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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톡톡] 문신 Moon Shin: <우주를 향하여>
[김시아의 문화톡톡] 문신 Moon Shin: <우주를 향하여>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09.05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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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문신(Moon Shin, 1922~1995)이 국가와 국가를 넘나들었듯 문신의 작품 <우주를 향하여>(1985)가 전시회를 위해 마산에서 덕수궁으로 옮겨졌다. 9월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는 미술관의 근대미술팀과 창원특례시가 예술가 문신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2022.91~2023.1.19.)이다.

미술관에 들어가지 않아도 덕수궁에 입장하는 사람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분수 사이에 놓인 문신의 조각 작품 <우주를 향하여>를 만날 수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만들어진 하늘을 향해 우뚝 선 280x120x120cm 볼륨의 조각 작품이다. 화가에서 조각가로 변신한 문신은 1972년 파리 생 토귀스탱(Saint Augustin) 지하철 역에서 열린 <살롱 드 마르스 Salon de Mars>에 <태양의 사자 Lion de Soleil>라는 제목으로 같은 형태의 조각 작품을 석고조각으로 출품했었다. 이후,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로 다시 만들어 1985년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한 <현대미술초대전>에 출품한 이후,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작품은 현재 관람객을 다시 만난다.

 

문신, 우주를 향하여 측면, 1985, 스테인리스 스틸, 280x120x120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photo by Ⓒ KIMSia
문신, 우주를 향하여 측면, 1985, 스테인리스 스틸, 280x120x120cm,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 소장, photo by Ⓒ KIMSia

<우주를 향하여>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이라 거울처럼 바라보는 사람과 주변의 풍경이 비친다. 맑은 하늘일 땐 맑은 날씨를 비가 올 때는 비를 맞으며 회색 하늘을 담고 있다. 브론즈 재질과는 다르게 스테인리스 스틸은 견고한 표면 위에서 변화하는 날씨와 시간, 작품을 보는 사람을 담고 있다.

박혜성 학예사에 따르면, <우주를 향하여>를 제작할 당시 요즘처럼 많은 기구가 만들어지기 전이라 조각가는 일일이 손으로 깎고 두들기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이 잉태되기 전, 문신은 드로잉으로 작품을 상상하고 구현했다. 그러므로 4부로 구성된 전시회(① 파노라마 속으로/ ②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 ③생각하는 손:장인정신/ ④도시조각)에서 수많은 드로잉, 조각 작품, 그가 직접 사용했던 기구들을 볼 수 있다.

1부 <파노라마 속으로>는 문신의 <자화상>(1943)을 시작으로 초창기 회화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1922년 일본에서 조선인 탄광 노동자와 일본인 어머니의 차남으로 태어난 문신은 만 다섯 살에 아버지를 따라 귀국하여 마산에서 살며 어린 시절을 보내는데 열두 살 무렵 ‘태서명화’라는 화방에 취업하고 피카소, 세잔, 고갱, 반 고흐 등 서양 미술을 접했다. 이후, 1936년 열여섯 살에 밀항하여 일본에 간 후 도쿄 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고 간판 그림, 목공 등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어 공부하며 1943년 미술학교를 수료한다. 이 시기에 그린 <자화상>을 자세히 보면 하단에 알파벳 ‘mun’으로 서명했다. 이후, 1948년 작품 <고기잡이>, <잔설> 등을 보면 영어 ‘moon’과 붉은 낙관으로 찍은 한자어 ‘信’으로 조합하여 서명했다. 힘찬 고기잡이 어부의 리듬보다 <생선>(1950)과 <명태>(1950)의 정물화보다 필자의 눈에 들어 온 그림은 <낙원>(1952)이다. 아이들이 나무에 올라 과일을 따는 모습은 유토피아처럼 평화롭고 밝게 그려져 한국 전쟁이 일어났던 시대적인 상황과 완전히 대조된다.

1952년 결혼했던 문신은 4년 후 이혼하고 활동무대를 서울로 옮긴다. 이때 화가 한묵(1914~2016), 박고석(1917~2002) 등과 교류하고 1961년 프랑스 파리로 간다. 김환기, 유영국과 더불어 추상미술을 개척한 한묵도 같은 시기에 프랑스로 이주했다. 1961년에서 1964년 파리 근교에 위치한, 조각가 라슬로 서보(Laszlo Szarbo) 소유의 고성 리브넬성을 수리하며 조각가로 변신하게 되는 문신은 1965년 1월 귀국했다가 1967년 여름 프랑스로 다시 간다. 이때부터 나무로 만든 ‘추상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데, 전시회 관람자는 2부 <형태의 삶. 생명의 리듬> 전시실에서 곤충, 새, 식물 등을 모티프로 한 드로잉과 나무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문신은 작은 존재를 크고 견고하게 작품으로 만들었다. 3부 <생각하는 손 : 장인 정신> 전시실엔 주로 조각가 문신이 1980년 영구 귀국 후 만든 다양한 브론즈 조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가의 힘과 열정이 긴 시간과 노동을 통해 매끄러운 조각으로 탄생된 것을 볼 수 있다.

문신의 작품은 회화와 조각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최근식과 진종만(1931~2017)의 백자 위에 ‘채화’(채색 드로잉)된 도자기는 전통과 추상 무늬가 결합한 모습을 보여준다. “문신은 1973년부터 귀국할 때까지 프랑스에서 현대 도시 미학에 관심을 지닌 회화, 판화, 조각, 건축, 응용 미술 전공자들이 모인 단체 ‘포름 에 비(Forme et Vie, 형태와 삶)에 참여”했는데 3D로 프린팅하여 재현된 <도시 미학과 활력을 위한 탐구>를 보면 올림픽조각공원에 세워진 <올림픽 1988> 조각이 이때부터 움튼 것임을 알 수 있다. (『문신 文信: 우주를 향하여. 모노그래프 일시 一始』, 339쪽 참고) 이렇게 문신의 조형물은 실내에 담을 수 없는 규모로 도시와 자연 위에 세워진 조각이며 달과 우주를 향해 서 있다.

지구와 멀리 떨어진 우주는 전쟁과 분단이 없다. 문안신(文安信)으로 태어나, 화가 ‘Moon信’에서 조각가 ‘Moon Shin’으로 거듭난 예술가 문신(文信)은, 어릴 적, 식민지 땅이었던 달 밝은 마산 앞바다에서 원대한 꿈을 꾸었음이 분명하다. <생선>(1950)과 <바다>(1952), <해바라기>(1959)를 그리던 화가는 제2차 세계대전부터 1960년대까지 유럽에서 표현·발전된 ‘엥포르멜(Art Informel)’ 추상회화의 영향으로 점점 제목이 없는 수많은 <무제> 작품을 그리는 동시에 조각을 만든다. 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않고, 하나의 재료에만 만족하지 않은 예술가는 한 공간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듯 관람자들에게, 국경과 이념을 넘어선, 우주와 미래를 향하는 꿈을 꾸게 한다.

 

 

·김시아 KIM Sun nyeo

파리 3대학 문학박사. 대학에서 문학과 그림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문학, 예술, 그림책 매체를 넘나들며 글을 쓴다.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엄마』 『오늘은 수영장일까?』 등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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