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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머리에서 가슴까지, <정말 먼 곳>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머리에서 가슴까지, <정말 먼 곳>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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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속에 인간의 인격이 사소화 되어 가는 과정 사실적으로 그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간의 수명을 100년으로 볼 때 한 반 백 년은 살면 어른이 돼 있을까?'. 어느덧 그 나이가 됐지만 나는 아직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여전히 되고 싶은 것도 많은 그런 사람이다. 무엇보다 매년 아니 매일, 매 순간이 새롭고, 그래서 가끔은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찰나가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참 겸허해 진다. 시간이 지나면 어른이 될까 생각한 건 정말 어리숙한 착각이자 오만이었던 것이다. '어른 같은 나이'임에도 배와 함께 가라앉은 어린 꿈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처절하게 느꼈던 세월호 참사. 노란색 리본 앞에서 나는 매번 더욱 작아지고 한 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터진 이태원 참사. 그저 도심을 걸으며 축제를 즐겼을 뿐인 젊은 꿈들을 다시 한번 허망하게 떠나 보냈다. 이 황망한 틈을 타고 끼어드는 혐오성 발언들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의 악함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정말 먼 곳>은 바로 이 치가 떨리도록 지리멸렬한 인간의 혐오, 그것이 사소화시키며 무너뜨린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서막은 한 남자가 자기혐오로 스스로를 격리시킨 정말 먼 곳, 어느 산골에서 열린다.

 

안식처를 찾아 시골 마을로 들어온 진우(강길우)는 한 목장에서 양떼를 돌보며 특별할 것 없지만 소중한 일상을 묵묵히 살아간다. 그러던 중 진우의 연인인 현민(홍경)이 찾아오고, 얼마 후 진우의 쌍둥이 여동생 은영(이상희) 또한 나타난다. 이렇게 예상하지 않은 이들의 등장으로 평화롭기만 했던 진우의 일상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고, 결국 마을 어르신의 장례식 날 은영은 진우와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단 한 마디의 실언으로 그동안 진우가 마을 사람들과 쌓아 온 유대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만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LGBTQ 작품들이 제작됐으나 대부분 주류 시장 밖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한 영화 속에 재현되는 한국 게이 남성들은 대부분 어두운 뒷골목을 떠돌거나 그들만의 커뮤니티 내부에만 갇힌 채 한국 사회 중심부로 들어오지 못하고 겉돌기 일쑤였다. 이렇게 부초처럼 부유하는 한국 게이 남성의 이미지는 <정말 먼 곳>(박근영, 2020)에서도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게이 남성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할 뿐, 기존에 이송희일 감독과 김조광수 감독 등 커밍아웃을 한 게이 감독들의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이른바 게이 감수성(gay sensibility)이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단지 각자가 한 개인으로서 살아내야 하는 일상이 있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생과 사 혹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삶의 순환이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의 남성 성소수자 영화로 대표성을 지녔던 이전의 작품들과 명백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본격적인 게이 소재나 주제의 한국 LGBTQ 영화에서는 대부분 성소수자 남성들의 사랑과 욕망 그리고 삶을 철저히 게이답게 표현하기 위해 공을 들여 왔다. 그래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게이 감수성이라는 강박 속에서 성소수자 남성 집단이 오히려 더욱 특수화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달리 <정말 먼 곳> 속 성소수자 남성의 모습은 단지 특정 동질 집단의 문제로만 주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르거나 독특하다는 이유로 주류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모든 소수자의 문제로 오히려 보편화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정말 먼 곳>의 미덕이 도드라진다.

 

<정말 먼 곳>은 극 중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가족의 신성한 가치란 단순히 부부의 성역할이 구분되는 이성애 가족 안에서만 유효한 것이 아니며, 모성과 부성이란 것도 그저 생물학적 여성성과 남성성으로만 획득되는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이성애적 정상성이란 것이 결국은 집단적 판타지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 있음을 설파하며 전통적인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정의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다. 또한, 극 중 진우와 가깝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은 진우가 성소수자임을 알게 된 직후 일제히 그를 외면하거나 그에게 노골적인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데, 이는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 속에서 동성애가 일탈적이고 도착적인 성적 행위로 불법화되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다. 동성애자로서의 진우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혐오는 목장 주변에 퍼진 구제역처럼 조용히 마을 전체로 퍼지고, 그렇게 퍼진 비이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염병처럼 진우의 숨통을 조여 온다.

 

마을 전체에 퍼진 혐오감은 지금까지 목장에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오던 진우의 성실함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진우를 친밀한 구성원에서 낯선 이방인으로 주변화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사소화하기에 이른다. 단지 조용한 일상을 살아갈 안식처만을 바랐던 진우의 작은 소망은 그렇게 이성애주의에 철저히 외면당하여 다시 한번 자기혐오라는 깊은 상처만 남긴 채 순식간에 부서지고 만다. 이렇게 <정말 먼 곳>은 진우라는 성소수자 남성이 직면하는 삶의 국면을 통해 이성애자 중심의 한국 사회가 가하는 비이성애 혐오가 개별 성소수자 남성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내면화되고, 그것이 어떻게 자기혐오로 이어지는지, 결과적으로는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인고의 세월을 요구하는지를 풍부한 은유와 절제된 감성으로 담담하게 풀어낸다.

 

한편으로는, 영화 <정말 먼 곳>에서는 게이 감수성을 개념화할 때 필요한 퀴어로서의 자신감과 자기표현 그리고 저항의 요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이는 동성애자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주류 시장에 안착시키는 무난한 전략일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퀴어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물론 그러한 결핍은 한국 성소수자들의 삶을 특수화하지 않고 이 땅의 고단한, 보편적인 모든 인생을 빗대기 위한 치밀한 책략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정말 먼 곳>은 주류 시스템에서 강제된 정상성에 도전하고 그것을 전복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주지할 것은, 퀴어는 문자 그대로 비정상적으로 이상한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정상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거부한다는 점에서 더욱 전복적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말 먼 곳>의 불완전한 퀴어성은 이성애자 집단과 LGBTQ 집단 모두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다. 이성애자 집단에게는 모든 비이성애적 행위가 불온하고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LGBTQ 집단에게는 이 영화가 충분히 게이답지 못해 이성애자의 시각으로 성소수자의 삶을 재현한 사실주의 영화에 불과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말 먼 곳>은 한국 성소수자 남성에 대한 이성적 탐구는 돋보이나 가슴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저 축제를 즐기며 길을 걸었을 뿐인데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그렇게 또 한번 많은 젊은 꿈들이 도심 한 복판에서 허탈하게 무너져 내렸다. 드론을 날리고 AI 교사까지 출현한 이 21세기에...... 이 허망한 순간을 비집고 들어오는 날선 혐오성 발언들은 더욱 마음을 후벼판다. 운명 공동체로서의 성숙함과 어른으로서의 원숙함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획득되어 유지되는 것일까? 이러한 비극 앞에서도 여전히 혐오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인간의 이기적인 악함을 보고 있노라면 성선설(性善說)은 무력하기만 한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먼 곳>의 진우가 그렇게 원했던 혐오 없는 세상은 모두가 머리로 이해하며 바라는 곳이지만 마음으로 가기에는 여전히 정말 먼 곳임을 명백히 느낀다. 이런 참사 앞에서 매번 어른인 것이 부끄럽지만 명확히 말해 주고 싶다. 누구나 축제를 즐길 권리가 있으며, 그렇기에 그들은 아무 죄가 없다. 이란 여성들이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고 있고, 세계가 그들과 연대하듯 바로 이 순간 한국에서만큼은 '안전, 생명, 행복'에 대한 공동체적 연대가 필요할 것 같다. 정부 입장을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해도, 길거리 한 복판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 나가는 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고, 그 틈을 타고 드러나는 혐오감의 실체는 명백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로 슬픔을 겪고 있을 이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마음으로 함께 하며 정말 가까이 있겠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며 공연기획 '최영주의 in클래식' 상임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정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담화분석 및 스토리 문법과 문학/서사치료 연구, 한국문화교육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영화비평 대상을 수상했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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