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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쉬운 문화적 전유 그러나 여전히 귀여운, <티켓 투 파라다이스>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쉬운 문화적 전유 그러나 여전히 귀여운, <티켓 투 파라다이스>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1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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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우주의 원더 키디>의 시대, 심지어 거기서 2년을 더 나아간 지금도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연애와 결혼인 듯하다. 물론 애니메이션과 달리 세상은 아직 달도 온전히 정복하지 못했고, 우주 왕복선도 완성하지 못했으며, 블랙홀을 자유롭게 누비는 로봇도 발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건 현재 인간의 문명은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이 애니메이션이 TV에 방영된 33년 전보다 훨씬 더 진보했으며, 인류의 생활방식은 사고방식의 변화와 함께 큰 지각변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격세지변 속에서도 여전한 관심사, 연애와 결혼. 그 나이가 되도록 왜 결혼을 안 했느냐, 아직도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 등 무수한 사람들이 던지는 이 낡고 진부한 질문들을 듣고 있노라면, '아마 내 앞의 이 인류들은 결혼이 인생 최대의 과업이었고, 그 과업을 이뤘기에 지금 당장 여기서 야금야금 행복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행복해 죽을 것 같으니까 이 무례한 질문도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마구 던지고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이토록 낡아 빠진 질문이 적어도 개인적으로는 십수 년, 인류사적으로는 세기를 거듭하며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을리 만무할 테니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이 연애와 결혼에 대한 질문들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 데에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티켓 투 파라다이스>는 바로 그 이유 중 하나에 관한 이야기다. 뻔하지만 그래도 보고 나면 참 귀여운 이 이야기는 한 이혼 커플이 딸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며 서막을 알린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대형 로펌 입사를 앞둔 릴리(케이틀린 데버)는 단짝 친구와 함께 여행 온 발리에서 우연히 그데(막심 부티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둘은 바로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혼 부부 조지아(줄리아 로버츠)와 데이빗(조지 클루니)은 딸 릴리가 자신들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염려하며 이 결혼을 막기 위해 티격태격 발리로 향한다. 조지아와 데이빗이 릴리와 그데의 결혼식에 사용할 반지를 훔쳐 내며 둘의 작전은 성공하는 것 같지만, 운명의 장난이기라도 한 듯 상황은 딸이 아니라 오히려 말다툼만 일삼던 자신들에게 더 집중하게끔 펼쳐진다.

이렇게 <티켓 투 파라다이스>는 그 흔한 반전도 없이 통속적 로맨스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충분히 예상 가능한 스토리는 아름다운 발리의 풍광 속에 그만의 지루함을 일갈시키고, 꼭지에 흰 곰팡이 핀 토마토처럼 신선도가 떨어지다 못해 눈과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로 불 보듯 뻔한 대사는 두 명배우, 줄리아 로버츠와 조지 클루니의 스타성 덕분에 용서 받는다. 참고로, <티켓 투 파라다이스> 속의 줄리아 로버츠와 조지 클루니는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신경질이 날 정도로 여전히 아름답고 멋있었다. 이처럼 심장 멎을 듯한 발리의 풍광과 두 헐리우드 배우의 스타성은 낯선 인도네시아어와 그 나라의 이국적인 풍습을 덧입고 다행스럽게도 구태의연한 헐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심폐소생술이 되어 다소나마 신선함을 부여하는 데 일조한다.

 

물론, 이국의 문화를 영화화할 때에는 해당 문화권을 타자화함으로써 발생하는 잘못된 재현과 문화적 전유라는 위험 요소가 늘 존재한다. 이 점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클리셰를 인도네시아의 이국적 풍습 나열로 극복하려는 <티켓 투 파라다이스>의 시도는 다소 위험하고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제대로 된 이해가 아니라 이국적인 속성에만 기댄, 그야말로 동양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 그 자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티켓 투 파라다이스>에서 나타나는 이 얄팍한 문화적 전유는 명백한 오점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덕분에 이 빈약한 서사와 그 진행 과정에 개연성이 부여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겠다.

 

일례로, 극중 그데는 해초 양식장에서 해초를 뜯어내는 작업을 하며 릴리에게 자신의 철학 한 가지를 나눈다. 발리라는 천혜의 환경 안에서 성장하며 깨달은 자신만의 믿음. 바로 자연과 신 그리고 인간의 조화가 풍요를 낳는다는 것이다. 더 얻어야 살아남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욕심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는 현대인의 삶을 떠올릴 때, 그렇게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 파괴한 자연과 그 파괴로 파생되는 지금의 위기를 돌아볼 때, 과연 그데의 믿음은 일리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은은 이 여행이 끝나면 변호사로서 다시 무한의 경쟁 사회로 돌아가야만 하는 릴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며 그데와의 관계에 대한 신뢰를 형성해 준다. 또한, 그데의 아버지는 아들과 릴리의 결혼을 축하하며 축복받는 혼인을 위해서는 적절한 장소(right place)와 적절한 상황(right circumstance) 그리고 적절한 시기(right timing)가 합치해야 한다는 인도네시아인들의 믿음을 언급하기도 한다. 영화는 이러한 인도네시아인들의 철학과 믿음이 어떻게 조지아와 데이빗으로 대표되는 이방인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그들의 심경 변화 과정으로 재현한다. <티켓 투 파라다이스>에서 보여주는 이러한 젊은 남녀의 신뢰 형성 과정과 관계가 깨진 이혼부부의 신뢰 회복 과정은 명백히 진부하다.

 

그러나 교훈을 주고받는 주체와 객체의 측면으로 보면 기존에 헐리우드가 자행한 오만한 방식 즉, 자신들은 가르치는 주체여야 하고 그 외는 모두 배움을 받는 객체여야 한다는 '의식적인 무의식'을 의도적으로 지양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동남아시아 지역학 전문가가 아닌 이상 <티켓 투 파라다이스>에서 언급된 이러한 인도네시아인들의 믿음이 과연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헐리우드 제작사의 계산된 상술인지는 알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대개 이국적인 풍광에서 펼쳐지는 로맨스 속 캐릭터들은 본국 내지는 본토로 돌아가려는 귀소 본능을 전제하거나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열망을 담고 있는 데 반해 이 영화는 그 반대라는 점이다. 또한, 릴리나 조지아 그리고 데이빗 등 주요 인물들이 경험하는 깨달음의 순간에서도 헐리우드의 겸손해진 모습이 포착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티켓 투 파라다이스>가 지금까지 헐리우드가 제3세계를 타자화해 온 관습을 극복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그것은 '단순 재현'을 넘어서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칭찬할 만하고 환영받을 만하다.

글을 정리하며, 조지아와 데이빗은 바로 그들 즉, 그데와 그데의 아버지가 전수한 믿음으로 새 세상에 뛰어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 순간 둘은 마침내 하나가 되어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든다. 아마도 바로 이것이 인류가 그토록 연애와 결혼을 열망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아는 것도 부족한 낯선 곳으로 가기 위해 상어가 득실거릴지도 모를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면, 혼자도 충분하겠지만 그보다 당장 손을 맞잡고 함께 뛰어들 누군가가 곁에 있을 때 더 수월하다. <티켓 투 파라다이스>는 그렇게 인간은 혼자일 때보다 둘일 때, 그리고 둘일 때보다 셋, 넷일 때 없던 용기도 더 쉽게 발휘할 수 있다고 전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2022. 10. 12. 개봉)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대학에서 강의하며 공연기획 '최영주의 in클래식' 전속 스토리 작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담화분석 및 스토리 문법과 문학/서사치료 연구, 한국문화교육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 비평 대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만화평론상,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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