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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사회 리뷰...<자백> - 흥미로운 스토리, 아쉬운 플롯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시사회 리뷰...<자백> - 흥미로운 스토리, 아쉬운 플롯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19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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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히 진격하는 스토리, 길 끝에서 잠시 갈 길 잃은 플롯, 관성 붙은 스토리의 추진력과 안정적인 연기로 극복
네이버 제공

장르적으로, 미스터리와 스릴러는 유사해 보이지만 관객들의 동일시로 명백히 구분된다. 보통 미스터리에서는 관객들이 범인을 찾는 주인공과 동일시가 이뤄져 사건을 추리하고 파헤치는 과정에 동참하는 반면, 스릴러를 보는 관객들은 언제 습격당할지 몰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극 중 피해자와 동일시가 쉽게 이뤄진다. 이 점에서 영화 <자백>(윤종석, 2022)은 미스터리 장르로,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키며 진범을 둘러싸고 점입가경으로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추리극이라 할 수 있다. 원작은 파격적인 소재와 추진력 있는 스토리로 동시대를 비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스페인 영화이다. 진실조차 의심하게 만드는 인간의 독살스러운 위선과 이기심으로 가득한 이 이야기는 교외의 어느 호텔에서 시작된다.

전화 협박을 받고 한 호텔방으로 찾아든 세희(나나)와 민호(소지섭). 잠시 후 갑작스럽게 경찰이 출동하고, 함정에 빠졌다고 생각한 둘은 급히 호텔방을 나서려 한다. 그 순간 민호는 괴한으로부터 습격을 당해 의식을 잃었다가 경찰의 거센 노크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희는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고, 괴한은 발자국도 남기지 않은 채 감쪽같이 사라졌다. 밀실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모든 의심의 눈초리는 민호를 향하고,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민호는 유능한 변호사 신애(김윤진)를 고용한다. 그리고 신애가 민호의 무죄 입증을 위해 진실을 추궁하는 순간 또 하나의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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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자백>은 전형적인 미스터리 장르를 표방한다. 기본적으로 추리극은 예리한 대사, 냉정한 묘사, 강렬한 서사가 생명력이다. 말하자면, 각 인물들이 칼날 같은 혀로 쏟아내는 거짓 혹은 진실들이 차갑게 그 사실을 숨겨야만 마침내 허를 찌르는 미스터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깃든 풍부한 상징과 표상은 인간의 위선을 드러내고 현실을 비꼬는 사르카즘을 완성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 한국의 추리극은 본격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거기에 근접해 가는 프로토타이핑 작업에 가까웠다. 미스터리를 온전히 미스터리로 풀지 못한 채 방황하던 서사에 스릴러를 급조하는 방식은 아가사 크리스티나 아서 코난 도일의 입장에서 보면 직무유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 <자백>의 전반적인 전개를 이끌어가는 신애와 민호의 대사는 충분히 예리했고, 마스터 쇼트로 담아낸 각 인물들을 단시간에 빈번한 커버리지 쇼트로 포착한 카메라의 시선은 분명히 냉정했다. 그것은 신애와 민호가 있는 공간 즉, 눈 내리는 산장을 배경으로 더욱 날이 섰고, 서슬이 퍼랬으며, 덕분에 진실의 향방은 누구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속도감 있게 전진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자백>의 표피라 할 수 있는 근본 스토리는 멈출 수 없는 고속열차처럼 시종일관 맹렬히 진격하고, 그렇게 넘치는 속도감은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게 유지된다. 스페인 원작에서는 속화(速話)처럼 쏟아지는 스페인어가 이러한 스토리의 속도감에 시너지를 주었다면 <자백>에서는 김윤진과 소지섭이라는 두 스타 배우의 연극 같은 연기 대결이 그것을 대신한다. 여기에 조연으로 등장한 나나와 최광일의 경이로운 연기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스토리에 핍진성과 설득력을 부여하고, 시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심리에 따라 웜톤과 쿨톤을 오가는 화면의 색감은 극의 몰입도와 흡입력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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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잘 유지되던 밀실 추리극은 아쉽게도 극의 종반에 각 캐릭터를 향한 감독의 시선이 중립성을 잃고 냉정함을 상실하면서 방황하게 된다. 사견이지만, 미스터리 장르에서 눈물의 활용은 정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한편으로는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한 방편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단순하고도 짧은 순간으로 지금껏 유지해 오던 캐릭터성이 무너지고, 결국 각 캐릭터가 배치된 플롯 또한 완주를 불과 몇 미터 남겨둔 채 길 끝에서 갈 길 잃고 방황하게 되는 더 큰 위험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자백>은 그 직전까지 예리한 대사, 냉정한 묘사로 폭주하듯 진격해 온 덕분인지, 거기에 붙은 관성에 힘입어 마지막까지 어느 정도 추진력을 유지하지만 그것만으로 강렬한 서사를 완성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대학에서 강의하며 공연기획 '최영주의 in클래식' 전속 스토리 작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담화분석 및 스토리 문법과 문학/서사치료 연구, 한국문화교육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 비평 대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만화평론상,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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