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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는 좋은 사람인가?' 의심될 때 <좋은 사람>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나는 좋은 사람인가?' 의심될 때 <좋은 사람>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2.09.19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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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문을 나서면서 좋은 사람에 관한 오만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사람>은 좋은 영화다.

 

좋은 선생과 도난 사건

반에서 지갑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담임인 경석은 학교 복도에 설치된 CCTV로 체육 시간에 아무도 없는 교실에 혼자 들어가는 세익을 확인한다. 하지만 경석은 스스로 자백하고 반성하기를 바라는 선한 의도로 학생들 모두에게 눈을 감고 책상에 엎드리게 한다. 그리고 “사람은 잘못하고 실수하고 살아. 근데 중요한 건 잘못한 건 인정하고 되돌리는 거야. 너희들이 그 용기만 있으면 몇 번을 잘못하고 실수해도 좋은 사람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지갑을 훔쳐 간 학생은 손을 들라고 말한다. 경석은 세익을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자신은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좀 더 공정한 절차를 밟으려 한다.

 

경석은 돈을 잃어버린 학생에게 범인 대신 돈을 돌려주기까지 한다. 선의가 언제나 옳은 건 아니다. 자기는 선의라고 판단해 한 행동이 죄를 지은 사람을 명확히 밝히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사건을 해결해야하는 객관적인 과정을 감정적으로 흐리게 한 결과를 낳았다.

 

확증편향

경석에게 동욱이 찾아온다. 세익이가 빈 교실에서 지갑을 도난당한 광렬이 교복을 뒤지고 있는 걸 봤다고 말한다. 경석은 자신에게 한 얘기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세익이 아닐 수도 있고 설혹 맞다 하더라도 선생인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말로 동욱을 돌려보낸다. 경석은 동욱의 말이 옳은 건지 좀 더 객관적인 태도로 검증했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이미 세익에 대한 의심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세익을 상담실로 부른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건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정황 증거로 봐서 충분히 의심할만하고, 거기다 상대가 충분히 해명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경석은 세익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되고 빈 교실에서 교복을 뒤지고 있었다는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를 준 학생의 말을 듣자 세익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좋은 선생으로서 경석은 세익을 좋은 말로 자백하게 하고 좋은 선생답게 용서해주기 위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세익은 백지를 제출한 뒤 쿵쿵거리며 교실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

세익은 화가 났다. 자기는 범인이 아니라고 했는데, 선생님은 세익이 억울할 수 있다고 말은 하면서 정작 자기 결백을 증명할 내용을 종이에 꽉 채워 쓰라고 말한 것이다. 아무 일도 안 했다는 사람이 무슨 말을 쓸 수 있는가.

 

좋은 아빠와 교통사고

경석에게는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 말고 또 다른 욕망이 있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혼했고, 아직도 자신에 대한 전 부인의 신뢰가 낮은 상태고, 어린 딸 윤희는 자신과 함께 있는 것조차 싫어한다. 윤희를 돌보기로 약속한 저녁시간, 경석은 윤희에게 세익을 혼자 남겨 둔 상담실로 함께 가자고 거듭 말하지만 아빠와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한 윤희는 계속 울고 있다.

 

어린 딸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상황 다시 말해, 자신을 아빠로 인정하지 않는 딸에게 화가 난 경석은 어린아이를 혼자 차에 두고 떠난다. 당연히 좋은 아빠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인정 받지 못했을 때의 자괴감 등의 인정욕구는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경석은 감정이 앞서 아빠의 역할, 즉 어린아이를 차에 혼자 두고 내리면 안 된다는 보호자 역할의 기본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두 사건의 유비

캄캄한 밤에 차 안에서 혼자 울고 있던 딸 윤희가 없어졌다. 윤희는 교통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와 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한 고등학생이 갑자기 아이를 던지고 도망을 갔다고 진술한다. 경찰은 근처 CCTV에 찍혀있었다며 사고 목격자로 세익을 데려간다. 운전자가 말한 고등학생이 세익이었다. 세익은 윤희와 함께 있기는 했지만, 지갑 도난 사건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민 게 아니라고 한다.

 

경석은 아내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경석이 세익을 막연히 의심하듯 아내 지현은 경석을 의심한다. 경석은 “넌 처음부터 누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관심도 없는 거야. 뭐가 됐든 나한테 뒤집어씌우고 싶은 거지.”라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한다. 상대에게 나쁜 사람, 모난 사람으로 취급받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다. 경석도 좋은 선생님,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경석은 선한 의도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가 그렇듯 그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 잘 모른다.

학생인 세익도, 딸인 윤희도, 아내인 지현도 마찬가지다. 선생으로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경석은 선한 의도를 가진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정작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상대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좋은 관계는 맺기 어렵다. 그만큼 상대도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관계의 폭력

경석에게 특히 가족은 서로를 아프게 하는 관계이다. 자주 아프게 하는 관계는 한쪽에서 아무 생각이 없다면 혼자 풀려고 애써서 노력할수록 더 엉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사람에게 당신이 필요 없다면 잠시 관계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당장은 끊어진 관계가 아플 수는 있어도 거리를 두어야 할 관계를 억지로 붙들어 상처를 덧입혀 치유할 수 없는 흔적을 남길 필요가 없다.

 

관계에도 신호등이 있다. 파란불에서 빨간불이 켜지기 전에는 주황색 불이 들어온다. 관계에 대한 무모한 자신감, 관계에 대한 안전 불감증, 좋은 아빠라는 자신감, 이런 복잡 미묘한 감정이 뒤엉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아이를 차 안에 혼자 방치하게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 거리는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유동적으로 서로 부딪치지 않을 만큼의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너무 가까워 대처할 시간이 짧다면 충돌할 수밖에 없다. 부딪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부딪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야 한다. 안 맞는 게 아니라 잘 몰라 부딪치기 때문에 제대로 알아가는 노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선생님과 좋은 아빠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모두에게 친절하고, 모두를 가까이하지 않아도 된다. 남이 만들어낸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가며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지라도 경석은 분명 좋은 사람이다. 우리는 조건문이 성립되면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경석은 존재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교문을 나서는 그에게 사랑하느라, 지켜내느라, 그리고 아파하느라 고생했다는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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