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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에 가난은 슬프다
기후위기에 가난은 슬프다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3.02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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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3월 청명/춘분
가뭄으로 말라붙은 안동호의 모습이다. 겁 많은 고라니가 대낮에 나와 물을 찾고 있다. 흔치 않은 풍경인데, 그만큼 가뭄으로 목이 탄다는 증거일 것이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로 달라진 3월의 절기는 청명(淸明)이다. 원래는 4월 5일쯤인데 20일쯤 당겨져 춘분과 비슷한 시기다. 청명한 하늘 아래 식목을 하던 그 절기는 3월이 되었으니 식목일도 당겨야 할지 모르겠다. 실제 식목일이 청명인 까닭은 나무가 얼거나 메마르지 않는 적당한 절기로 아이가 어른이 되면 옷장을 짜는데 쓸 목재를 얻기 위함이었다. 또 청명은 한식(寒食)과도 겹치는데, 춘추전국 시대 개자추의 이야기를 담은 한식은 기후 절기를 반영하는 날이 아니니, 이는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다면 3월 청명 기간에 우리나라 30년간의 기후관련 뉴스로 무엇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을까 궁금하다. 신문 아카이브를 검색하니 가뭄이다. 특히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가뭄이 심각하다는 뉴스가 거의 매년 등장한다. 농사일을 준비하는 3월에 밭갈이를 해봐야 비가 오니 않으면 그해 농사를 망칠 위기에 처한다. 대체로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인 경북 봉화군, 영주시, 예천군, 문경시, 안동시, 상주시, 의성군, 군위군이 그 지역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거대한 댐이 만든 호수가 있는 안동으로 떠났다. 

박정희 시절인 1976년 완공된 안동댐은 발전은 사실 둘째고 농사에 필요한 용수공급을 위해 지은 것이다. 또한 댐이 만든 안동호는 관광명소로 대대적 홍보를 했는데, 상류에 유명한 도산서원이 있기도 하다. 나는 도산서원을 거쳐 내려가며 낙동강이 흘러드는 안동호 초입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놀랐다. 거대한 사막을 보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물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고 애초 물에 잠겼던 마을이 드러났다. 이런 초현실적인 풍경은 흔한 것이 아니다. 

원래 호수였던 곳을 걸었다. 바닥은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고 예전 마을의 도로였던 곳의 양편에는 잘려진 나무의 그루터기가 화석처럼 서있다. 손바닥만 한 민물조개는 곳곳에서 입을 벌리고 아사했고 누군가 설치한 어망에는 말라비틀어진 물고기들이 들어있다. 물을 마시러 위험을 무릅쓴 고라니는 빤히 카메라 렌즈를 쳐다보다가 재빨리 사라진다. 이렇게 안동호가 말라버린 것은 비단 내가 도착한 때가 처음이 아니다. 경북에 가뭄이 들면 이렇게 안동호는 말랐다. 지난 십여 년간 경북의 봄철 주요 댐 저수율은 50%를 밑돌았다. 그나마 올해는 지난해 내린 역대급 강수량 덕으로 저수율이 80%를 넘겨 모내기에 걱정 없다며 언론에 대서특필 될 정도다.

 

봄 가뭄, 저수지 물 대신 지하수로 농사를

 

경북의 가뭄은 매년 찾아든다. 주변의 많은 저수지들은 저수량이 50% 미만으로 줄어 농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봄 가뭄이 심해지면 농민들은 지하수를 쓰고 있다. 가뭄이 이어지면 저수지 물을 끌어다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뭄이 계속돼 지하수를 끌어 쓰면 농업용수 부족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곳곳에서 식수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지하수 관정을 이용해 생활용수를 공급받는 경북의 소규모 마을들은 가뭄으로 지하수가 말라 당장 마실 물도 없어지게 된다. 실제로 봉화, 문경 등 경북 북부지역에서는 가뭄으로 인한 제한급수 혹은 비상급수가 빈번하게 실시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는 것일까? 많은 기후학자들은 엘니뇨의 변화로 인해 북태평양의 고기압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태백산맥 너머 경북에 비를 뿌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는 최근 태백지역의 잦은 봄 산불 발생 및 대형화도 관련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한반도 남부에서도 지역별로 다양한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어디는 홍수가 자주 발생하고 어디는 가뭄이 자주 드는 것이다. 

경상북도는 양수기로 저수지 담수 시행, 논물 가두기, 하천유지용수와 농업용수 공급 감축 등 기존 방식에서 크게 바뀌지 않은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이 같은 대책이 기후변화로 인해 상시화 된 가뭄 극복에 실효를 거두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기후전문가와 물관리 전문가들은 도내 시·군의 용수 수요 및 공급량 분석을 토대로 용수가 풍부한 시·군에서 부족한 시·군으로의 공급이 이뤄지는 등 상시적 통합 물 관리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 부족 문제가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는 상황이다. 청명의 ‘청명한’ 하늘이 참 무심하기도 하다. 

 

봄비를 맞으면 걸어 본 감천동

24절기의 네 번째 절기인 춘분(春分)은 경칩과 청명의 중간에 드는 절기로 양력 3월 21일이다. 춘분은 기후 절기와는 상관없이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 즉 하루가 낮과 밤으로 정확히 나뉘는 천문현상이다. 낮과 밤처럼 음양이 반반씩 갈리는 때라 고려와 조선의 왕실은 춘분에 빙고에서 얼음을 꺼내며 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때부터 빙고의 얼음은 녹기 시작했을 것이다. 3월 중순에 며칠 차이 없이 청명과 춘분이 나타나는데 경북 안동은 가뭄이고 경남 부산은 봄비로 흥건했다. 

 

부산 감천동의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다. 오래전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마을이다. 반세기 동안 변한 것이 별로 없다.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요즘 여행 다니는 젊은 사람들에게 사진찍기 좋은 핫 플레이스다. ‘한국의 산토리니’라고 하는데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알록달록한 색상의 주택들이 밀집해 그리 부른다. 이곳 이름 감천동은 앞에 좁고 긴 만의 항구 이름 감내포에서 왔다. 포구에서 내지로 넘어가는 반달고개는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묘지로 쓰던 곳인데 한국전쟁 후 내려온 피난 온 사람들이 들어서 집을 지어 비석마을로도 불린다. 반달고개에는 ‘태극도’라고 불린 신흥종교의 신도들이 모여들어 거주지가 됐다. 태극도는 1918년에 조철제가 증산사상에 기초하여 세운 종교로 신도들이 반달고개 주변에 모여 집단촌을 만들었는데, 이 태극도 신앙촌이 중심이 되어 1958년에 감천리는 1리와 2리로 확대됐다. 지금 우리가 보는 감천동은 당시에 만들어진 태극도 신도들의 흔적이라 보면 된다. 비가 오는 감천동을 걸으니 그 디테일이 보인다. 멀리서는 그저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수대를 거쳐 온 빈곤이 짙게 배어있다. 

 

선진국의 가난이 슬픈 까닭

 

감천동의 이색적인 풍경도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수 세대를 이어 온 빈곤이 있다. 기후위기 속에서 빈곤은 더욱 슬프다. 

타인의 빈곤이 볼거리로 전락하는 시대는 꽤 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오래된 골목길을 촬영한다며 감천동과 같이 낙후되고 가난한 마을을 어슬렁거린다. 주민들의 사생활 공간도 마구 침범한다. 그래서 민원이 생기고 외지인과의 갈등이 자주 목격된다. 하지만 사실 감천동 주민과 같은 빈곤 계층이 고통받는 것은 이런 사소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부산처럼 자주 발생하는 태풍 피해와 한여름철 온도 상승은 열악한 주택에서의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저렴하고 깨끗한 난방용 도시가스를 공급받지도 못하며 한여름에도 에어컨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저소득층이 많다. 잦은 태풍에는 산비탈 마을의 취약점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사망자가 발생하는 침수와 붕괴는 매년 벌어지는 일이다. 기후변화는 삶과 인권의 문제가 된다.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뉴욕을 강타했을 때 맨해튼 골드만삭스 본사 건물은 콘크리트 바리케이드와 수만개의 모래주머니로 넘치는 물을 막고, 사설 발전기를 돌려 배수를 해 위기를 넘겼다. 하지만 저소득층은 반지하 방으로 물이 넘치고 추위와 공포에 떨어야 했다. 미국 남동부 지역을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 제방이 붕괴됐을 때, 대피 경고를 받고도 자가용 등 교통수단이 없어 대피하지 못한 빈곤층 1,500여 명이 숨졌다. 이러한 미국의 사례는 기후변화 앞에서 우리나라 빈곤층이 처한 위기를 돌아보게 한다. 청명이라지만 여전히 쌀쌀한 3월의 봄비 내리는 날씨에 감천동 사람들은 따뜻하게는 지내는지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여전히 가난이 슬픈 까닭이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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