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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당신과 나는, 다르다 – 영화 <경아의 딸>이 엄마를 설득하는 법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당신과 나는, 다르다 – 영화 <경아의 딸>이 엄마를 설득하는 법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2.09.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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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고 싶어 오랜만에 집에 왔다는 딸에게 엄마는 이 시간에 위험하게 왜 택시를 탔느냐며, 술까지 먹은 거냐며 타박을 늘어놓는다. 딸이 이 시간에 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엄마가 보고 싶었는지에 대해 엄마는 관심이 없다. 지금 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늦은 시간에 ‘딸’이 범죄가 일어날 수도 있는 ‘택시’를 탔고, 모든 위험의 시작이 될 수 있는 ‘술’을 먹었다는 것이 화날 뿐이다. 딸은 더 이상 웃을 수 없고, 엄마 역시 다르지 않다. 영화 <경아의 딸>에서 그려낸 이 장면은 이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딸들에게 강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면서 모녀 사이를 생각게 한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감정적으로 봉합하는 것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서 분명 알고는 있지만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펼쳐낸다. 영화는 감정으로의 경도를 극도로 경계하며 엄마와 딸 사이의 무수한 다툼이 어떤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엄밀히 말해 딸 연수(하윤경 분)에 대한 엄마 경아(김정영 분)의 반응은 폭력에 가깝다. 그리고 그 내면에는 분명 연수 역시 이해하고 있는 경아의 불안이 깔려 있다. 모녀 사이의 공감이 낳는 폭력, 즉 내가 앞서 경험했던 것들을 내 딸이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 자체가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따라 공감에 머무는 시간을 단축시키고 폭력은 길어진다. 내가 경험한 그때가 힘들었다면 그래서 이것을 내 딸까지 겪지 않길 바란다면, 딸의 상황보다 ‘어떤 식’으로라도 막아서는 것이 (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스스로를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탓이다. 경아는 연수가 자신과 다르게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러우면서도, 혹시 모를 위험 속에서 그가 자신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모순을 끊임없이 발동시킨다. 경아의 생각이 끝내 기우는 쪽은 나와 딸이 여성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 험한 세상에서 스스로 조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촘촘하게 결합되어 엄마의 폭력을 별것 아닌 잔소리로 내려놓는다. 그러나 과연 연수는 경아의 고통을 공유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둘은 분명 다른 삶을 살고있는 다른 사람인데 말이다.

 

두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여성으로 먼저 발을 뗀 이는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갈 것 같은 불안을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그가 느끼는 불안은 세상이 변했다거나, 딸이 지금 놓인 상황이 자신과는 다르다는 점을 되짚거나 깨달을 시간을 차단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과 부딪히는 딸들은 엄마의 간섭에 ‘사랑’이 담겨있다고 믿기에 쉽게 반발을 죄책감으로 치환시킬 수밖에 없다. 짜증나긴 하지만 엄마의 걱정이 틀린 말로만 볼 수 없는 상황은 내 주변에, 그리고 나에게 분명하게 벌어지고 있기에 지긋지긋한 반복을 쉽게 잔소리라 쳐낼 수도 없다. 게다가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나를 키워온 엄마에 대한 연민까지 덮어쓴다면 딸들의 죄책감은 나를 숨기면서까지 그의 믿음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 그의 말을 잘 듣고 그의 희망을 착실하게 충족시키면서 조금씩은 그가 모르는 비밀을 만들어가는 것이 딸들이 엄마에게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경아의 딸>은 이 복잡하게 얽힌 감정들을 경유하여 경아와 연수 사이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경아에게 교사인 딸 연수는 세상의 전부이며 그만큼 지켜야 할 존재로 놓인다. 이로 인해 종종 과한 경아의 행동은 연수의 이해로 넘어가고, 이는 엄마를 이해하는 딸로 인해 적절히 이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모녀처럼 보이게 한다. 그리고 이 관계는 연수의 전 남자친구의 동영상 유출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다시 만날 것을 요구하던 연수의 전 남자친구는 연수가 확실히 자신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연수의 연락처에 있는 이들에게 동영상을 보낸다. 경아에게 도착한 영상에는 자신이 전혀 몰랐던 딸의 남자친구라는 존재, 그리고 딸이 독립한 집에서 (분명히 아무도 없었다고 확인시켜 주던 그곳에서) 그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이를 확인한 경아에게 왜 이렇게까지 연수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자신에게 숨기려 했는지를 생각할 겨를 따윈 없다. 자신이 대학생인 된 딸이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었을 때 어떻게 했는지, 즉 이 사태에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을 수도 있다는 과거를 떠올릴 생각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 사랑스러웠던 딸은 이제 ‘걸레’처럼 보이고, 경아는 연수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경아가 연수가 자신을 속였다는 점보다 더욱 분노했던 것은 이 동영상이 연수의 동의 하에 촬영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즉 연수가 이 영상을 찍었다는 것은 여태까지 자신이 말해왔던 모든 것, 그러니까 문제가 될 수 있는 상황은 여성이 조심하면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니 그렇게 방지해야 한다는 그의 믿음을 깨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하는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기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며, 잘못한 이는 동영상을 함부로 유출한 그라는 점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으로 <경아의 딸>이 선택한 동영상 유출이라는 사건은 두 세대의 여성에게 행하는 폭력이 변화한 것이라는 식의 해석을 넘어선다. 영화는 연수의 태도를 통해 이를 찍은 이보다 유출시키는 이가 잘못이라는 점, 그러니까 사랑을 남기는 방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를 함부로 이용하는 이가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하게 짚고 있기 때문이다. 경아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연수의 선택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연수는 동영상 유출을 대하면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에 집중한다. 그가 외부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이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것으로 자신의 삶이 망가뜨릴 수 없다는 점은 명확히 한다. 그는 종종 불안에 무너지면서도 현실을 직면하고, 자신의 일상을 살며 고민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영화가 동영상 사건 이후에 집중하는 부분이다. 영화는 경아가 연수가 처한 현재가 자신이 살아온 때와 얼마나 다른지를, 그렇기에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연수가 얼마나 힘들고 또 굳세어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을 배치한다. 연수가 살아가는 현재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조심하거나 참아내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과 직면하는 곳이다. 연수의 지금은 자신과 맞지 않는 이와 헤어지는 것만으로 삶 자체를 망가뜨리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유출된 동영상은 단순히 입소문을 단속하는 수준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을 만큼 퍼져나가는 것이며, 돈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이처럼 경아가 결코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피해의 가능성 속에 자신의 딸 연수가 살아가고 있다. 연수의 현재는 자신의 과거를 투사하여 바라보기엔 너무도 잔인한 곳이며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한 것이다. 경아는 연수의 날들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나를 끊임없이 가두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엄마와 큰 다툼 후 원룸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연수와 다르게 연수 남자친구 부모의 카페, 친구의 식당, pc방, 유출 동영상 삭제 업체 등 경아의 공간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은 결국 경아가 연수의 지금을 알아가기 위한 분투의 배치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경아의 딸>이 남자친구와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는 고등학생들을 등장시키는 것 역시 이와 비슷한 경로에 있다. 지금의 연애는, 사랑은, 그리고 만남은 ‘엄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진행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고민을 결코 엄마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며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에게 간신히 입을 떼는 식이다. 그들은 많은 이들을 만나기도, 생각지 못한 때에 성관계를 요구받기도 한다. 어떻게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어디에도 이야기할 수 없는 이 문제들은 늘 단도리하는 엄마에게는 더더욱이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연수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위태로운 딸들의 서사는 설사 그것이 위험한 것이더라도 나보다 더 나를 엄격하게 대하는 엄마 앞에서 그저 숨겨야 하는 것이었다. <경아의 딸>은 연수가 경아의 눈을 피하기 위해 과거에 겪었을 일들을 지금의 학생들을 통해 이야기하며 다시금 경아가, 그리고 엄마가 알 수 없었던 현실을 상기 시킨다.

이 모든 것을 겪은 후 경아가 내린 결론은 연수가 자신처럼 참아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의 눈이 두려워 산부인과도 제대로 가지 못했고, 그래서 아직까지도 지병을 달고 사는 자신처럼 다 ‘내 탓’으로 돌리는 것으로는 무엇도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경아는 연수의 강경한 의지를 응원한다. 그것이 설사 누군가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해도, 혹시 모를 위험에 다시금 노출되는 것이라 해도 말이다.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탓도, 그렇다고 엄마의 탓도 아니라는 연수의 한 마디는 결국 연수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한 한 마디였을 것이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말을 내뱉는 이, 그리고 그곳을 살아가는 이, 그것으로 딸과 엄마는 분리된다. 그렇다. 엄마와 딸은 서로 다른 개체이며 그렇기에 서로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딸은 엄마의 과거를 투사하며 불안해 할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일을 겪은 후 경아가 내린 결정은 딸과의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경아는 자신이 이사를 할 것이라는 점을 딸과 상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네가 편해질 때 엄마 집에 방문해줄 수 있겠느냐며 조심스레 의사를 물었다. 마치 손님을 초대하는 듯한 이 태도는, 아무 때나 전화해 왜 집에 오지 않느냐고 닦달하거나 명령조로 집으로 호출했던 과거와는 분명하게 달라진 모습이었다. 적당한 거리, 이것은 서로의 삶을 살면서 비슷한 어려움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열쇠일 것이다. 너와 내가 살아갈 삶이 설사 비슷할지라도 너와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으로 연수는 더 이상 경아의 딸로만 존재하지 않으며, 경아 역시 딸만을 바라보는 이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경아의 딸>은 기존 모녀를 그리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어찌보면 매우 냉정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모녀 관계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미처 몰랐던 엄마 혹은 딸의 맘을 깨닫고 화합되는 쪽을 택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말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타의 작품들은 화합의 계기로 병을 배치했고, 사실상 거부하기 힘든 극단의 설정으로 오랜 감정을 덮어놓은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게다가 결말은 눈물을 향하면서 모녀가 어떤 화합을 이루었는지 그것이 과연 제대로 서로를 치유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 역시 덮고 있었다. <경아의 딸>은 이렇게 환상처럼 구성되어 온 수많은 모녀 관계의 내부를 들여다보며 엄마와 딸,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엄마가 낳았더라도 딸은 같지 않을 거라고. 같은 길을 가지도 않을 것이며, 갈 수도 없을 거라고.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경아의 딸>(2022)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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