 많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한 갈망은 건강한 사회를 꿈꾸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바램이기도 하다. 영화 <성덕>은 덕후인 감독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같은 경험을 가진 지인들과 함께하기 나아가 우리 사회의 ‘우상화’ 현상까지 유연하게 짚어낸다. 영화는 또한 그동안 미디어에서 대상화해서 다룬 팬덤의 문화를 내부자의 목소리로 담으면서 남자 아이돌의 성범죄로 인한 여성 팬의 상처와 성찰을 담는다. 이처럼 영화는 나와 세상을 이어내고 동시에 나의 내면을 성찰하는 방식으로, 사랑의 주체가 ‘나’임을 동시에 일깨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내가 몸담고 사는 현실을 일깨우는 덕질이라면, <성덕>은 지금 이 시대의 팬덤 문화를 주체적으로 파헤친 성공한 덕질이 아닐까 한다.

 

 

사진출처: 구글 이미지 

 

 

·이승민
화 연구자, 평론가, 기획자, 강연자로 활동,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영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아시아 다큐멘터리의 오늘>(공저), <영화와 공간> 등의 저서와 다수의 논문이 있다. 다큐멘터리 매거진 Docking의 고정필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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