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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 뺏벌 ‘이야기’, 이름 없는 여자의 무덤과 죽음의 기억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 뺏벌 ‘이야기’, 이름 없는 여자의 무덤과 죽음의 기억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2.11.0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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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과 극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이 극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로 거듭나다. 2016년 1월 14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2012)은 망각된 기지촌의 공간에서 신체에 각인된 역사의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세 명의 여인을 다루고 있다. 선유리에서 햄버거를 파는 박묘연은 과거 26번의 중절 수술을 감행했고, 뺏벌에서 폐휴지를 줍는 박인순은 미국에 두고 온 푸셀라와 쿤티에게 편지를 쓰고, 아프리카계 혼혈인 안성자는 만날 수 없는 친구 세라를 회상한다.

2022년 1월 27일 개봉한 극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2019)는 <거미의 땅>의 이름 없는 혹은 이름만 남은 무덤에서 신기루처럼 잊혀진 유령들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한 번 들어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죽어야 나갈 수 있는 곳 ‘뺏벌’에서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박인순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박인순(박인순)은 교수(변중희)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유령 꽃분이들(조은경·신윤숙)과 대화하고, 저승사자(김미숙·신승태·김아해)를 찾아간다.

 

2. 무덤: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가 있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전반부는 무덤 이야기이다.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가 있었다. ‘뺏벌’ 마을 건너편 산에는 이름 없는 여자들의 무덤이 즐비하며, 잊혀진 유령 꽃분이가 다시 돌아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준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첫 장면에서 옛날 지도를 보여주며 뺏벌의 유래를 들려주며, 뺏벌을 이름 없는 무덤, 죽음의 마을로 그려낸다. ‘마을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갔다’는 내레이션으로 처음부터 죽음을 강조한다. 마을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간 이유는 무엇이며 죽은 이들은 어떤 인물들인가? ‘마을의 길 건너편 이름 없이 죽은 자들의 무덤이 있는 야산에서 제일 아래 묻힌 여자들은 살아 생존에 남자들을 받은 것처럼 누워서 자기가 떠나온 마을을 바라본다.’ 이 내레이션을 통해 이 영화의 주요 인물들, 즉 미군 기지촌에서 죽은 여자들의 정체를 암시한다. ‘배벌’이라는 마을 이름이 주는 평화로움과 사람들이 많이 죽어나간다는 음침함이 기묘한 대비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배벌’과 ‘뺏벌’이라는 지명을 계속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배나무가 많은 마을 ‘배벌’은 미군부대가 들어서자 이름 없는 마을이 생겨난다. 군사시설이어서 지도에 없는 마을에서 팔려온 여자들이 자꾸 죽어나간다. 한 번 들어오면 죽어나가서 ‘뺏벌’로 불리게 된다. 영화는 많은 여자들의 죽음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지명이 변경되어 ‘배벌’에서 ‘뺏벌’이 된 것을 강조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에서 이름 없이 죽은 여자들과 꽃분이라는 이름의 이질적인 결합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모든 유령은 ‘꽃분이’로 불리며, 죽음의 덧없음과 꽃분이의 화사함으로 기괴한 대비를 보여준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누구보다 죽음을 많이 본 여자’ 박인순의 생명력과 분노를 담아낸다. 박인순은 자신이 강해서 죽음을 이겨낸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기를 좋아하며 독수리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의 눈알을 파먹고자 한다. 박인순이 독수리가 되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의 눈알을 파먹고 싶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상 그녀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자신이 몸을 판다는 사실보다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고통 받은 것이 아닐까? 그녀는 죽음을 누구보다 많이 봤으며 죽음을 이겨냈지만 죽음을 상상한다. 박인순이 아버지가 자신을 버려서 고향을 모르며, 자장면 3그릇에 포주에게 팔려 몸을 팔게 되며, 미군을 계속 받아도 빚이 늘어나자 자살을 시도하고, 자신을 구한 남편에게 그의 아기라고 속여 결혼하지만, 남편의 폭행으로 아이들을 버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아버지의 유기, 포주의 횡포, 남편의 폭행으로 복수를 꿈꾸지만 다시 뺏벌로 돌아온다. 유령들이 ‘튼튼한 두 다리와 우렁찬 목소리’의 박인순을 좋아한다는 내레이션은 유령의 죽음과 박인순의 생명력을 대비시킨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전반부 스타일은 시선을 통해 삶/죽음, 산/죽은 자, 일상/죽음의 공간을 대비시킨다. 마을 건너편의 무덤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무덤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이 교차되며, 마을을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죽은 여자들의 시선처럼 그려낸다. 죽은 여자들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죽은 여자들, 유령들이 이 영화의 중심을 차지할 것임을 암시한다. 박인순이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는 장면에서, 방 안에 앉아 어딘가를 쳐다보는 박인순의 시선과 폭포 위에 서서 어딘가를 쳐다보는 저승사자의 시선이 연결되면서 마치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때 이 시선은 마치 현실 세계와 환상 세계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초월한 느낌을 주면서 일상의 공간과 죽음의 공간을 대비시킨다.

 

3. 유령: 뺏벌에는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아졌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중반부는 유령 이야기이다. 뺏벌에는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아졌다. 뺏벌에는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많고 죽음과 원혼이 서려 있으며, 죽은 유령들을 본 산 동료들은 죽은 유령들을 겁내거나 숨겨주거나 반겨준다. 뺏벌은 죽음의 공간, 과거의 공간, 죽은 자의 공간, 원혼의 공간이 된다.

 

박인순은 죽은 예전 동료가 반가워서 말을 건네지만, 심한 욕설만 돌아온다. 이름 없는 유령 꽃분이는 한이 맺힌 여자, 증오가 가득한 여자이다. 뺏벌에서 죽은 여자의 시체를 거적에 싸서 버렸고, 뼈다귀의 부딪치는 소리는 억울한 죽음으로 이승을 떠도는 귀신의 원혼을 들려준다. 죽은 영혼들을 보면 살아 있는 동료들은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미스 김처럼 동료의 등골을 빼먹는 여자는 겁을 먹고, 어떤 여자는 문을 열고 죽은 동료는 받아주지만 저승사자는 몰아내고, 박인순은 자기 집에 숨어든 동료에게 좋아하는 고구마를 대접하며 반겨준다. 살아있거나 죽었거나 동료들은 고통과 죽음을 함께 겪은 이들이기 때문에, 살아 있는 동료가 죽은 동료를 데려가면 저승사자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중반부 스타일은 숏 크기, 편집, 클로즈업, 화면 크기로 거리두기, 과거/현재, 죽음/삶, 반복/변형을 표현한다. 박인순이 종이박스를 줍는 장면에서, ‘지금이라도 몸을 팔 수 있다면 그것이 훨씬 더 나은 노동’이라는 내레이션과 가까이에 있는 박인순(미디엄숏)을 보여주다가, ‘다 내 마음이야’라는 내레이션과 점점 멀어지는 박인순(익스트림롱숏)을 보여준다. 이때 점점 멀어지는 카메라는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나가기를 대비시키며 현실의 편견에 대해 낯설게 하기를 보여준다. 미술작가가 꽃분이 유령을 발견하는 장면에서, 유리 앞에서 사진 찍는 작가와 그녀의 몸을 통과해 유리로 다가가는 유령을 보여준다. 이때 놀라서 도망치는 작가와 그녀를 내다보는 유령을 교차편집은 과거/현재, 현실/재현, 주체/대상을 대비시킨다.

 

거적에 싸인 시체의 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거적에 싸인 시체의 발, 갑자기 움직이는 발, 도망치는 귀신의 발 등 편집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의 구분이 모호한 상태를 보여준다. 박인순 인터뷰 장면에서, ‘(아이들을) 별로 보고 싶지도 않은데. 돈이 있어야 훌륭하게 키우는데 돈이 없어 훌륭하게 못 키우잖아요. 우리 부모가 나를 버린 식으로 나도 버린 거예요.’라는 과거 인터뷰와 작아지는 영상을 통해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보여준다. 저승사자와 귀신이 걷는 장면에서, 귀신을 찾아다니는 저승사자,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귀신, 귀신을 따라가는 저승사자를 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섬뜩함/코믹함의 결합을 보여준다.

 

4. 꽃분이: 삶의 길에서 죽음의 길로 걸어가다

<임신하는 나무와 도깨비>의 후반부는 꽃분이 이야기이다. 꽃분이(박인순)는 삶의 길에서 죽음의 길로 걸어간다. 무덤의 익명성과 꽃분이 이름, 현실과 이야기(허구)가 대비를 이룬다. 살고자 하기와 살아남기가 구별되고, 똑같은 반복이 삶의 굴레로 표현된다. 저승사자는 도망친 유령 꽃분이를 데려가려고 하고, 인순은 저승사자 앞에 나타나 자신을 데려가라고 한다.

 

이 영화가 계속 ‘이야기’를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승사자는 이름 없이 죽은 여자들의 사연을 흔하다고 말한다. ‘명부에 기록이 없으니 이야기를 만들어줘야 저승에 데리고 갈 수 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름 없는 여자이지만, 그 사연은 개별적이고 특수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덤의 익명성과 꽃분이의의 이름을 대비시키면서, 익명성, 집단, 보편성보다 개별성, 개인, 특수성을 강조한다. 저승사자는 꽃분이를 저승에 데려가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꽃분이A는 부모가 죽은 후 어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양색시가 되고, 동생들이 데려다주는 미군에게 몸을 팔고, 착하게 생긴 미군을 따라 야산으로 올라갔다가 살해당한다. 꽃분이B는 미군을 아무리 받아도 빚이 줄어들지 않자 약을 먹고 자살하고 포주가 한밤중에 시체를 야산에 갖다 버린다. 꽃분이C는 성기에 콜라병과 우산이 꽂혀 처참하게 살해되어, 온 몸에 피를 묻힌 채 벌거벗은 시체로 발견된다. 이런 꽃분이들의 이야기(허구)는 실제 일어난 사건(현실)이라는 점에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든다. 꽃분이, 즉 미군 양색시의 이야기는 항상 죽음으로 끝난다.

 

박인순은 저승에 가기 위해서 저승사자를 찾아왔고 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저승사자의 관심을 받는다. 죽음을 견딘 박인순은 왜 저승사자를 찾아온 것인가?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죽음을 피해서 여태까지 살아난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왜 죽음을 상상하고 저승사자를 찾아간 것인가? 박인순은 이미 젊은 시절에 자살 시도를 한 여자이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자 한 것이 아니라 강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뿐이다. 나무에 목을 매달고 죽으려는 박인순은 흑인 미군에 의해 구출되고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가지만 폭행에 시달린다. 박인순은 몸을 파는 여자에서 미군과 결혼한 여자로 바뀌지만 여전히 횡포와 폭행에 시달린다는 점에서 힘든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명부에도 없는 여자의 똑같이 반복되는 이야기는 삶의 굴레를 보여준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후반부 스타일은 과거/현재, 장르/변형, 현실/환상, 웃음/울음의 대비를 시선, 디졸브, 클로즈업으로 표현한다. 젊은 박인순이 흑인 미군에게 구출되는 장면에서, ‘이 곳에서는 사랑과 동정을 구분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돈으로 샀기 때문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때 나이든 박인순이 과거의 자신과 구원자를 지켜보는 시선은 과거/현재를 연결시킴으로써 자신의 생애를 반추한다. 젊은 박인순과 흑인 미군이 결혼하는 장면은 로맨스영화에서 공포영화로의 장르 변화를 보여준다. 이때 웨딩드레스처럼 보이는 흰 원피스를 입은 젊은 박인순이 흑인 미군과 누워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인순은 반복되는 지루한 이야기가 참을 수 없었다.’라며 갑자기 칼을 들고 남자의 눈을 찌르고, 나이든 인순과 젊은 인순이 함께 남자의 목을 자른다. 젊은/나이든 인순은 과거의 원한을 현재의 복수로 갚는다.

꽃분이와 저승사자의 마주치는 장면에서, 저승사자가 다가오고 꽃분이가 물러서는 모습, 네온사인과 전철이 지나가는 야경 모습, 산 속의 검은 실루엣 모습이 디졸브되면서 환상의 공간, 현실의 공간이 계속 변화한다. 박인순이 웃는 장면에서, 박인순의 웃음소리가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마치 울음소리처럼 바뀌는 모습, 지켜보던 대장 저승사자가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이 클로즈업으로 강조된다. 이때 사방에서 들리는 기괴하고 슬픔 웃음소리는 뺏벌에서 흔한 이야기이지만 현실에서 흔하지 않는 이야기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보여준다.

 

5. 장르의 혼합: 극영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시선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스타일은 화면 크기의 변화, 액자식 구성, 장르의 변화로 극영화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보여준다. 극영화의 보여주기와 다큐멘터리의 말하기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든다. 극영화일 때는 정상적인 화면 크기로 보여주다가, 다큐멘터리일 때는 작아진 화면 크기로 보여줌으로써,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혼성적 특성을 결합시킨다. 사실상 국가 폭력 면담을 위한 구술 면접과 기록으로 인순의 과거를 보여줄 때 화면이 작아지는 것이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보여주는 과거의 재현 혹은 액자식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박인순의 생애는 다큐멘터리, 로맨스영화, 스릴러영화, 드라마 등 형식에서 장르 변화를 보여준다. 박인순의 생애는 처음에는 내레이션과 인터뷰 영상으로 전달하고(다큐멘터리), 다음에는 저승사자의 대사로 전달하고(극영화-스릴러), 마지막에는 꽃분이 귀신을 통해 재현된다(극영화-드라마). 영화는 세 가지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점점 동일시로 나아간다. 나중에는 젊은/나이든 인순이 ‘구원자’ 남편에 대한 증오로 남편의 눈을 파고 목을 잘라 계속 끌고 다니는 장면은 박인순의 증오와 복수를 환상으로 처리하여 형상화한다. 처음에 무덤덤하게 과거를 말하다가, 극적으로 재현하다가, 복수를 현실로 만듦으로써 점차 감정을 고조시킨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극영화의 보여주기와 다큐멘터리의 말하기를 결합시키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형식을 파괴하고, 과도한 내레이션 사용으로 역사적 현실을 인식하고자 하며, 이름 없는 유령 꽃분이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큐멘터리 <거미의 땅>에서 다룬 박인순의 이야기를 극영화로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거미의 땅>은 다큐멘터리와 실험영화를 결합한 형식을 보였고,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형식을 보여준다. <거미의 땅>에서 아프리카계 혼혈인 안성자가 만날 수 없는 친구 세라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마치 세라가 살았던 미군 기지촌의 유령 같은 공간을 죽은 영혼처럼 배회하는 모습을 극영화와 실험영화의 혼합된 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세라의 비극적 삶에 대한 안성자의 슬픔에 공감하게 만든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뺏벌에서 폐휴지를 줍는 박인순의 삶을 극영화로 재현하고 다큐멘터리로 들여다보면서 그 삶을 좀 더 가까이에서 공감하고 인식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극영화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한 작품이다. 형식에 있어서 과감한 부분이 기존 장르적 특성에 익숙한, 즉 극영화의 동일시, 감정이입, 재현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레이션의 과도한 사용이 인물의 생각을 표현한다기보다는 감독의 가치관을 나타내는 부분이 많아서 이질적이다. 극영화에 익숙한 관객으로서 고정된 카메라, 재현이 아니라 내레이션 전달, 보여주기가 아닌 말하기 등의 형식이 불편한 것은 기존 영화에 길들여진 탓인가 아니면 다큐멘터리 감독의 한계인가? 인물의 재현에서도 이러한 이질감은 계속된다. 이름 없이 죽은 여자와 꽃분이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결합은 마치 암울한 현실과 환상적 이상을 대비시키는 효과를 자아낸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 전체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단어는 ‘이야기’이다. ‘야산이 파헤쳐져 (이름 없이 죽은 여자들의) 뼈다귀들이 드러나고 태우기 시작하자, 뼈다귀들이 힘을 다해 부딪쳐 소리를 내니 마침내 이야기 하나가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과거 미군 기지촌의 이름 없이 죽은 여자들의 삶을 기억하자는 외침이다. 저승사자는 미군 기지촌 뺏벌에서 이름 없이 죽은 여자들의 사연은 흔하고 똑같다고 말하지만, 박인순으로 대변되는 꽃분이의 삶은 사회의 편견, 애도의 부재, 고통과 원한을 드러낸다. 뼈다귀들이 힘을 다해 부딪쳐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미군 기지에서 몸을 팔다가 죽은 여자들의 인생이 흔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 저마다 사연을 갖고 있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제작 노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승사자들은 뺏벌의 유령들을 데려가기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인순은 그들에게 맞서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는 이름 없는 여자들의 무덤이 즐비한 ‘뺏벌’에서 그녀들의 흔하지 않는, 개인마다 구구한 사연을 갖고 있는 ‘이야기’의 끝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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