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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 신청 성공하셨습니까?:‘사라지지 않는 강의 매매’
수강 신청 성공하셨습니까?:‘사라지지 않는 강의 매매’
  • 고경수(바람저널리스트)
  • 승인 2022.03.17 1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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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모 대학교에 재학 중인 4학년 김찬수(가명) 씨는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교양 강의 수강 신청에 실패하였다. 해당 강의를 반드시 들어야 했던 그는 대학교 커뮤니티 플랫폼인 에브리타임을 통해 해당 강의 여석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고, 몇 시간 뒤 쪽지가 하나 도착했다. 쪽지에는 ‘A 씨에게 해당 강의를 7만 원에 판매할 의사가 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쪽지를 받은 뒤 울며 겨자 먹기로 A 씨는 해당 강의를 구매하였으며, 개강을 앞둔 지금까지도 본인이 왜 다른 사람한테 돈까지 지불하며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해당 강의는 여석이 없습니다’- 수강 신청에 실패한 학생들

 

김찬수 씨 말고도 매년 수강 신청 기간마다 희망하는 강의를 신청하지 못해 누군가 해당 강의를 취소하기만을 기다리거나 학과 조교실에 연락을 취하는 학생들이 많다. 이 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교 김 모 씨는 “수강 신청 기간이 되면 학과 조교실로 하루에도 몇 건씩 강의 여석을 더 열어줄 수는 없는지 문의하는 연락이 있다”라고 말했다. 전공의 경우 이렇게 학생들이 학과에 직접 연락하거나 따로 교수님께 메일을 보내 여석을 얻는 경우가 빈번하게 있다. 하지만 교양 강의의 경우 이마저도 거의 불가능해 강의를 듣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렇다 보니 학생들의 불만도 커진 상황이다. 올해 3학년 재학 중인 이호민(가명) 씨는“인기 있는 교양 강의는 최소 경쟁률이 2:1이고, 심지어 전공 강의마저도 학년별 재학생 수보다 턱없이 부족한 여석으로 매번 수강 신청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소 졸업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 교양이나 전공 강의는 자리가 남더라도 넉넉하게 열어줘야 학생들의 수업권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냐.”라며 학교의 수강 신청 시스템에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로 이 대학교에서 인기 있는 필수 교양 강의 중 하나인 ‘철학의 기원과 역사’강의는 올해 1학기 40석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해당 강의를 희망한 학생은 90명이 넘어 2.25:1의 경쟁률을 보였다.

 

‘꿀강의 사세요~’:수강 신청 때마다 열리는 강의 마켓

 

수강 신청 기간이 되면 에브리타임 등 학교 커뮤니티에 특정 강의를 사고 싶다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수강 신청에 실패한 학생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강의를 구매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어떤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간절함을 이용해 강의를 판매한다. 직접 게시글을 올리거나 해당 강의를 구한다는 글에 쪽지를 보내는 등 방식도 다양하다. 강의의 가격은 인기가 많거나 졸업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비싸게 거래되며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으로 거래되는 경우도 있다. 수강 신청 거래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학생들의 간절함을 빌미로 개인이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해당 강의를 듣고자 수강 신청을 한 것이 아니라 거래를 목적으로 인기 강의들을 신청하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나타나면서 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본인이 희망하는 강의를 듣기 위해 또 다른 지출을 해야 하는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강의 거래에 불만을 담은 모 대학 커뮤니티 글
강의 거래에 불만을 담은 모 대학 커뮤니티 글

 

이렇다 보니 학생들 대부분 강의 거래에 대해 비판적이다. 실제로 강의를 구매했던 김찬수 씨는 “듣지도 않는 강의를 미리 선점해서 이걸로 장사하는 게 길거리에서 돈을 갈취하는 불량배들과 다를 게 무엇이냐”라며 강하게 비판했다.“현재 학교의 수강 신청 시스템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문제를 내부에서 알고 있다면 학교는 이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수강 신청 시스템이 문제의 원인?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현재 수강 신청은 보편적으로 하루에 한 학년씩 대학별 수강 신청 사이트에 접속해서 희망하는 강의를 직접 신청하는 방식이다. 그 후 정정 기간이라고 해서 신청했던 강의를 취소하거나 이전 신청 기간에 놓친 강의들을 추가로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이 존재한다. 문제는 강의 여석이 신청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다 수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취재를 진행했던 모 대학교의 경우 19학번 이후에 입학한 학생들은 ‘중핵 교양’이라는 영역의 강의를 9학점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학교에 개설되는 ‘중핵 교양’강의 수는 한 학기에 10개 남짓이고, 이마저도 전공 강의와 시간표가 겹치는 경우가 많아 들을 수 있는 강의가 한정적이다. 이 때문에 해당 강의들의 수강 신청은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한다. 그렇다 보니 수강신청에 성공하는 학생들보다 실패하는 학생이 압도적으로 많고, 결국 비싼 학비를 내고 원하지 않는 강의를 듣기 싫어 반강제로 휴학을 선택하거나, 계절학기를 추가로 듣기도 한다. 졸업을 앞둔 4학년에게 수강 신청 실패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으며, 해당 강의 교수님들과 교무처에 연락해도‘학교에서 정해준 인원수 이상으로 받을 수 없다.’라는 답변만 받는다고 한다.

이번 학기 휴학을 선택한 신주원(가명) 씨는 “단순히 강의 거래를 막는 것으로는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가장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먼저 충분히 강의를 개설하고 여석을 마련해야 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 강의 거래 자체를 막을 경우 더 큰 혼란과 불편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의를 사는 학생들도 강의를 판매하는 이들보다 강의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학교에 더 큰 불만을 표했다.

 

비어있는 강의실. 출처-픽사베이

 

 

강의 거래에 대한 학교의 입장

학교도 해당 문제를 알고 있지만 쉽게 조치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 대학교의 한 교직원은 “현실적으로 강의 개설과 여석을 지금보다 더 늘리는 것은 힘들다”라고 말한다. 우선 개설하는 강의 수를 늘리는 것은 인건비 상승과 직결된다. 코로나19 이후로 학교 재정에 타격이 생기면서 학생들의 요구를 쉽게 들어주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여석을 늘리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교수 한 명이 수용할 수 있는 학생의 수는 한계가 있고, 몇몇의 교수들은 학생이 너무 많은 것을 원치 않는 경우도 있어서 이 또한 쉽지 않다. 그리고 만약 학생들의 요구대로 개설 강의를 늘리고 여석을 추가한다고 해도 일부 인기 강의 혹은 교수님에게만 학생들이 몰려 학생 수가 미달인 강의는 폐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기덕 교수는 “강의 매매가 왜 벌어지는지 알면 이 문제를 해소해 나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수강 신청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구조이지만 학생들이 강의를 돈을 주고 사고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면 학교에서는 주도적으로 현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라는 뜻을 밝혔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폐강 기준 인원수를 완화하거나, 교양의 경우 소규모로 진행하는 방식이 강의의 질적 측면에서는 좋을지라도 수요가 많다면 미국의 대학교처럼 대강당에서 좀 더 많은 학생들이 들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마지막으로 “환경은 개선되지 않은 채 강의 거래만을 비판하고 학생들에게 도덕성만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의 책임을 학생들에게만 떠맡기는 것이다.”라고 현 상황을 꼬집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싶다

강의 거래는 수강 신청 기간마다 모든 학교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는 문제이다. 대학 생활에서 수강 신청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입생의 경우 학교에서 일괄적으로 수강 신청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학교에서는 강의 거래를 하는 학생들의 도덕성을 따지기 전에 내부 개선의 의지를 먼저 보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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