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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시뮬라크르 세계의 박찬욱‘들’ -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김민정의 문화톡톡] 시뮬라크르 세계의 박찬욱‘들’ -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10.28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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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공간, 이미지, 음악, 의상, 소품 등등 박찬욱 영화의 모든 것은 완벽한 의도 아래 설계되어 독창적인 미학을 구현해낸다. 표면에 드러난 주제 의식은 물론이고, 심층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박찬욱 영화를 즐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지적 유희다. 한 마디로, 미장셴은 박찬욱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박찬욱은 왜 미장셴에 몰두하게 된 것일까. 도대체 왜.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 15년 동안 감금된 오대수는 자신을 가둔 사람을 향해 당신이 누구냐고 끈질기게 묻는다. 그러자 이우진은 우매한 학생을 꾸짖듯 말한다. “내가 중요하지 않아요. 왜가 중요한 거지.” 오대수는 이우진을 찾기 위해 세상의 모든 군만두를 다 먹어버릴 기세로 돌아다니지만 중요한 것은 군만두가 아니다. ‘왜’다.

세상의 많고 많은 음식 중에 왜 군만두일까.

군만두는 맛있다. 튀기면 무엇이든 맛있다. 심지어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 내용물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튀기면 무엇이든 맛있으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군만두는 굽지 않고 튀겨서 만든다. 그러니까 오대수가 먹은 건 굽지 않은 군만두, ‘가짜’ 군만두다.

이우진은 왜 오대수에게 15년 동안 가짜 군만두를 먹였을까. 15년 동안 5,457개의 똑같이 생긴 ‘가짜’ 군만두를 매일 먹고 먹고 또 먹고… 감금된 방에서 오대수가 가짜 군만두를 계속해서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가짜 군만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어느새 우리는 그렇게 또 한 명의 ‘오대수’가 된다. 잊지 말자. 박찬욱은 미장셴의 대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장셴이 아니다. 무엇이든 튀기면 맛있어지니까. 중요한 것은 ’왜‘다. 박찬욱은 왜 5,457개의 가짜 군만두를 튀긴 것일까. 왜 우리에게 5,457개의 가짜 군만두를 먹인 것일까.

 

튀김의 기술

박찬욱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영화 안에 내재한 이야기의 가치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스토커>는 원작이 따로 있고, <친절한 금자씨>를 비롯한 몇몇 영화는 신화적 원형의 변형으로 읽힌다. 다시 말해, 박찬욱 영화의 대표작들은 기존에 있는 이야기를 ’낯설게‘ 한 것이다. 일종의 ‘군만두’ 작법이랄까. ‘튀김’으로써 새로운 맛을 재창조해낸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야기의 오리지널리티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5,457개의 가짜 군만두, 바로 ‘튀기기’다. 최근작 <헤어질 결심>이 ‘절정의 미장셴’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한 줄의 로그라인이 전체 줄거리가 될 수 있을 만큼 단조로운 스토리를 가진다. 만남과 이별로 이어지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로맨스 서사. <헤어질 결심>은 서사 예술의 정체성을 고수해온 고전적 정의의 영화를 향한 박찬욱의 이별 통보다. 이름하여,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튀기면 무엇이든 맛있으니까. 누구보다 잘 튀길 자신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미장셴 대가의 손길이 닿으면 어떤 이야기든 ‘힙’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완벽한 두께의 튀김옷과 완벽한 온도의 기름. 식자재의 신선함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분자요리에 버금가는 정교한 기술로 신묘한 튀김 요리를 선보이는 사람, 그가 바로 박찬욱이다. 무엇이든 맛깔나게 튀기는 튀김의 기술. 이것은 영화감독 박찬욱의 자신감일까, 아니면 신념일까. 독보적인 영상 미학을 구축해낸 박찬욱. 그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 그것은 화려한 미장셴에 감춰진 박찬욱의 민얼굴이다.

 

올드보이 박찬욱

지금의 박찬욱을 있게 한 칸영화제 첫 수상작 <올드보이>를 기억하는가. 주어진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려고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오대수에게서 우리는 박찬욱 감독의 ‘옛’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새로움을 향한 강렬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던 ‘올드보이’의 초췌한 몰골을.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15년 동안 감금된 방에서 탈출하려고 온 힘을 다한다. 그런데 그 방에는 창문과 시계가 없다. 격자무늬 패턴 벽지가 꼼꼼히 발라진 그 방에서는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멜로디가 울리면 가스가 나오고, 가스가 나오면 잠이 오고,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깎여 있다. 옷이 갈아입혀져 있다. 방안이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또 멜로디가 울린다.

그곳에서 시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다. 그러므로 어제는 어제가 아니고 오늘은 오늘이 아니다. 15년 만에 오대수는 감금된 방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그의 탈출은 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우진은 오대수를 처음 납치한 그때 그곳으로 그를 가져다 둔다. 공중전화 부스 골목. 지금은 아파트 공사장이라 같은 장소라는 걸 알아채기 어렵지만, 그때 그곳이 맞다. 여기가 저기고 저기가 여기다. 쳇바퀴와 같이 돌고 도는 순환적 시공간에 갇혀 오대수는 깨닫기를 강요받는다. 당신은 절대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모든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그는 감금된 방에서 탈출하려고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였다. 그는 한 여자를 사랑하였으나 그녀는 그의 친딸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모든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나아가지만 결말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비극을 계획한 이우진이 말하지 않았던가. “노루가 사냥꾼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친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감금된 방에서 나와 오대수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일식집이다. “살아 있는 게 먹고 싶다.” 그의 얼굴에 달라붙어 있던 산 낙지의 꿈틀거림을 떠올려보자. 그가 쓰러진 후에도 계속 움직이던 무한의 생명력을. 오대수는 사랑하는 여자가 딸이란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오대수는 번번이 탈출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계속 시도하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이 돌고 도는 순환적 시공간에서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오대수의 삶에 우리가 읽어낼 것은 절망과 좌절이 아니다.

언덕 위에서 돌이 굴러떨어져도 다시 그 돌을 밀어 올리고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시지프’처럼, 수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온 신화 속 그 ‘올드보이’처럼, 그렇게 5,457개의 가짜 군만두를 ‘박찬욱’은 튀기고 튀기고 또 튀기면서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의 무의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였으리라. 인간 존재의 허무를 견뎌보려고 고군분투하였으리라. 오, 그대의 이름은 올드보이.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영화 <올드보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올드보이’ 박찬욱의 영웅담이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대수는 희로애락이 지워진 망각의 세계로 걸어가 원형적 인간 시지프의 삶을 지속해 나간다. 하지만 그건 영화 안에서의 일 아닌가. ‘밖’은 어찌할 것인가. 오대수는 기억하지 못해도 또 한 명의 올드보이 ‘박찬욱’은 어찌할 것인가. 박찬욱 영화 <올드보이>를 본 다른 올드보이‘들’은 또 어찌할 것인가. 오대수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이쯤 되면 5,457개의 가짜 군만두를 먹은 것이 오대수인지 우리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감금된 방에서 나온 오대수가 마주한 사람은 방에 갇혀 있던 감시화면 속 또 다른 16명의 오대수다. “더 넓은 감옥”에서 그는 ‘오대수’라는 이름까지도 빼앗겨 버린다. 그는 오대수이면서 오대수가 아니다. 16명의 올드보이, 5,457개의 가짜 군만두, 그리고 언덕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무한개의 돌 뭉텅이.

시뮬라크르의 세계에서 진짜와 가짜, 오리지널과 복제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이 모든 상황을 전지적 관점에서 내려다보던 이우진의 독백은 축복과 저주 사이에 자리를 잡는다. “누나와 난 다 알면서도 사랑했어요. 너희도 그럴 수 있을까.” 박찬욱 영화에서 주인공은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 15년 동안 감금된 채 그동안 자기가 살아온 나날들을 되짚어가며 일기를 쓰는 오대수는 없다. 나와 마주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기록하는 ‘가짜’ 나만 있을 뿐이다.

아우라의 몰락은 예견된 일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운명을 극복하지 않고,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운명 그 자체를 향유하는 것. 나의 이야기를 남기기 위해 타인의 이야기를 기록해야만 한다. 타인의 이야기이면서 나의 이야기인, 그래서 타인의 이야기도 나의 이야기도 아닌 그 이야기,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면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닌 그 이야기만이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굿바이, 올드보이.

 

박찬욱의 박찬욱

‘올드보이’와 헤어진 박찬욱은 거침이 없다. 원본이 없는 복제. 원복과의 일치가 필요 없는 복제. 시뮬라크르 놀이에 깊이 빠져든다. <헤어질 결심>의 ‘해준’과 ‘서래’는 서로의 진심을 믿고 의심하길 반복하며 스마트워치로 서로를 기록한다. 그들 사이에 나와 너, 우리의 이야기는 없다. 그와 그녀, 그들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박찬욱은 그들을 구심점 삼아 여러 겹의 만남과 이별을 포갠다. 

해준과 아내 정안의 이야기는 정안과 직장동료 이주임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서래와 첫 번째 남편 기도수의 이야기는 서래와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홍산호와 미지의 이야기는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해준과 수완의 이야기는 해준과 서래의 이야기와 겹쳐지고… 

서로 조금씩 차이를 만들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시뮬라크르의 세계에서 주인공도 메인 스토리도 없다. 올드보이가 사라진 자리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미장셴의 향연. 그리고 서사적 개연성이 아닌 이미지의 유사성에 근거한 담대한 장면 전환. 찻잔에서 떨어지는 물이 링거 수액으로 연결되고, 엑스레이 속 흑백 손가락은 아내에게 해준 팔베개의 꿈틀거리는 손가락으로 연결되고, 불타는 사진은 밝게 빛나는 백열전구의 필라멘트로 연결되고… 

박찬욱은 더 이상 탈출을 꿈꾸지 않는다. 더 많은 방을 만들어 방과 방 사이를 유랑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넓히고, 그 안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유사한 이미지를 여러 번 반복할 때 얻어지는 모호성과 그에 따른 심리적 해방감이다. 

<헤어질 결심>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부조리한 세계를 향한 작별 인사이자 진리 없음이 그곳의 절대 진리임을 공표하는 혁명적 선언이다. 선과 악, 시와 비, 원인과 결과, 만남과 이별, 주체와 타자, 실재와 시뮬라크르가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계속 물고 물리는, 모든 질서가 사라진 근원적 무(無)의 상태. 그렇게 진리는 사라진다. 진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진리가 너무 많아서 진리는 소멸한다. 

박찬욱에게 더 이상 영화는 우직하게 굴러떨어지는 돌을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힘들고 외로운 일이 아니다. 실재에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시지프의 돌을 모두 모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 그것은 새롭지는 않지만 아무도 하지 않은 독창적인 일이다. 원본 없는 복제, 복제의 복제, 복제의 복제의 복제… 박찬욱은 5,457개의 가짜 군만두를 튀겨내듯 무한대의 시뮬라크르를 찍어내며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아우라를 벗겨낸다. 그리고 빈 허울만 남은 그곳엔 이제껏 존재한 적 없었던 고독하지만 자유로운 세계가 새로이 생겨난다. 

 

‘혼자 웃기’의 미학

한국인은 맞춤법이 틀린 문자 메시지를 써 보내고, 한국말이 서툰 중국인은 완벽한 문장으로 답신을 보낸다. 한 남자가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그의 사랑은 끝나고, 그 사랑이 끝났을 때 한 여자의 사랑은 시작된다. 개그맨은 어디선가 봤을 법한 형사처럼 웃음기 쏙 빼고 진지하게 연기하고, 연기파 영화배우는 책을 보고 읽을 듯한 어설픈 문어체 화법으로 아포리즘을 연신 읊으며 웃음을 유발한다. 

박찬욱이 그려낸 시뮬라크르의 세계는 이상하고 기괴하다. 한국인은 한국인답지 않고, 연인은 연인답지 않고, 개그맨은 개그맨답지 않다. 모든 가치가 전복된 위태로운 시뮬라크르의 세계. 혼돈은 무질서한 상태가 아니라 새로움을 창조하는 생명력이자 무(無)에서 무한으로의 역동적 전환이다. 세상의 모든 창세신화는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 것이다.” 올드보이와 헤어진 박찬욱은 혼자 울지 않는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도 있지만, 잉크가 물에 떨어지듯 서서히 퍼지는 사람도 있다.” <헤어질 결심> N차 관람 열풍을 보고 박찬욱은 영화관의 좁은 의자에 앉아 ‘함께 울기’에 도전한다. 개그맨 김신영의 전국노래자랑 MC 발탁 뉴스를 듣고 박찬욱은 ‘혼자 웃기’에 도전한다. ‘마침내’ 시뮬라크르는 현실을 모방하는 것에서 벗어나 거꾸로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사랑은 특별하지도 진실하지도 않다. 삶은 애초에 이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름답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이토록 낯선 세계라니. 너무 매혹적이지 않은가. 살다 보면 재미없는 농담이 필요할 때가 있다. 만두는 튀겨도 군만두가 되고 생선은 죽어도 값비싼 초밥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안 봐도 각본집은 산다. 저조한 흥행 성적에도 불구하고 각본집은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라니. 너무 재미있지 않은가.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박찬욱‘들’이 살고 있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홍보용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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